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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행동연구소조회 수: 10407, 2010.11.22 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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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강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
이번 호에서는 지난해 11월 2일 미국 예일대학의 ‘환경360’에 실렸던 가이아 빈스(Gaia Vince)의 글을 싣습니다. 네이처 지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빈스는 현재 가디언, 타임스, 사이언스, BBC 등에 활발한 기고를 하고 있는 여성 프리랜서입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는 빈스의 글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2004년 12월 쓰나미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방글라데시 정부는 해일 조기경보시스템을 갖춘 후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웃나라인 미얀마(버마)에서는 최근 몇 년 간 자연재해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재작년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여파로 발생한 대규모 인명피해는, 미얀마 독재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국제사회의 원조를 거부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권위주의 정권 때문에 민초들이 극한적인 기후재난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의 명암
해수면 상승과 태풍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있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의 뚜렷한 차이는 다가오는 미래에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갈지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기후에 강한’ 사회도 있겠지만, ‘기후에 취약한’ 사회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후변화로 어떤 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정치, 사회, 기술,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인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떤 것일지 아직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인간 종(種)에 가해지는 여타 공격들과 마찬가지로 적자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능력을 갖춘 사회를 구성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안다면, 모든 사회의 대응능력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능력은 기본적으로 지리적인 위치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예를 들어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은 해수면 상승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가 모든 걸 결정하진 않는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으로써, 위기를 회복하는 능력, 독창적인 대안을 고안하는 능력, 변화에 대한 적응력, 그리고 협치(governance) 제도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한 집단에 속한 자립적인 개인이자, 자원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성숙한 개인은 기후변화의 영향 속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무력감 보다는 운명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
인도 구자라트 마을의 한 여성 ⓒ retlaw snellac/Flickr
이런 점에서 인도 구자라트(Gujarat) 주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그곳에는 1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가뭄에 시달리는 마을들이 흩어져있는데, 심각한 물 부족에 대한 대응방식은 마을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한 마을의 주민들은 한 해에 세 번이나 풍부한 양의 작물을 수확한다. 우기에 내리는 비가 천천히 우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빗물받이를 설치하고 효과적인 관개시스템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 이웃동네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적은 양의 작물을 수확할 뿐이며, 7개월간 정부가 공급해주는 마실 물에 전적으로 의존해 농사지을 물이 없어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몰디브 주변의 한 섬에서는 폐가들이 방치되어 있거나 심지어 바닷물에 씻겨 나간 흔적을 볼 수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강한 침식과 부식이 발생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이웃 섬이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을 보존한 덕택에 안전하게 버티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연구했던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톰 크롬튼(Tom Crompton)의 말이다. 노르웨이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곤 한다.” 결국,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사람들일수록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나 유연성 또한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요한 요소다. 곧 물에 잠기게 될 마을을 떠나 이주를 준비해야하는 벵갈 만 주민들의 감성적인 적응력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땅의 염분이 증가해 쌀농사를 새우 양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방글라데시 농부들의 유연성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효과적인 협치(거버넌스) 또한 특정 사회의 기후변화 적응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협치는 계급, 인종, 민족, 부족, 종교적인 불평등처럼 주민들과 공동체의 삶의 질 개선을 막는 장벽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네팔, 아프가니스탄, 인도 비하르 주 등의 예처럼 전쟁, 폭력, 정부 붕괴로 인한 혼돈과 무질서는 많은 주민들을 기후변화에 취약한 상태로 내몰게 될 것이다.
눈여겨 보아야할 라오스 사례
라오스 유역을 흐르는 메콩강 ⓒ ExtremeAmbient/Flickr
기후변화에 적응력이 높은 사회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잘못된 정부 때문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라오스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기후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저개발된 국가에 속하는 라오스에서 향후 수십 년간 매우 불규칙한 몬순 기후패턴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작년 5월 UN은 라오스에서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났을 경우에 대비하는 특별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최근 내가 여행 중에 만났던 라오스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라오스 국민들은 높은 충족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라오스가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강한 사회들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라오스 인구 중 대략 80% 정도는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라오스 주민들은 숲에서 음식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다양한 것들-벌레부터 허브, 과일, 견과류, 버섯까지-을 채집하기도 한다. 메콩 강의 지류들은 수많은 물고기들의 보고이다. 물고기들은 6천 3백만 라오스인에게 필요한 식이단백질의 80%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주민들의 삶에 필수적인 물과, 공동체의 협력과 유지에 필요한 사교 장소 또한 제공하고 있다.
만약 라오스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다면, 라오스는 기후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나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오스는 천연자원을 팔아치우기에 바쁜 정부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라오스 정부는 산림벌채권을 팔아넘겼으며, 대형 댐을 연달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메콩 강의 물고기 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어업에 종사하던 라오스 주민들은 더 이상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좋은 거버넌스가 반드시 서구 모델과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잘못된 권력에 대항할 수 있고 권력의 분산이 가능한 민주주의 국가가 기후변화 대처능력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환경과 발전을 위한 국제연구소(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Environment and Development) 소장 살렘 허그(Saleem Huq)는 “베트남은 태풍과 허리케인에 대한 대응력이 매우 높은 나라였지만, 그 역량은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 산산 조각나버리고 말았다”라고 말한다.
기후변화에 강한 사회의 조건
훌륭한 지도력과 손잡고 협력하는 것은 현명한 발전 방법이다. 구자라트와 같은 인도의 지방정부는 농민들을 지속 불가능한 농업 부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에 종사하게끔 함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기후변화 대응능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인도 동남부에 위치한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 주는 과학자들이 지역주민들을 도와 쌀 대신 기장과 같은 건조에 강한 작물들을 재배한다. 잘못된 개발 정책은 의도와 무관하게 기후변화 대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물을 많이 사용하는 작물 재배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지하수 펌핑용 전기에 비현실적으로 싼 가격을 매기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농민들의 기후변화 대응능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건전한 환경보호정책 또한 기후변화 대응능력을 향상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관광 산업 장려차원에서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정부가 산림파괴를 조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중국,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보다 기후변화 대응능력이 앞선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는 여성과 소수자 집단의 권리 보장과 평등이다. 심각한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방글라데시는 각 마을마다 여성들로 구성된 평의회를 만들어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다. 반면, 미국 뉴올리언스를 휩쓸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는 사회적 불평등이 사람들을 어떻게 기후변화에 취약한 상태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 가뭄의 증가, 정치적 갈등의 심화, 기후재난으로 인한 죽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 대응능력이 취약한 지역 사람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나서는 것은 지구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라오스처럼 건강한 사회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활발한 지역적 행동과 좋은 협치 제도, 그리고 기후변화 적응 프로그램이 제대로 설계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이윤주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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