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침반 ―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 “머니메이커 펌프” 아프리카의 영세 가족농을 일으켜 세운 적정기술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6264, 2018.04.24 11:13:05
  • 10146182213_4c0fd32d13_o.jpg Photo by DIVatUSAID / CC BY-NC-ND 2.0


    “머니메이커 펌프아프리카의 영세 가족농을 일으켜 세운 적정기술


    아프리카는 엄청난 천연자원을 보유한 대륙이지만 수자원은 예외다. 아프리카에는 세계 인구의 15퍼센

    트가 살지만, 수자원은 고작 9퍼센트만 분포되어 있다. 날씨와 강우량의 변화가 매우 심하여 오랜 가뭄과 오랜 장마가 번갈아 발생하는데, 수많은 국경과 지리적 특성, 일정하지 않은 기후의 영향 때문에 수자원의 평등한 공유와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아프리카 인구의 80퍼센트가 좁은 땅에서 작물을 키워 생활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농촌 지역은 특히 심각한 가난과 기근에 시달린다. 빗물을 이용할 수 없는 건기에는 대부분의 농가가 물 부족으로 경작을 하지 못해 식량 부족에 시달린다. 우기에는 빗물을 이용해 비교적 많은 작물을 생산하지만 신선하게 보관할 방법이 없어 아까운 작물이 썩는 걸 지켜봐야 한다. 더구나 이상기온과 기상이변으로 물과 식량을 구할 길이 막히면 갈수록 많은 사람이 기아와 난민, 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안정적인 농업용수 확보는 점점 더 어려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행히 아프리카에서는 1990년대부터 수많은 소규모 가족농가들이 머니메이커(Money Maker)라는 이름의 수동식 관수 펌프를 만나면서 수확량이 늘고 소득이 늘어가고 있다. 이 펌프를 보급한 주역은 1991년에어프로텍(ApproTec)’이란 이름으로 출발해 최근에 이름을 바꾼 사회적 기업킥스타트(KickStart)’. 케냐, 부르키나파소,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가나 등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적정기술을 공급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머니메이커 펌프는 페달을 발로 밟아 적은 힘만으로도 깊은 곳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계다. 킥스타트가 개발한 여러 종류의 펌프 중에서도 가장 작은 머니메이커 펌프는 크기가 작고 무게가 4.5킬로그램 정도이며, 설치와 작동, 부품 교체가 간편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지하 7미터 깊이의 수원에서 1분에 38리터의 물을 끌어올려 하루 6천 제곱미터 면적의 농지에 물을 댈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판매 가격은 연결용 호스를 포함해서 70달러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비용을 나누어 내거나 수확한 후에 지불하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연결용 호스는 점적 관수에 적합한 형태로 되어 있다. 점적 관수란 호스에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물이 조금씩 나오도록 조절한 다음, 작물의 뿌리 근처에 물이 방울져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점적 관수 방법을 쓰면 적은 양의 물로도 많은 작물에 물을 줄 수 있다. 많은 농가가 이 펌프와 점적 관수용 호스를 사용하면서 수확량이 많이 늘어났다. 이 펌프는 케냐에서만 4만 개가 팔렸는데, 연평균 110달러였던 케냐 농가 소득이 1,000달러로 늘었다고 한다.


    케냐 남부 어느 마을에 사는 여성 라합은 머니메이커 펌프를 쓴 뒤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펌프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라합은 채소밭에 줄 물이 부족해서 가족이 먹을 채소를 기르기도 버거웠고, 채소를 시장에 내다파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전통적인 물주기 도구인 물동이로는 힘만 많이 들 뿐 작물에 충분한 물을 줄 수 없고, 설상가상으로 가까운 곳의 우물이 말라붙으면 물동이조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합은 머니메이커 펌프를 사용한 뒤로 수확이 늘어나 가족이 먹고 남은 작물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농지를 임대해서 시금치, 케일, 양배추, 양파 등 시장에 내다 팔 작물을 길러 일주일에 5달러에서 12달러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라합은 앞으로 임대해 쓰고 있는 농지를 사들여서 농사를 짓고 닭도 키울 계획이다. 이제는 소득이 늘어나 살림이 핀 덕분에 가족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자식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농업노동을 하는 인구의 70퍼센트가 여성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좁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데 물이 부족해 수확이 변변치 않다. 가족을 부양하는 데 별 보탬이 되지 않으니 여성들은 늘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림을 꾸려가야 한다. 하지만 머니메이커를 이용하는 여성들은 차츰 경제력이 생기고 발언권이 커져 가정은 물론이고 공동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들 여성에게 머니메이커는 단순히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아니라, 가난의 굴레를 벗겨주고 잠재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도구다. 이들은이 펌프가 모든 걸 바꾸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현재 아프리카에 공급되는 식량의 90퍼센트를 여성들이 생산한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의 적정 기술 개발·보급은 식량 증산뿐 아니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이끌어 지속가능한 사회의 튼튼한 기반을 조성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킥스타트는 머니메이커 펌프의 성능을 개량하고 대량 생산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현지 주민들에게 펌프와 부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을 맡겨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킥스타트의 자체 평가에 따르면, 킥스타트의 활동과 관련해서 31만 개의 페달 펌프가 팔렸고, 펌프를 사용한 24만 명이 수익 사업을 시작했고, 120만 명이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매년 1200만 명분의 식량이 공급되고, 21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킥스타트는 인간의 힘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인 태양의 힘을 이용하는 태양 전지 관수 펌프까지 개발, 보급하고 있다. 머니메이커와 태양 전지 관수 펌프는 대규모 전력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은 휘발유나 전기 등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태양의 힘을 이용해 농업 생산량을 늘린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와 물 위기, 식량 위기의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적정기술이다.


    유엔이 공개한 인구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인구는 97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무려 22억 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식량 증산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으면 세계는 기후변화 위기와 동시에 식량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100여 개 국가를 기준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가족 노동력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농가는 5억이 넘고, 이들 가족농가들이 세계 식량의 80퍼센트가 넘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세계 전역 농장의 84퍼센트가 면적 2만 제곱미터 미만의 농장인데 이런 소규모 가족농장이 세계 농지의 12퍼센트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식량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엔은 2014년을세계 가족농업의 해로 지정했다. 이는 가족농업이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세계 식량 안보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해 내린 결정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기아와 난민, 소득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세계적인 식량 안전 보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집중형 대규모 자동화 농업 기술에 투자하는 것보다 지속가능한 전통 농업 기술을 이용하는 소규모 가족농업을 장려하는 데 투자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세계는 더 늦기 전에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농업 분야 적정기술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참고자료

    www.un.org/development/desa/en/news/population/2015-report.html

    www.fao.org/family-farming-2014/en/

    kickstart.org/how-we-work/


    이순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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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 조보형

    2018.04.27 11:56

    우리나라에도 적용하면 좋을 듯.


    농민소득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대응이 시급합니다.


    저도 농사를 짓는데 물 때문에 애로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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