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CA 칼럼: 기후중립사회, 연착륙의 환상을 깨자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271, 2021.09.24 10:59:04
  • 점점 빨라지는 기후위기의 시계

     

    기후위기의 시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유례가 없는 홍수와 폭염, 허리케인 등이 유럽과 중국, 미국을 강타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그동안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해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최근 발표된 IPCC의 보고서는 우리가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040년 이전에 1.5℃ 이상 상승하게 되리라 전망했다. 2018년 특별보고서에서의 전망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이 전망이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는 인류가 기후위기를 극복할 기회를 이미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류의 대응도 급박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위험보고서(The Global Risks Report 2021)에서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의 하나로 기후협상의 실패를 꼽았다.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공식화했고, 주요 선진국은 대부분 205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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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 대통령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얼마 전 탄소중립위원회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했다. 또, 국회에서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의 35% 이상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의결했다. 다음 정부를 맡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은 진보에서 보수까지 모두 서로 다른 정책으로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을 약속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가장 큰 목표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정치권도 탄소중립사회를 약속하고 있다. 그럼 이제, 우리 사회는 탄소중립으로의 순조로운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인가?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사회 실현을 의지와 노력이 국내외적으로 큰 환영을 받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발표된 탄소중립위원회의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은 환영보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산업계는 산업계의 입장에서, 청년과 환경단체는 또 다른 이유로 정부의 탄소중립시나리오에 대해서 반발을 하고 있다. 청년들은 정부의 탄소중립안은 사실상 탄소중립을 포기하는 안이라고 하면서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독자적인 탄소중립안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산업계는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으로 실행방안이나 지원대책도 없이 목표를 제시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탄소중립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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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정치권의 탄소중립 공약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이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과 산업구조를 지속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둔 진보적인 대선주자들도 절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경제성장이라는 목표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만들어진 법의 명칭에서도 녹색성장을 빼지 못했다. 온실가스 감축도 하고, 경제성장도 이룬다면 그보다 좋은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극복에서 더 이상의 연착륙 시나리오는 없을 것 같다. IPCC 보고서에서 2050년 1.5℃ 이하로 억제라는 시나리오가 지워지고 있듯이 인류가 큰 충격 없이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기후중립의 2가지 시나리오

     

    올해 초 일본의 IGES는 일본이 2050 넷제로 사회에 이르는 2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하여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현재의 산업과 기술의 연장 선상에서 넷제로를 달성하는 시나리오(Lock-in 시나리오)와 사회의 모든 분야의 변혁을 통해서 넷제로를 달성하는 시나리오(전환 시나리오)를 비교하였다(IGES, 2021, ネット・ゼロという世界, 2050年 日本試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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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ck-in 시나리오는 기존의 경제와 산업의 연장선에서 큰 사회변혁이 없이 넷제로를 달성하는 시나리오이고, 전환 시나리오는 기존의 사회제도와 경제구조, 인프라 등 중요한 사회적 요소를 변혁하여 넷제로를 달성하는 시나리오다. Lock-in 시나리오는 기존의 화석연료 의존형 기술을 유지하면서, 공기 중의 온실가스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기술 (DACS: Direct Air Capture and Storage)이나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지원하고 감축량을 인정받는 프로그램(JCM: Joint Crediting Mechanism)을 활용해서 배출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접근이다.

     

    전환 시나리오는 화석연료 수입에 드는 비용을 재생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여, 필요한 거의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CCS를 통한 배출량 감축을 최소화하겠다는 시나리오이다.

     

    IGES는 두 시나리오의 비교를 통해서 Lock-in 시나리오는 단기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술의 미래상을 분명하게 그릴 수는 있지만,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CO2 저장 비용과 저장량이 현저하게 커지는 위험이 있고, 화석연료 보유국에 계속 의존해야 하는 에너지 안보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환 시나리오가 위험이 적고 지속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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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도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한 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이 제시하는 2050 시나리오의 대부분은 IGES가 제시한 Lock-in 시나리오에 가깝다.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과 기술을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새로운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방안이다. 기존의 산업구조와 경제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설정하고 있는 미래 시나리오이다. 어떻게 보면 2050년의 탄소중립 목표가 아니라 2030년의 과도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초점을 둔다면 Lock-in 시나리오가 더 쉽고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가 있다. 석탄화력을 LNG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당장 전환의 고통은 피해갈 수 있겠지만,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안게 된다.

     

    과감한 전환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산업과 경제, 일상생활의 전 분야에서 급격한 전환을 해야하는 전환 시나리오는 절대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IMF 구제금융 사태보다, 코로나19 팬데믹보다 더 큰 혼란과 위기를 겪으며 전환의 힘든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의 변혁과 혼란을 피하고자 미래세대와 불확실한 기술에 탄소중립의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시민의 부담 없이, 경제와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혁 없이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연착륙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기후중립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할까? 지금이 비상사태라는 인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IMF 외환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넘어왔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순식간에 굴지의 대기업들이 무너졌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그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대적인 산업구조 조정과 대량실업의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위기를 넘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온 후유증은 정부와 기업과 시민들의 삶에 오랜 상처를 남기겠지만 우리는 이 위기도 넘어설 것이다. 

     

    비상시에는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키워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산업과 경제의 구조, 일상생활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계획해야 한다. 아무도 피해 보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방법으로 비상사태를 극복할 수는 없다. 아무런 고통 없이 성장을 지속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는 순조로운 희망의 로드맵이 아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구조와 산업구조,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탄소중립을 이루어나가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사회경제 전체의 전환을 고려한 전환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한다. 기존의 모든 질서가 작동하지 않을 비상시에 활로를 찾으려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버리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아무것도 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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