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케(酒)와 원전(原電) - 후쿠시마 원전 사고지역을 다녀와서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6538, 2013.09.12 01:37:36
  • 사케(酒)와 원전(原電)
    - 후쿠시마 원전 사고지역을 다녀와서-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8월3일부터 5일까지 일본 니가타(新潟)에서 자치체문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제55회 자치체학교가 열렸다. 나는 이번 자치체 학교에 특별연사로 초청되었다. 올해가 자치체문제연구소 창립 50주년이라, 외국과 교류하는 뜻으로 가까운 이웃인 한국의 지방자치에 대해 학습을 하자는 취지였다. 나는 지방자치 전공자가 아니지만 농촌경제와 지역경제의 연구자로서 그리고 충남발전연구원장으로서 3년간 지방자치의 현장에 있었던 경험을 살려 초청에 응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내가 초청에 응했던 보다 솔직한 이유는 강연장소가 니가타였기 때문이다. 니가타는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과 술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니가타의 코시히카리는 일본 최고의 쌀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보급된 품종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코시노칸바이(越乃寒梅) ’, ‘구보타(久保田)’, ‘핫카이산(八海山)’ 등 고급 사케가 모두 니가타 쌀로 생산된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자치체학교 첫날, “니가타의 사케문화를 즐긴다”라는 주제로 파티가 열렸다. 파티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명주 이외에도 ‘카쿠레이’(鶴齡) 등 20여 가지의 니가타 명주가 등장하였다. 파티는 일본 사케 명인의 강의로 점잖게 시작했으나, 명주에 취하자 모두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노래는 서서히 옛 운동권 가요로 바뀌고 나도 끌려 나가 함께 춤을 추었다. 매우 친숙한 분위기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과거 일본의 학생운동 혹은 시민운동에 함께 해온 진보적인 사람들이다. 


    나의 강연은 마지막 날 전체회의에 있었다. 첫날 1000여명의 청중에 놀랐지만, 내 강연에는 100명 정도가 올 것으로 기대했다. 마지막 날 강연이고, 한국 지방자치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 깜짝 놀랐다. 첫날 전체회의에 못지않은, 어림잡아도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해 본적이 별로 없는데, 서툰 일본말로 말을 해야 하다니. 우선 냉수부터 한잔하고 속을 차린 뒤, 90분간 “한국의 지방자치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인터뷰 형식의 강연을 하였다. 강연을 하면서 청중들의 진지한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강연이 끝난 뒤 실시한 앙케이트 조사는 대호평이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의 칭찬에 감점을 하더라도,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다.

     

    불안에 떨며 후쿠시마현으로 향하다

     

    여기까지는 나의 행복한 일본 체류기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를 강연에 초청한 이케가미(池上洋通)씨로부터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지역을 시찰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사고가 발생한지도 2년여가 지났고, 일본사람들도 살고 있다고 하여 원전 폭발의 심각성을 확인해볼 요량으로 제안에 응했다. 그런데 내가 후쿠시마를 방문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일본사람도 해외로 도피한다고 하는데 그런 곳을 왜 가느냐”, “방사선에 노출되어 암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자칫하면 평생 고생하면서 살 수도 있다” 등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더욱이 일본 출발 이틀 전에는 친구가 카카오톡(메신저)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유증의 심각성을 알려왔다. 나는 거의 사지로 가는 기분이 되었고, 후쿠시마 시찰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핑계를 대고 방문을 취소할까 싶었지만 이것은 이케가미 뿐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아직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어, 이런 저런 생각 끝에 후쿠시마 방문을 4일에서 3일로 하루 줄이는 것으로 자신과 타협했다.


    후쿠시마 시찰은 자치체 학교에 참가한 후쿠시마현 다테시(伊達市)의원인 사사키(佐々木)씨가 안내해주었다. 사사키씨는 일본공산당 공인으로 10기째 40여 년간 시의원을 하고 있다. 20세에 시작하여 처음에 무보수였던 그는  트럭운전 등 갖은 궂은일을 하며 시의원 생활을 해왔으나, 지금은 월38만 엔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시의원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40여 년간 시의원이라니 지겹지 않냐고 물었더니, 고생을 하지만, 보람도 있고 그만두고 싶어도 주위의 강요 때문에 계속한다고 한다.


    니가타에서 다테시까지는 약 200km로 사사키씨의 승용차로 이동하였다. 겉보기에는 소형 승용차인줄 알았더니, 600cc짜리 경차라는 말에 고속도로를 잘 달릴까 의심했지만 성능이 생각보다 좋았다. 일본의 모든 것이 경제적이지만 찻값은 1300만 엔 정도로 경차치고는 약간 비싼 수준이다.


    후쿠시마가 점점 가까워지고 비가 오면서 나의 염려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비에 방사능이 떨어지면 맞아도 괜찮을까.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말을 돌려가며 의구심을 달래는데, 눈치 빠른 이케가미씨는 이제와 후회해도 때는 늦었다고 어르며, 마음씨 좋은 사사키 의원은 공중에는 이제 방사능이 거의 없으니 염려할 바가 없다고 나를 위로해줬다. 걱정이 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다테시에 4시경에 도착하였다. 다테시는 원전 폭발지역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시의 일부는 주민들이 살고 있지 않다. 사사키 의원의 권유로 이이즈카 온천에 가서 온천욕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걱정을 씻고, 후쿠시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이즈카 온천은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온천이지만 불경기에  원전사고로 직격탄을 맞아 활기가 전혀 없었다. 저녁에는 마을 공민관에서 주민들이 반찬 한 가지 씩을 만들어 오기로 하여 갔더니 바쁜 철이라 사사키씨 내외와 아들부부만 참석하였다. 이케가미씨 그리고 나를 포함해  여섯 사람이 간단한 파티를 열었다. 사사키씨 부인과 아들 내외는 고령자복지 관련 일을 하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었다.


    다테시는 과수원 등 농업이 중심인데, 원전사고로 농산물 판매에 애를 먹고 있다. 방사능 검사를 통과한 농산물만 판매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이 않아 제 값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다테시는 특히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데, 제철인 지금 모처럼 맛난 복숭아를 먹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후쿠시마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다

     

    이튿날 이케가미, 사사키, 그리고 나 세 사람은 사사키씨의 경차를 타고 원전 폭발 인근 지역으로 향했다. 먼저 다테시에 인접한 이이다테촌(飯館村)을 자동차로 그냥 지나쳤다. 이곳은 마을 주민 전체가 피난을 가서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방사선오염 제거 작업부들만 보였다. 이이다테는 산간지역으로 해일의 피해를 직접 입지 않았지만, 방사능 오염이 심했다. 원전사고 이전 이이다테는 주민들 자력으로 마을 만들기에 성공하여 일본에서도 꽤 알려진 곳이었다. 그런 마을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변해버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더욱이 이런 곳에서 방사선 오염을 제거하는 일은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일본정부가 방사선 오염 제거 작업을 할 사람을 모집했지만 쉽지 않아, 제네콘이라는 종합건설회사들이 인부를 모아서 작업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부들의 일당의 상당부분이 인부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폭력단이 개입했다는 말도 있다.


    이이다테촌을 지나 해일 피해와 원전 피해를 동시에 입은 미나미소마시(南相馬市)의 자원봉사자 센터에 가서 현지인의 안내를 받았다. 센터에는 교토에서 온 교직원노동조합의 사람들이 쌀 등 구호품을 갖고 와서 주민들에게 나누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3년 6월까지 연인원 5,506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원전폭발이 있었던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주변 지역인 나미에정(浪江町) 미나미소마시의 오다카구(小高區)를 방문하였다. 나미에정은 해일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파제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민가는 모두 해일에 떠내려갔다. 어민들이 생선을 사고팔던 어판장은 사라지고 철근으로 지은 수협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도쿄전력의 원전 지원금으로 멋지게 지어진 초등학교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다행히 이 학교는 자율학교라 아이들의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교장이 출타 중이었지만 교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2km 이상 떨어진 산으로 긴급 대피하였다고 한다. 반면에 미야기현의 관리형 초등학교에서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느라 몇몇 어린 생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이 더 아팠던 곳은 미나미소마시의 오다카구였다. 오다카는 미나미소마시 가운데서 해일과 지진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지만, 지진과 해일로 피해를 입은 주택은 3,771세대 가운데 1,362세대(일부 파괴 포함)에 지나지 않고, 60% 이상의 주택은 온전하다. 더욱이 오다카의 잘 정비된 상점가는 옛 모습 그대로다. 오다카역의 자전거 주차장에는 수백 대의 자전거가 주인을 기다리며 그대로 있다. 오타카의 생활과 축제 그리고 자연을 소개하는 멋진 지도도 그대로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 수 없다. 언제 다시 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1만명이 모여살던 마을이 통째로 유령도시가 되었다. 원전 폭발에 따른 방사능 오염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난하고, 농지는 황무지로 변하고, 버려진 가축들은 오염된 풀을 뜯어먹으며 살고 있다.


    원전 폭발이 있었던 후타바정(双葉町)과 오오쿠마정(大熊町)은 방문할 수 없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폭발지역 5km 이내에는 아직도 위험해서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강제 피난한 사람이 8만8천명이며, 자발적으로 피난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다. 원전 폭발 이후 후쿠시마현을 떠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1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원전 폭발의 피해는 인근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해는 후쿠시마현 뿐 아니라 일본 전체에 미치며 일본 국민은 크고 작은 방사능 오염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후쿠시마대학의 시미즈 교수가 말하는 원전사고의 실태

     

    원전 폭발 현장을 시찰한 다음날 후쿠시마 대학의 시미즈 교수로부터 특강을 들었다. 시미즈 교수는 지역경제 전공자이지만 오래전부터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이번에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비교하면서 좋은 강의를 해주었다. 수강생은 나, 이케가미, 사사끼 셋뿐이었지만 2시간동안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었다. 내가 후쿠시마 체류 일정을 하루 줄여 충분한 강의와 토론을 하지 못하는 것에 시미즈 교수는 아쉬워했다. 참으로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시미즈 교수의 강의를 요약하면,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체르노빌 사고에 비하면 그 피해는 적다고 한다. 체르노빌에 비하면 대기에 방출된 방사능의 양은 15%, 오염도달 거리는 10분1, 피해면적은 6%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정보공개에서 가장 차이가 크다. 후쿠시마의 경우 제1원전이 폭발하기 전부터 피난을 시작했으나, 체르노빌의 경우 폭발 현지의 피난이 36시간 이후에 시작되었고, 30km 권의 피난은 1주일 후에나 이루어졌고, 오염지역의 지도는 2년 후에 공표되었다. 체르노빌 사고로 반경 250km 이내의 3천만명이 피난을 하고, 많은 마을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비하면 후쿠시마 사고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고 한다. 


    원전사고 발생 후 2년여가 지난 지금 일본정부는 사고가 수습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정부의 수습선언으로 대형 언론은 원전사고 보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도쿄전력은 ‘수습이 되었기 때문에’ 배상을 끝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13년 5월 27일 발표된 유엔과학위원회의 조사는 “이 번 사고로 인한 방사능으로 건강에 미친 악영향은 확인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인근 지역에는 방사능 측정기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다. 원전으로부터 5km 떨어진 곳에 설치된 측정기에서 내가 확인한 방사능 수치는 자연 상태에서 측정되는 수치와 차이가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수습 국면을 맞이한 것 같다. 그런데 왜 일본정부는 왜 아직 사람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일본정부를 믿지 않고, 측정기도 믿지 않고, 일본 정부도,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그 동안 수차례 일본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수습국면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지금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매일 2억4천만 베크렐의 방사능이 분출되고 있다. 방사능오염지대는 2012년 4월 후쿠시마현 내 주변과 미야기현의 일부에서, 6개월 후인 9월에는 니가타, 사이타마, 도쿄, 지바, 이와테 일대까지 오염이 확산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의 핵연료봉을 식히기 위해 사용되는 물은 반도 회수되지 않고,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해양방사능오염은 하와이 근처까지 미치고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일본정부와 상당히 다르다. 후쿠시마현이 실시한 ‘방사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방사선 피폭으로 급성 건강장애가 어느 정도 생길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사람이 14.4%(대단히 높다 6.6% 포함), “현재의 방사선 피폭으로 몇 년 후에 건강장애가 어느 정도 생길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사람이 48.1%(대단히 높다 25%), “현재의 방사선 피폭으로 다음 세대 이후의 사람들(장래에 태어날 자신의 아이나 손자 등)의 건강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높다고 답한 사람이 60.2%(매우 높다 34.9%)였다. 실제로 원전 폭발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포가 과학적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얼마나 심각한 가를 보여준다. 특히 다음 세대에까지 미칠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니 원전 폭발의 스트레스는 수세대에 걸칠 것 같다.


    따라서 폭발지역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시점에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이 45.6%,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한 사람이 41.9%인 반면에, 현시점에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11%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일수록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그러면 원전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왜 원전을 유치한 것일까.  시미즈 교수에 따르면 원전을 유치하는 쪽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후쿠시마의 티베트’론이다. 인구과소화로 곤란을 격고 있는 지역의 사정 그리고 출가노동(멀리 가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 돌아오는 것) 지대의 비애가 원전을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역발전의 기폭제’론이다. 원전을 유치하면 관련산업이 들어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는, ‘국가시책에의 협력’론이다. 국책사업에 협력하면 안전은 국가가 책임질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달리 원전이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는 크지 않았다. 원전 투자는 거액이기 때문에 지역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일시적으로 지역경제의 붐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지역경제의 변화는 불가역적이기 때문에 붐이 끝나도 원 상태로는 돌아가지 않아 지방재정수입은 대폭 늘어났지만 곧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한번 팽창한 지방경비(예, 인건비 등)는 간단히 축소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지방재정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시미즈 교수는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를 환경부담의 ‘다단계이전 구조’라는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기는 도쿄와 수도권에서 대량소비하고 그것을 후쿠시마와 니가타 원전이 공급한다. 그리고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는 아오모리현의 6개 촌에서 재처리한다. 낮은 수준의 방사성 폐기물도 6개 촌에서 처분하지만, 높은 수준의 방사성 폐기물은 ‘어딘가’에서 처분된다. 방사능은 점차 멀리 그리고 가난한 지역으로 이전된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지역의 주민들 특히 현재 피난해 있는 지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은 귀환을 전제로 한 피난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젊은이들은 돌아가려고 할 것인가”. “제2원자력발전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돌아간다 해도 전부 가동을 중단하면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후쿠시마현은 적어도 당분간 ‘무원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1만 명의 고용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등에 대해 걱정이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외에도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첫째, 사람들의 마음을 갈라놓고 대립을 초래하고 있다. 피난한 사람과 피난하지 않은 사람의 대립이다. 피난하지 않고 남은 사람은 ‘오염을 제거하고 나니까 돌아오냐’고 할 것이고, 피난한 사람은 ‘부모의 사정으로 아이들을 희생하려고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농산물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립이다. 생산자는 허용치미만이니까 먹으라고 할 것이고, 소비자는 제로가 아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한다. 피해자끼리 대립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 금전보상을 둘러싼 문제도 심각하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받을 수 없는 사람, 해일로 피난한 사람과 원전으로 피난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많이 받는 사람과 적게 받는 사람 사이에, 특히 지역지정 변경으로 배상금이 감액된 경우에 갈등이 심각하다. 돈을 받는 사람과 부담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 즉 피해배상의 부담은 결국 전력소비자와 납세자가 될 것이 아닌가. 셋째, 피난한 사람과 그들을 받아들인 지역 사람 사이의 갈등도 심각하다. 예를 들어, 원전 폭발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후쿠시마현의 이와끼시(市)는 인구 36만 명에 피난민 2만4천명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재정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09년 우리나라에서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가 개봉되었다. 설경구와 하지원이 열연한 이 영화는, 한 여름 피서철 일본 대마도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대형 쓰나미가 100만 인파가 몰린 해운대를 덥치는 가상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하여 1000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당시 나도 그 영화를 재미나게 보았지만, 그러한 일이 우리나라에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번에 후쿠시마를 다녀오고 나서 영화 해운대를 다시 보았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주변에 원전이 있었다고 상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지진이 많은 나라는 아니지만 최근 지진 발생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0년 한해에 42회 발생하였는데, 금년에는 발생건수가 65회로 55%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진은 리히터 규모 2-3의 중소지진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을 가져온 일본 동북지방의 대규모 지진과 해일은 일본사람들도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은 잘못되었다. 일본은 지진 다발지역이기 때문에 도교전력에서 오랜 조사를 통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한 것이다. 


    지진과 해일은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지진과 해일로부터 절대로 안전한 지대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한 자연재해인 지진과 해일로 인한 피해는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노력과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복구될 수 있다. 사람들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간다. 실제로 일본 동북 지방의 해일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은 지역은 후쿠시마현이 아니라 미야기현이다. 그렇지만 미야기현은 상당히 복구가 되었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해일로 인해 원전이 폭발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것은 사람이 초래한 재앙이다. 마을이 초토화되고,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 살 수 없고, 더 큰 문제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로 언제 다시 살 수 있을지 희망도 없다. 방사능에 오염된 농지와 물 그리고 삼림이 언제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수년 만에 회복이 될지, 수십 년이 걸릴지, 수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원전의 위험은 비단 자연재해뿐만이 아니다. 한반도는 늘 전쟁의 위협 하에 놓여있다. 만약 전쟁이 발발하고 원전이 목표물이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원전에 대한 찬반 논쟁이 경제적 효율성 관점에서 이루어져서 안된다. 원전이 아무리 경제적이고 그것에 기초해서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결국 그것은 우리의 삶의 토대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속된 말로 우리의 모든 노력이 한 방에 훅 가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먼 산의 불 보듯 하고 있다. 괴담 수준의 얘기만 널리 유포될 뿐, 원전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은 매우 미미하다. 원전 사고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자인 일본 사람들도 그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정부는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안전점검을 이유로 원전 51기 전부를 가동 중지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철 전력수요에 대비해 원전2기를 시험 가동하였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원전 재가동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국민 여론도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재가동에 반대가 50.6%로 우세하지만, 찬성도 40.0%에 달한다. 원전이 있는 지역의 주민이 생계를 이유로 가장 재가동을 원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원전의 덫’에 걸린 것이다. 더욱이 아베 내각은 원전수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국내 원전을 중단할 수도 없다. 원전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원전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더 이상 원전을 절대 확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미 원전이 있는 지역에서는 ‘원전으로부터의 탈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대규모 사업소의 철퇴에 따른 지역경제의 쇠퇴 경험을 살려 ‘원전으로부터의 탈각’을 국책사업으로 시행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는 니가타에 원전이 몰려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니가타는 사케 만큼 원전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니가타의 사케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지진도 해일도 아니고 원전이다. 지진이나 해일에 의해 니가타 쌀농사가 붕괴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지만, 니가타의 원전이 폭발한다면 니가타의 사케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의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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