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기상이변 ‘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5691, 2011.08.04 10:08:19
  • ㆍ일상기후 예측기준 달라져 재해 취약 지역·계층 파악 시급

    산사태로 시뻘건 진흙더미가 쏟아져 내려 자동차와 집과 사람들을 순식간에 집어삼킨다. 도로들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차오른 물에 떠다니던 자동차들은 주저앉은 지붕 끝에 걸려 있다. 수백 개의 신호등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자동차들이 뒤엉키고, 정전과 통신장애로 은행 업무가 마비된다….

     

    7월 27일 올림픽대로 여의도 구간이 침수돼 통행하던 차들이 물에 잠겨 있다. / 김영민 기자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얘기가 아니다. 7월 마지막 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경기, 강원 일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8월 강수량 30년 동안 25% 늘어
    지난 7월 26일 시작된 집중호우는 28일까지 이어지면서 강수량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흘간 서울에 내린 비는 무려 536㎜에 달해, 사흘간 누적 강수량으로는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았다. 사흘 가운데 특히 7월 27일에 쏟아진 폭우는 서울, 동두천, 문산, 인제 등에서 7월 하루 강수량으로는 관측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기간 황해도와 함경남도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30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6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문제는 한두 달 내에 더 큰 국지성 호우가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여름비가 내리는 양상은 과거와 뚜렷하게 달라졌다. 7월 장마전선이 소멸된 뒤로도 국지성 호우는 수시로 내린다. 작년 8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6~7월 평균 강수량보다 많았다. 1980년을 기점으로 8월에 내리는 비의 양은 그 이전에 비해 25%나 증가했다. 기상청이 2008년부터 장마 예보를 없앤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폭우와 집중호우 등 극한강수가 갈수록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서울, 부산 등 우리나라 주요 9개 도시에서 하루에 80㎜ 이상 쏟아지는 호우 발생 횟수는 143회였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178회, 1990년대에는 206회, 2000년대에는 239회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반도만이 아니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도 재난의 역사를 다시 쓴 해가 될 것이다.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자연재해 피해액은 2650억 달러(약 270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큰 피해를 낸 자연재해는 지난 3월 일본열도를 강타했던 지진해일. 피해액 2100억 달러, 사상자 1만5500명, 실종자 7300여 명으로 피해 규모 면에서 단연 선두다. 2위는 약 200억 달러의 피해액을 기록한 뉴질랜드 지진, 3위는 미국 남동부를 폐허로 만든 토네이도였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의 관계
    최근 발생한 기상이변들은 현대 인류사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2003년 여름 유럽에서 발생한 폭염으로 약 7만 명에 달하는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도시 절반을 수장시켰다. 피해액은 1600억 달러에 달해 9·11테러 피해액의 8배나 된다. 작년 여름 파키스탄은 홍수로 전 국토의 5분의 1가량이 물에 잠겼다. 수천 개의 학교와 병원이 침수되고 약 220만 ㏊의 농지가 폐허로 변했으며, 이재민 수는 약 2000만 명에 달했다. 올해 겨울 호주에서는 100년 만에 찾아온 대홍수로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과 맞먹는 면적이 물에 잠겼다. 

    7월 27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광주시 모현면 초부리에서 폭우로 고립돼 공장에 모여 있던 주민들을 헬기로 구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브라질에서는 엄청난 폭우와 산사태로 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기상이변을 ‘뉴 노멀(new normal)’, 다시 말해서 ‘일상 기후’의 새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자연재해 피해의 증가와 지구온난화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지구온난화로 더워진 열대 지역의 바닷물과 대기가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폭풍의 강도를 증가시킬 것인가. 많은 기상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지만 아직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열대폭풍의 강도 변화가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변동의 결과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학 수준은 과거에 불어온 열대폭풍의 강도 변화를 추적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환경 요인을 선정해 이를 기반으로 향후 수십 년간 열대폭풍의 횟수와 세기, 경로 등을 예측하는 모델을 구축해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열대폭풍의 활동을 재현할 만큼 충분한 데이터와 정확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기상이변 증가의 원인으로 조심스럽게 지구온난화를 지목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를 빼고는 급증하는 이상기후의 횟수와 강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으로는 작년 초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이 대표적이다. 미국, 호주, 중국, 인도, 일본의 기상학자들이 공동으로 내린 결론은 약한 허리케인은 드물게 발생하고 강력한 허리케인의 발생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MIT) 대학 기상학 교수인 케리 임마뉴엘 교수에 따르면, 풍속이 11% 증가하면 허리케인의 파괴력은 60%가량 증가한다. 지표면과 해수면 온도 상승이 맞물릴 경우 우리나라에도 강풍과 함께 하루 1000㎜ 이상의 폭우를 동반한 ‘슈퍼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번에 중부 지방에 쏟아진 폭우는 한반도 주변의 정체된 기압계와 대기 불안정으로 좁은 지역에 많은 양이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만 해도 시간당 최고 60㎜ 안팎의 비가 내린 곳이 있는 반면, 관악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한 시간에 11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이번 집중호우의 원인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남서풍을 타고 유입된 데다 대기 중·하층의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며 불안정해진 대기를 꼽았다. 하지만 이런 분석도 폭우가 내린 후에야 나온 것이다. 기상청은 폭우를 ‘예보’하기보다 ‘중계’하는 데 그쳤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기상청, 기상 예보 아닌 중계에 비난
    기후변화로 우리가 입게 될 피해는 침수나 산사태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의 어두운 그림자는 상상을 초월한 집중호우만이 아니다. 여름철 ‘물폭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폭염이다. 폭염은 집중호우에 비해 스펙터클한 재난 상황을 연출하지도 않고 재산피해도 적게 입힌다. 하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면 심장질환·당뇨병·고혈압 등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난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인천·대구·광주에서 폭염 사망자 수는 2127명으로, 홍수나 태풍과 같은 기상재해 사망·실종자 1219명보다 많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폭염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65세 이상 노년층과 설사나 호흡기 감염,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이다. 특히 돈이 없고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홀몸 노인들일수록 폭염에 취약하다. 작년 여름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폭염이 쪽방촌 거주 노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폭염 발생 기간 중 건강에 이상을 느낀 경험이 있는 경우는 72.2%에 달했다.

    그렇다면 집중호우와 폭염이 번갈아 나타나는 이상기후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피해를 입게 될 것인지 가능한 한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폭우, 태풍, 폭염 등 재해별로 취약지역과 취약계층을 가려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국을 대상으로 재해지도를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위기는 과거의 낡은 가치관과 시스템으로는 급변하는 현실을 뒤쫓아 갈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번에 서울시가 비난받는 것도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는 오만과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과 위기의 시대에 절실한 것은 가야 할 길을 안내해주는 나침반이지 땜질식 마구잡이 처방이 아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2011.08.09, 경향신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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