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을 위한 기후 이야기 11> 소설 『순례주택』에서 지구와 인간을 읽는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787, 2021.07.26 16: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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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림은 소설 『순례주택(지은이 유은실)』의 1인칭 서술자이자 주인공(나이 열여섯)이다. 

     

    집주인 김순례 씨의 후덕한 마음씨 덕분에 여섯 가구가 사이좋게 모여 사는 순례주택. 이곳의 입주자들은 성실하게 각자의 삶을 소중하게 세워가는 한편으로 진심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이웃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들이다. 남의 덕을 보려 하지 않고, 남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남 위에 군림하려고도 하지 않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거북마을’은 이들이 사는 마을 이름으로 제격이다 싶다. 

     

    거북마을 사람들과 달리, 인근의 원더 그랜디움 아파트 103동 1504호에 사는 사람들(수림의 부모와 언니 미림)은 자기들만 잘 났다고 생각하고 거북마을 사람들을 빌라촌 사람이라고 멸시한다. 수림이가 설명한 상황을 보면, 수림이 아빠는 15년째 전임 교수 임용에 번번이 실패해온 시간강사이고, 수림이 엄마는 첫째 딸 미림의 공부를 돕는 데 전념하는 전업주부다.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은 부부는 16년 전, 첫째 딸 미림이를 보살피는 고된 양육 노동에 지쳐 둘째 딸(주인공 수림)을 홀아버지/장인에게 맡긴다. 결국, 두 사람은 둘째 수림이를 생후 15일째에 맡긴 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7년간 공짜로 아버지/장인과 그의 연인 김순례 씨에게 수림이 양육의 부담을 떠넘긴다. 한마디로 ‘장기자식유기자’다. 

     

    게다가 결혼 직후부터 친정아버지/장인의 집에 밀고 들어가 집주인을 밀어내고 17년 넘게 공짜로 살아온 ‘장기무단점거자’다. 그것도 모자라 연로한 아버지/장인에게서 매달 용돈까지 받아 써왔다. 뻔뻔하고 염치없는 딸과 사위다.  

     

    그러다 이 부부와 첫째 딸 미림이 원더 그랜디움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벌어지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세한 전말을 알려면 소설 순례주택을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지구를, 위기에 처한 지구를 떠올렸다. 

     

    소설에 나오는 순례주택이 바로 지구 아닐까? 우리는 모두 지구의 한귀퉁이를 빌려 지구의 덕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거북마을 사람들은 지구의 한귀퉁이를 빌리되 그 고마움을 알고 자기 능력껏 지구에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는 정성껏 순례주택의 계단 청소를 하고, 누군가는 공동으로 쓰는 공간에 묵묵히 커피를 채워 넣는다. 이런 선행은 집주인 순례 씨로부터 시작되었고, 세입자들도 선행에 한몫을 보탠다. 순례주택 사람들은 공동체 속에서 힘을 얻고 혜택을 공유하고, 공동체와 공동체의 공간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질서가 망가지지 않도록 관리한다. 선순환의 공동체다. 

     

    순례 씨의 선행은 어떤가? 순례 씨는 죽으면 쓰지 못할 돈이라며, 임대료를 시세를 따라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는다. 이게 소문이 나서 순례주택 전셋집이 비면 바로 입주하려는 사람들의 대기 줄까지 생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이건 대체 얼마만큼일까?    

     

    순례 씨는 꼭 필요한 물건은 자원 순환을 위해 중고로 산다. 차 타는 것도 싫어한다. 75세 순례 씨의 3대 고민은 “썩지 않는 쓰레기,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 쓰고 남는 돈”, 이 세 가지다. 순례 씨는 죽으면 자기 재산은 국경없는 의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결심하고, 통장에 쓰고 남은 돈을 정기적으로 정리한다. 이웃들에게 간식이나 과일을 사주면서. 순례 씨에게 필요한 돈은 얼마 되지 않을 듯싶다. 

     

    순례 씨가 사는 법을 보고 있는데, 정반대로 돈에 욕심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구 덕분에 얻은 재물과 지구를 착취하는 기술을 기필코 후손의 손에 넘겨주려고 설레발을 떠는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주인공 수림이와 순례 씨의 관계 역시 우리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순례 씨는 세신사 직업 은퇴 후에 남자친구(수림의 외할아버지)와 함께 그의 손녀 수림을 맡아 갓난아이 때부터 7년 동안 완전히 맡아 키워주었다. 수고비조차 챙기지 않았다. 수림이가 부모가 사는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순례 씨는 친할머니처럼 수림을 진심으로 아끼고 챙긴다. 지구는 자신이 품은 자원과 서비스를 내주어 인간의 성장을 돕는다. 지구는 인간에게 부양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수림은 순례주택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온 덕분인지 제 부모보다 의젓하고 앞가림을 잘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수림이는 부모 곁으로 거주를 옮긴 후에도 여전히 순례 씨와 순례주택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원더 그랜디움에 사는 수림의 부모와 첫째 딸 미림의 생활은 어떤가?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립하지 못 한다.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어른의 얼굴을 한 아이들이다. 위기가 닥치면 남 탓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늘 그래왔듯이 제 앞가림을 못 한다. 기껏해야 만만한 친척들에게 다시 손을 벌리며 졸라대는 것뿐이다. 

     

    호구처럼 여기던 아버지/장인이 돌아가시고 3주 후면 아파트를 내주고 나가야 할 판에, 수림이 엄마는 짜증난다며 집에 틀어박히고 수림이 아빠는 절망을 달래려 술을 마신다. 언니 미림은 학원비가 밀렸다고 징징댄다. 수림이가 주민센터에 가서 긴급생계지원을 받으라고 말하자, 미림은 ‘우리가 생활보호대상자야?’라며 악을 쓰고, 수림이 엄마는 ‘주민센터 사회복지과에 미림이 반모임 학부모 있는데 나보고 거길 가라고?’ 라며 악을 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식은 제 힘으로 키우는 게 자연의 순리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갓난아이를 남에게 맡겨 키웠더라도, 피치 못할 사정이 사라지면(임신, 출산, 육아의 고통에 무너졌던 수림이 엄마의 몸과 마음이 웬만큼 회복되었다면) 아이를 데려와 부모가 직접 키웠어야 한다. 그러나 수림이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7년 동안이나 애정을 가지고 수림이를 키워준 순례 씨와 수림이 외할아버지의 노고에 단 한 번의 고마움조차 표하지 않았다. 

     

    충분히 능력이 되는데도 하지 않는 건 무책임이다. 

     

    이 대목에서 수림이 아빠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내가 전임 교수가 되려면, 그래서 우리 가족이 풍족하게 살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어. 장인 어른과 순례 씨가 힘드신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었어. 그래서 우리는 수림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어,” 라고. 이들 부부는 왜 그 두 사람을 희생시켰을까? 만만해서가 아닐까? 

     

    이산화탄소 배출이 기후변화의 원인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무책임이다. 아껴쓰면 줄일 수 있는데도, 다른 방법을 쓰면 줄일 수 있는데도,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원인인 석탄, 석유, 가스를 맘껏 써대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경제를 살리려면, 온 국민이 풍족하게 살려면, 지구의 희생이 필요해. 이산화탄소 배출하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냐. 우리는 석탄 발전 계속할 수밖에 없어.” 

     

    왜 지구를 희생시키려고 하는걸까? 만만해서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 우리가 무지한 탓 아닐까? 

     

    요즘 들어 우리는 지구를 만만하게 생각했던 게 큰 실수라는 걸 깨닫고 있다. 난데없는 홍수와 폭염과 해수면 상승, 북극 빙하의 소실이, 이제껏 우리가 몰랐던, 아니 알고도 무시해왔던 상처 입은 지구의 모습을, 지구의 심장과 지구의 생살에 찍힌 깊은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런데, 수림이 부모에게 붙인 장기자식유기자, 장기무단점거자란 딱지로부터 과연 나는 자유로울까?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나, 지구가 내준 자리를 잠시 빌려쓰고 있다는 걸 잊고 지구에 흠집을 내는 데 한몫을 보태고 있는 나, 지구에 사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지구를 보호할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나. 젖 뗄 나이가 벌써 지나 어른이 되었는데도, 지구가 아낌없이 내어주는 풍요로운 젖을 물고 놓을 줄 모르는 어른아이가 바로 내 모습 아닐까. 

     

    초등학교 입학 때가 돼서야 부모 곁으로 돌아간 수림이가 이렇게 철없고 대책없는 부모와 언니로부터 큰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의젓하게 자라 제 부모·형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첫째 미림이가 부모 품에서 자라고도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둘째 수림이가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부모 품밖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게 차라리 잘된 일 아닐까 싶다. 수림이 부모처럼 마을을, 이웃을, 지구를 무시하는 부모라면 자식 머릿속에 ‘나도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처럼 쉽게 편하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심어놓을지도 모르니까. 

     

    공동체 속에서 베풀고 베풂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일, 지구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사명이 되기를 바란다.

     

     

    이순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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