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락을 주문했더니 도시락통이 왔더라 ― 배달음식 포장용기의 탄소발자국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906, 2021.07.26 16:38:00
  • 작년 이맘때쯤 저녁거리를 고민하다 주문한 보쌈 배달꾸러미를 보고 기겁을 했다. 두 개의 커다란 비닐봉지 묶음에서 예상했던 보쌈과 서비스로 준다던 막국수, 곁들임 채소 외에 플라스틱 포장 용기에 담긴 갖가지 음식들이 줄줄이 나왔다. 다섯 식구가 둘러앉을 수 있는 크기의 상도 모자라 테트리스 게임하듯이 이리저리 위치와 방향을 바꿔가며 배치하니 한 상에 겨우 다 올라갔다. 살펴보니 김치 따로, 백김치 따로, 주먹밥(김가루는 다시 별도의 비닐봉지에 담겨있다), 콩나물국, 샐러드에 쌈장, 새우젓, 양념장, 마늘, 고추까지 각각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고 화룡점정으로 상추와 깻잎도 서로 다른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었다. 상 위에 차려진 배달 보쌈 음식을 보고 있자니 10가지 넘는 음식을 하나하나 깔끔하게 담아내는 고객 서비스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뭐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식사 후 그 약간의 부담은 짜증으로 바뀌었으니. 분리배출을 위해 용기 윗면을 덮고 있던 비닐을 깨끗하게 제거한 후 뚜껑까지 하면 20개는 족히 넘는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설거지해 말리고, 플라스틱 용기 재질을 확인해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대표적으로 other)은 골라내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배달 음식 한 번으로 꽉 차 버린 플라스틱 분리배출함을 정리해 내놓고 나서야 뒤처리가 끝났다. ‘귀찮으니 시켜서 간단하게 먹자’던 꼼수에 당한 것인지 남은 건 ‘집에 있는 거 대충 먹을걸. 더 힘드네’하는 후회와 어른 상체만한 부피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내놓은 후의 죄책감.

     

    그렇지 않아도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음식 배달·포장 주문이 증가하고 그와 함께 플라스틱 폐기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들려오고 있었다. 몇 년 전 과자류의 과대포장이 논란이 되었을 때 ‘과자를 샀더니 질소가 왔다’라던 말처럼 ‘도시락을 시켰더니 도시락통이 온 격’인 듯했다.

     

    궁금해졌다. 배달 포장 음식에서 일회용 용기가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얼마나 될까? 지난 텀블러 기사(‘텀블러 쓰려거든 하나만! 아껴 쓰고 자주 쓰고 귀하게 쓰자’ (2019.05.15.))처럼 업계 평균 데이터를 당장 구하는 건 불가능하니 주변에서 많이 이용하는 도시락 매장에서 두 가지 도시락을 주문했다(점유율이 높은 업체로 선택했으나 해당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업체명을 밝히지 않는다). 마침 식생활과 기후변화 관련 연구와 캠페인을 하고 있었고 주요 문제 중 하나가 육류 소비로 인한 기후변화 영향이었으므로 배출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채식 도시락과 반대로 배출량이 큰 소불고기 도시락 두 개를 시켰다. 채식 도시락은 음식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으므로 도시락에서 플라스틱 용기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소고기가 들어간 도시락(전체)은 채식 도시락 대비 배출량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라 가정했다.

     

    텀블러와 종이컵의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때와 마찬가지로 제품(음식)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의 시작은 소재별 구분과 중량을 측정하는 것이다. 우선 용기에서 음식을 덜어낸 후 용기 소재 종류, 음식 종류별로 각각 중량을 잰 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했다. 도시락을 주문하면서 보쌈은 음식 특성상 반찬, 각종 채소, 양념류까지 곁들임 음식이 많아 음식 용기도 많은 거겠지 싶었는데 강된장 도시락과 소불고기 도시락의 플라스틱 용기를 구분하며 다시 한번 혼란스러워졌다. 식판 형태의 커다란 전체 용기와 덮개에 밥은 밥대로 반찬은 반찬대로 또 다른 플라스틱 내용기 안에 담겨 있었다. 거기다 마늘 서너 쪽과 쌈장까지 지름 3~4센티가량의 앙증맞은(?) 작은 용기에 따로 나왔을 뿐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면 벌 받을 것 같이 품질이 뛰어난 플라스틱 수저(게다가 이 수저는 또 비닐포장이 되어있다)와 일회용 물티슈, 그리고 서비스로 또 주신 휴대용 물티슈까지. 다시 한번 고객 감동을 위한 서비스가 분리배출의 노동과 죄책감으로 되돌아오는 아이러니라니.

     

    음식과 포장 용기 종류별로 일일이 중량을 재는 단순 노동이 끝나고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을 한 결과, 이전 배달 보쌈과 도시락 용기를 보며 든 ‘생각보다 플라스틱 용기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클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실제 더 큰 우려로 나타났다. 

     

    강된장 도시락의 음식 종류는 11가지, 포장용기 및 기타는 총 16가지, 온실가스 배출량은 도시락 전체가 930 gCO₂e인데 이 중 음식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680 gCO₂e, 용기 및 기타가 250 gCO₂e으로 자그마치 26.8%에 해당했다. 1/3 가까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서 나오다니. 식물성 재료 위주인 강된장 도시락이라는 음식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도시락 용기 비중을 15~20% 정도까지 예상했던 나로서도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3-Table1.png

     

    그렇다면 소불고기 도시락은 어떨까? 소불고기 도시락의 음식 종류는 12가지, 포장용기 및 기타는 총 16가지인데 상추와 상추 비닐포장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도시락 전체가 4,463 gCO₂e로 강된장 도시락의 4.8배에 해당하는데 역시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소고기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중 음식의 배출량은 4,202 gCO₂e(94.1%), 용기 및 기타가 261 gCO₂e(5.9%)로 음식 자체의 배출량이 워낙 커서 포장용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3-Table2.png

     

    그동안 집과 직장에서 시켜먹었던 수많은 도시락과 배달 음식이 떠올랐다. 더군다나 학교와 외부 회의실 등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애매해 음식물 쓰레기와 플라스틱 소재별 분리배출은 고사하고 음식이 담긴 도시락을 비닐봉지에 넣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다양한 이유로 과대포장을 지속하는 업계만 탓하기에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걸 확인한 후 난 스테인리스로 된 3단 찬합을 샀고, 내 의지가 아닌 이상 포장용기가 많은 배달 음식은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다.

     

    3-Figure1.png

     

      

    장바구니에 찬합까지 들고 다니기가 아주 쉽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외출 전 생각지 못한 음식을 갑자기 포장하게 될 일도 생기고 배달 음식도 때때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일회용품은 안 주셔도 돼요!’라고 외치고, 각종 일회용품을 비닐봉지에 담아 건넬 때면 꼭 필요한 것만 꺼내 장바구니에 다시 담아 온다. 다행인 건 초기 제로플라스틱,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시도했던 많은 분이 겪었던 ‘바쁜데 번거롭게 왜 그러냐’는 상인들의 불평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것. 오히려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다며 함께 걱정하고 부지런하다는 내 생에 별로 들어보지 못한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분리배출 노동에서 조금 더 해방되었다는 것과 그래도 무언가는 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이 아닐까.

     

     

    이윤희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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