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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행동연구소조회 수: 773, 2022.02.10 14: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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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후변화정책의 시작은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으로 거슬러 오른다. 1960~1970년대에 미국 프린스턴대의 마나베 박사가 대기와 해양의 순환을 수학적으로 모의하는 모형을 처음 고안해서, 스반테 아레니우스(1903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기체로 확인했던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증가하면 지구표면 온도가 얼마나 상승하는지를 예측했다. 그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독일 함부르크대의 하셀만 박사는 기후의 통계적 예측 가능성을 증명하고, 더 나아가 화석연료 연소와 같은 인간활동의 기후영향(지문[指紋])을 자연적 기후변화에서 분리해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노벨상 위원회는 이 두 학자의 업적을 ‘변동성을 정량화하고 지구온난화를 신뢰도 있게 예측한, 지구 기후의 물리학적 모델링’으로 요약하여 선정 이유로 밝혔다. 마나베와 하셀만이 물리학적인 토대를 닦은 기후변화 과학은 지난 6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하여, 이제 ‘지구 시스템 모형’의 기후 모의 결과를 통해 기후를 예측하고 적응전략의 방향을 결정하고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수준을 제시(Ravishankara, Randall & Hurrell, 2022)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마나베와 하셀만의 연구, 한센의 증언으로 IPCC의 출범 동력 얻어
마나베나 하셀만과 같은 위대한 기후과학자들의 연구가 ‘정책’의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가장 유명한 계기는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산하 고다드 우주 연구소의 제임스 한센 박사는 이미 1981년부터 이산화탄소 증가의 기후 영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는데, 1988년 6월 23일 미국 의회 상원 청문회에서 ‘인간활동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대기 중 농도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발생했을 확률이 99% 이상이며 그 영향은 수 세기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경고하면서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Shabecoff, 1988). 한센의 의회 증언은 일반 대중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게 하고,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의 정책결정자들이 기후변화 억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센의 의회 증언으로 대표된 당시의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결실을 보아,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즉 IPCC를 창립한다. 2015년부터 우리나라의 이회성 박사가 의장을 맡은 IPCC는, 인간활동이 유발한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과학자들의 국제적인 협력체로 이해할 수 있다. IPCC는 1990년부터 5~8년 주기로 전 지구 기후 평가보고서, 그리고 각 주기 중간에 주제에 따른 특별보고서를 발표해왔는데, 보고서들은 구분이 쉽도록 독특한 영문 약어가 주어졌다. 즉, 제1차 평가보고서(1990년)는 FAR(First Assessment Report), 제2차 평가보고서(1995년)는 SAR(Second Assessment Report), 제3차 평가보고서(2001년)는 TAR(Third Assessment Report)로 더 유명하다. 또한, 특별보고서(Special Reports)는 SRREN(재생에너지원과 기후변화 완화에 관한 특별보고서), SREX(극한현상 및 재해 위험 관리 특별 보고서) 등과 같이 모든 보고서 제목의 약어가 ‘SR’로 시작한다.
IPCC의 보고서 중 2000년에 나온 ‘배출시나리오에 관한 특별보고서(SRES)’는 오늘날 기후변화 경로를 논의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SRES에서 제시한 다양한 온실가스 농도 경로를 통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지속가능한 경로와 최악의 경로가 미래의 기후에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파국을 막기 위해 인류의 공동행동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SRES의 기후 시나리오는 제4차 평가보고서(AR4, 2007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점점 더 정교화하여 제5차 평가보고서(AR5, 2013~2014년)의 대표농도경로(RCPs, 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 제6차 평가보고서(AR6, 2021~2022년)의 공통사회경제경로(SSPs, Shared Socioeconomic Pathways)로 발전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교토의정서
한편, IPCC의 과학적 기후 평가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전 세계가 협약을 맺는데, 이것이 흔히 UNFCCC라는 줄임말로 부르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이다. UNFCCC는 1992년 5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택되었고, 그 이후 매년 개최되는 총회(당사국총회[Conference of Parties]이며, COP이라고 부름)가 세계 기후변화정책 논의와 결정의 중심이 되었다.
UNFCCC의 역사 초기의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정책으로 1997년 일본의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총회(COP3)에서 합의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있다. 교토의정서는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6대 온실가스(이산화탄소[CO₂], 아산화질소[N₂O], 메탄[CH₄],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₆])의 배출량 억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다. 교토의정서의 부속서B(Annex B)에 포함된 국가들은 1997년 당시 선진국으로 분류되어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컸으므로 1차는 2012년까지, 2차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일정 수준 감축해야 했다.
교토의정서는 또 다른 중요한 기후변화정책을 낳았다. 부속서 B에 포함된 유럽연합이 회원국 전체의 주요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상한선(cap)을 정하고, 상한선에 맞게 배출권을 할당한 후 배출량이 할당량을 넘는 기업이나 사업자는 다른 기업이나 사업자의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세계 최대의 배출권거래 시장이 출범했다. 이 혁신적인 제도 EU ETS(EU Emissions Trading Scheme)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직접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carbon tax)와 더불어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주요 정책으로 자리 잡았고, 전 세계에서 국가별, 지역별, 지방별로 비슷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과 비정부 주체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시작하다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이미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던 기후변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개발도상국들이 보고 있었다. 선진국들은 자신들만의 노력으로는 기후변화 억제에 성공할 수 없었으므로 개발도상국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었다. 2010년 COP16에서 기후변화 적응을 주목적으로 합의한 칸쿤 적응 틀(CAF, Cancun Adaptation Framework)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이 피해 보상 문제를 직접 다루기 위해 UNFCCC 제19차 당사국총회(COP19)가 201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렸고, 여기서 ‘기후변화의 영향과 관련된 손실 및 피해에 관한 바르샤바 국제 메커니즘(Warsaw International Mechanism for Loss and Damage associated with Climate Change Impacts, WIM)’이 탄생했다. WIM 합의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위험관리, 관련기구·조직·이해관계자간 연계, 재원·기술 지원 등 관련기능을 포괄적으로 수행하는 집행위원회가 설립되었다. WIM은 COP15의 코펜하겐 합의(Copenhagen Accord)로 선진국이 2020년까지 개발도상국에 제공하기로 합의한 매년 1천억 달러의 지원금(기후재정 지원 실행기구로 설립한, 인천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포함)과 더불어 개발도상국 지원 정책의 기본이 되었다.
교토의정서까지의 세계 기후변화정책에 대한 불만은 개도국 정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기후변화정책 논의에 비정부기구(NGOs), 기업, 지방정부 등은 소외되었다는 문제의식이 이어졌다. 우선 비정부기구 참여의 문제에 대해서는 2012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COP18에서 우선 기후변화에 관한 (성인지적이고 참여적인) 교육, 훈련, 시민의 인식, 시민의 정보 접근, 시민의 참여, 지역 내 및 국제 협력을 위해 정부도 행정력과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UNFCCC 제6조의 실행 방안을 구체화했고 ‘도하 작업계획(Doha Work Programme)’으로 불렸는데, 2015년부터 ‘기후 역량강화 행동’(Action for Climate Empowerment, ACE)이라는 고유 명칭이 부여됐다. 그리고 시민사회, 기업과 지방정부까지 아우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2014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COP20에서 비당사국 주체들의 기후행동 플랫폼인 NAZCA(Non-State Actor Zone for Climate Action)를 설치하면서 논의가 확대되었다.
파리협정: 전 세계가 함께 하는 기후변화 대응의 전기(轉機)
그러나 역시 세계 기후변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15년 파리에서 일어났다.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에서 UNFCCC의 195개 전 회원국(유럽연합을 포함하면 196개 당사국)이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및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추구”를 명문화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에 합의했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강제했었으나, 파리협정은 모든 당사국이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정책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당사국은 주기적으로 스스로 기후행동 목표(“국가결정기여”, NDCs,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정해서 UNFCCC에 보고한다. NDCs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GST)에서 종합된다. 매번 제출하는 NDCs는 이전의 목표보다 진전되어야 하는 조건(Principle of Progression)이 붙었다. 또한, 파리협정에 따라 모든 당사국은 2050년까지의 장기 온실가스 저배출 발전전략(LT LEDS, 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y)도 제출해야 한다. 파리협정의 강화된 지구온난화 억제 목표는 2018년 IPCC가 발표한 ‘지구온난화 1.5°C 특별보고서(SR15)’에서 과학적 근거를 다시 한번 확보했다.
글래스고 기후 합의: 약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희망
1992년 UNFCCC 합의 이후 갈등과 합의를 거듭해온 세계 기후변화정책은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 다시 한번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합의 내용을 종합한 ‘글래스고 기후 합의(Glasgow Climate Pact)’에 따르면, 파리협정 이후 구체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기후행동까지 연기할 구실을 주었던 파리협정 세부규칙(이른바 “Paris Rulebook”)이 완성되었다. 이에 따라 강화된 투명성 체계(ETF, Enhanced Transparency Framework)가 적용되어,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 기준이 엄격해진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기후 재정 제공도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 지원, 피해 및 손실 보상 등을 위해 더 확대된다. 기후역량강화 행동(ACE) 프로그램이 제도화되고 예산을 배정받아 더욱더 강력하게 시행된다. 비당사국 주체들의 기후행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COP22에서 합의했던 마라케시 파트너십(Marrakech Partnership for Global Climate Action)도 재승인되어 지방정부, 기업, 투자자들의 기후행동을 강화하리라 기대된다.
때마침 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도 올해 모두 나온다. 작년에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제1실무그룹) 보고서가 공개되었고, 올해 2월에는 기후변화의 ‘영향, 적응 및 취약성’(제2실무그룹), 3월에 기후변화의 ‘완화’(제3실무그룹)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모든 실무그룹의 보고서가 나오면, 202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집중 토론(Structured Expert Dialogue, SED)에서 장기 기후변화 대응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종합보고서(Synthesis Report) 저자들에게 전달한다. 제6차 보고서의 완결편인 종합보고서는 올해 9월 30일에 UNFCCC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참고문헌
IPCC. (2007). Climate Change 2007: Synthesis Report.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Ravishankara, A. R., Randall, D. A., & Hurrell, J. W. (2022). Complex and yet predictable: The message of the 2021 Nobel Prize in Physic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9(2), e2120669119.
Shabecoff, P. (1988, June 24). Global Warming Has Begun, Expert Tells Senate.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1988/06/24/us/global-warming-has-begun-expert-tells-senate.html박훈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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