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교회의 교황 회칙 ‘라우다토 시’에 나타난 생태론적 전환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527, 2024.06.12 15:28:37
  • 1.1 왜 생태론적 전환인가?

     

    기후위기는 인간이 환경을 소홀히 한 결과의 극점을 이루는 현상이다. 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생각과 방법론이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알고 그 범위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태론적 입장이 있겠고, 그 위기의 해결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는 정치주의적 접근도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의 개발이 중요하다는 기술주의적 태도도 있고, 마지막으로 기술 유무보다 그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면서 확산할 수 있는가를 중시하는 경제론적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입장이나 방법론 중에 무엇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열 수 있으며, 무엇이 기후위기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을까? 수십 년 전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원인임이 명확해졌을 때, 해결을 위한 정책과 제도, 기술과 경제성 분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풍력발전기의 규모는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고 태양광 패널의 가격은 지금의 수십 배였다. 그런데도 덴마크에서 풍력 발전을 시작하고 독일에서 태양광 발전을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다를까?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많은 나라에서 가장 싼 전기가 되었고 에너지저장 비용도 갈수록 저렴해지고 있다. 수많은 나라가 재생에너지 생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었고 지금도 만드는 중이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기후변화가 없다는 부정론이 판치고 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 괴담이 횡행하고 중국에서는 석탄발전소를 늘리고 있다.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그 기술이 경제성이 있는데도 크게 줄었어야 할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생태론적 전환을 이룬 사람이 많아진다면 정치에 영향을 미쳐 환경보호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것이 그에 대한 기술 개발을 촉진하며 개발된 기술을 대규모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론적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에 기반해 우리가 영위하는 삶 전체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평등과 환경파괴에 직면한 세상과 지구를 바라보며 그 해결을 위한 생태론적 회개를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라는 회칙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와 세계인에게 권고한다.

     

    1.2 환경 문제를 보는 가톨릭교회의 변화

     

    가톨릭교회의 현 교황이 그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한 것은 평생 가난한 자와 함께 살았던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노동과 빈곤 문제에 천착했던 자신의 삶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이 성인이 대지와 그 대지 안의 피조물을 어머니 혹은 형제자매처럼 여기며 소통하며 살아왔다는 의미에서 교황이 생태와 환경문제, 아울러 기후변화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예고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총화가 2015년 발표한 자신의 회칙인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이고 지난해 발표한 권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Laudate Deum)’이다. 지난 수십 년간 가톨릭교회의 사제, 수도자들이 생태신학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여러 교황이 환경문제에 대해 진지한 우려와 해결에 관한 권고를 하였지만, 이번 교황의 회칙은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교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이를 교회 구성원이 영성의 근원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전환적 의미를 지닌다.

     

    이 회칙은 지구와 대지가 그 안에 사는 신의 모든 피조물의 공동의 집이라고 규정하고 그 피조물 모두가 그 안에서 친교(communion)를 나누는 형제자매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관점에서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환경과 불평등 문제를 파악한다. 쓰고 버리는 문화로 야기되는 쓰레기와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무한정 늘어나는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로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로 치달으며 수많은 생물종이 급속히 멸종하고 있고,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홍수, 폭풍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고통받고 있다. 그중 특히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집중되고 있어서 최소한의 생존권인 물조차도 마음대로 먹고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중에 세계 경제는 성장하지만 노동자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특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불평등은 더욱 심화했다. 환경위기와 불평등은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응하며 가톨릭교회가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론과 신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준 것이 이번 회칙이라 할 수 있다.

     

    1.3 새로운 관점

     

    그리스도교는 구약에 의해 다른 종교와는 다른 독특한 면을 가지게 되었다. 유일신 신앙에 따라 하나인 신 이외에는 누구도 신성(神性)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과 대지를 신과 같이 숭배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 자연에서 떨어져 나와 그 대지를 개척하여 이용할 때 별다른 저항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또한 신이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특별히 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했다는 믿음을 근거로 인간이 다른 생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지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 회칙에서는 이를 자연지배 사상과 인간중심주의로 규정하고 성경을 자구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올바른 해석학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고대의 인류는 자신의 힘이 미약하여 자연과 자연현상을 신의 피조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신성시하거나 아예 신으로 숭배하는 일이 잦았던 데 비해, 그리스도교는 그것들을 탈신비화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교는 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

     

    대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한 것과 하느님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신이 인간에게 자연과 대지를 아무렇게나 남용하고 다른 생물을 멸시하고 멸종시킬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신이 땅을 지배하라는 위임을 했다면 그 땅을 갈고 그 땅에서 일하며 그 땅을 돌보고 보호하는 의무 또한 부여했음을 창세기에서 분명 말하고 있다. 라틴어본 회칙에서 나오는 mandati “subiciendi” terram (cfr Gn 1,28) et “operandi et custodiendi” eam (cfr Gn 2,15)에서, 라틴어 mandatus는 명령, 의무이자, 명령받은 것 안에서 행할 수 있는 재량권, 위임이기도 하다. 땅을 신이 인간에게 맡기는 것은 그 땅을 일구고 돌보라는 명령이기도 하며, 따라서 인간의 의무이기도 하다. 신이 만든 피조물의 공동의 집에서 인간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은 인간이 그 안에서 노동하며 더불어 살면서 공동의 집을 잘 가꾸고 보호하여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나누며 살라는 명령과도 같다.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런 친교에 대한 더 큰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신의 사업에 참여하는 데 따르는 의무다.

     

    그런 의미에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새로운 해석을 얻는다. 아벨의 존재에 대해 묻자 카인이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 ‘카인이 저주를 받아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신이 말한 의미는 인간이 신과, 다른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 그리고 땅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인 것이다. 서로 책임지고 돌보고 보호해야 할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렇지 않으면 신에게 버림받고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뜻이다. 

     

    가톨릭교회는 그동안의 생태신학 연구와 실천의 성과에 응답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영성의 원천이 있음을 말한다. 신의 말씀은 구약과 신약 등 역사의 몇 시기에만 쓰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피조물 자체가 신이 쓴 소중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 회칙에서는 명시적으로 이를 성서라고 하지 않았지만 생태신학에서는 하느님이 구약과 신약을 넘어 매일 새로운 피조물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성서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존재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 하느님 사랑과 희망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하며, 그러한 피조물에 대한 관상(觀想, contemplation)에서 신의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고, 따라서 성경의 고유한 계시와 더불어 다른 피조물들과 이루는 관계 안에서 신의 계시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모든 피조물 간의 보편적 친교와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서 인간 상호 간의 보편적 친교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보편적 친교를 나누는바, 불평등 문제의 해결 또한 매우 중요하다. 환경 위기가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나라에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점을 감안하면 기후위기 해결 과정 자체가 그 불평등을 해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 없이는 기후위기 해결도 없다. 노동정의 실현과 기후위기 해결은 같이 가는 문제라고 이 회칙은 보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취한 생태신학이 해방신학과 동떨어진 과제가 아님을, 이 회칙에서 보여준다.

     

    1.4 생태론적 회개와 생태 영성

     

    이 회칙이 현대에 만연한 인간중심주의, 기술지배사상과 이윤극대화, 세계화를 논박하고, 그에 따른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방법론으로써 환경, 경제, 정치, 문화 생태론이 온전한 전체를 이루게 하는 통합생태론(integral ecology)을 제안하고 있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해결을 향한 여러 접근법과 행동 방식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는 생태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히 논의된 일반적인 논리다. 이 글에서는 다만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신학과 교리 변화가 그 신자들에게 환경과 기후, 불평등 문제를 보는 관점의 변화를 낳아 지금 가장 필요한 생태론적 전환을 이루는 데에 도움을 주는가에 집중하겠다. 

     

    무엇보다도 인류 자신, 자기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는 점이 중요하다. 우선 강박적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의식 안에 머물 때 탐욕이 커지고, 공허할수록 구매하고 소유하고 소비할 대상을 더욱 필요로 한다. 소비 지향적 생활 양식에 대한 집착은, 특히 소수의 사람만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때, 폭력과 상호 파괴만을 가져올 뿐이다.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타자(他者)를 향하는 능력을 다시 키워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다른 피조물의 본질적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우리 주변의 고통이나 환경 악화를 막는 절제를 실천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태 교육을 통한 더 많은 사람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 환경 교육이 학문적 정보,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과 예방 등 지식적 접근으로 시작할 수 있겠지만, 도구적 이성, 경쟁, 소비주의,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내적인 차원에서는 우리 자신과, 연대의 차원에서는 다른 이들과, 자연의 차원에서는 모든 생명과, 영적인 차원에서는 신과 조화를 이루는 근본적 전환을 꾀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정보 제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습관의 형성에 이르도록 도와야 한다. 사소한 습관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다. 그런 생활 양식의 변화가 정치·경제·사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힘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생활 양식의 변화를 추동할 근본적인 힘으로써 생태 영성을 제안하고 그 시작이 바로 생태론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임을 말한다. 이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기억하며 피조물과 맺는 건전한 관계가 인간의 온전한 회개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피조물과의 화해라는 의미에서, 회개를 위해 우리 삶을 성찰하고 우리의 행위와 방관으로 어떻게 신의 피조물에 해를 끼쳐 왔는지 깨달아야 한다. 회개, 곧 마음을 바꾸는 경험이 필요하다.

     

    회개에 필요한 태도는 우선 돌봄의 정신, 감사와 무상성(無償性)의 태도이다. 신이 세상을 사랑으로 선물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커다란 우주적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사랑에 넘치는 인식에 이른다. 

     

    구약에서 맺었던 성부(聖父)와의 관계, 신약에서 보여주었던 성자 예수와의 구체적 사랑의 관계를 넘어 들판의 꽃과 새에게서 신의 빛나는 현존을 볼 수 있다. 생태신학에서는 이를 성령의 현존으로 본다. 피조물의 총체로서 자연 자체가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피조물 모두에 신이 현존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모습이 더욱 거룩해지고 역동적으로 된다. 피조물에 대한 관상과 그들과 맺는 친교 관계 자체가 영성과 믿음의 또 다른 근원이 된다. 

     

    1.5 맺음

     

    가톨릭교회가 환경파괴, 생물의 멸종 및 기후위기를 교회 밖의 문제로 치부하고 바깥 사회에 행동을 요구하던 태도를 버리고, 피조물로서 인간이 또 다른 피조물인 공동의 집 지구와 그 안의 생명체를 돌보고 보호하는 일을 의무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바로 성령의 현존을 증명하는 거룩한 삼위일체의 발현으로서 영성과 믿음의 원천으로 들어올린다고 인정하면서 신학과 교리의 변화를 꾀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생태문제를 교회 내의 과제로 설정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 회칙의 발표 이후에 그동안 가톨릭교회에서 발전해오던 생태신학이 교회의 전면에 나서면서, 한편으로는 영성과 믿음의 새로운 원천으로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교회가 기후위기 등 다양한 생태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실천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먼저 일어났고 점차 평신도까지 그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 생태론적 회개와 전환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개인과 집단의 실천, 정치·제도적 변화, 기술의 확산과 경제의 전환을 이루는 데에 있어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제고하였다. 특히 기후위기 문제가 본래 보편적인 인류 공통의 문제인데도, 당파적인 접근으로 그 해결책이 번번이 가로막히는 상황에서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는 여러 종교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가톨릭교회가 여러 종교와 그 신자와의 공동 실천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개정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1.

    FRANCISCI Summi Pontificis Litterae Encyclicae, LAUDATO SI' de Communi Domo Colenda,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15.

    Encyclical Letter LAUDATO SI’ of the Holy Father FRANCIS on Care for Our Common Home, Vatican Press, 2015.

    메리 에벌린 터커, 존 그림, 앤드루 언절, 토마스 베리 평전, 이재돈, 이순 옮김, 파스카210, 2023.

    Apostolic Exhortation LAUDATE DEUM of the Holy Father FRANCIS to All People of Good Will on Climate Crisis, 4 Oct. 2023.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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