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기상재해보다 무서운 오만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5281, 2011.07.29 10:30:52
  • 할머니, 환경미화원, 자원봉사 대학생, 회장 부인, 공장 노동자, 주부, 3개월 된 아기…. 이틀 남짓 쏟아진 장대비가 앗아간 목숨들이다. 지난해에 이어 서울이 다시 물에 잠겼다. 강남과 광화문 등 서울의 심장부가 마비되고 부산도 물바다로 변했다. 전국 곳곳 산등성이에서 쏟아져 내린 진흙더미는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희생자들을 덮쳤다. 자동차 지붕까지 차오른 물과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도로의 모습은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고 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한지 모른다. 8월과 9월 ‘가을 장마’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여름철 비오는 양상이 뚜렷하게 달라졌다. 7월 장마전선이 소멸된 뒤로도 폭우는 수시로 내린다. 작년 8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6~7월 평균 강수량보다 많았다. 1980년을 기점으로 8월에 내리는 비의 양은 그 이전보다 25%나 증가했다. 기상청이 2008년부터 장마 예보를 없앤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폭우와 집중호우 등 극한강수가 갈수록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서울, 부산 등 우리나라 주요 9개 도시에서 하루에 80㎜ 이상 쏟아지는 호우 발생 횟수는 143회였다. 하지만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2000년대에는 239회로 증가했다. 올해는 특히 비가 많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5월1일부터 7월20일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750.6㎜로 평년보다 161%나 많았다. 이번에 내린 집중호우 이전에 이미 ‘미친 날씨’의 징조는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순식간에 강으로 변한 도로와 산사태도 날씨 탓으로 돌려야 하나. 아니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현대문명에서 인재(人災)가 아닌 재해란 없다. 지구온난화도 결국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더워진 지구가 ‘물 폭탄’의 ‘용의자’이니 아니니 하는 논란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배수로가 없는 도로를 만들고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땅을 야금야금 갉아먹도록 허용한 이들은 누구인가? 강을 파헤치기만 하면 홍수 피해가 사라질 것이라 장담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4대강 98개 공사현장에 실시간으로 기상정보를 제공한다는 기상청은 대다수 국민이 살아가는 도시의 재해예방에 어떤 노력을 했나? 물난리를 겪은 지 일 년이 지나도록 서울시의 침수대책이 허우적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번 피해는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휩쓸었을 때 강릉에는 하루에 870㎜의 폭우가 쏟아졌다. 5년 후 환경재단은 토론회를 열어 ‘서울에서 이처럼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면?’이라고 경고했지만, 정부 관계자들의 대답은 “과거 기상자료로 볼 때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들어 경고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장마가 끝난 후에는 같은 양의 비가 와도 피해는 커진다. 이미 내린 비로 물러진 지반에 또 비가 내리면 산사태나 시설물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산들의 토질은 붙는 힘이 약한 모래흙이 태반이다. 이런 사실을 당국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비상등을 켜고 경고음을 내는 기관은 전무했다.

    우리가 이번 피해를 통해 깨우쳐야 하는 것은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는 과거의 낡은 기준으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불확실성보다 더 큰 위기는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는 인간의 오만과 불감증에 있다. 기술적인 대책 마련에 앞서 개발주의 문명에 대한 성찰이 앞서야 하는 이유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2011.07.28, 경향신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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