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재앙의 도화선’ 한중일의 원자력 확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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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6768, 2011.04.05 12:34:58
  • ‘핵재앙의 도화선’ 한중일의 원자력 확대정책

     

    염광희(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

     

    후쿠시마 핵재앙이 시작된 지 3주가 지났다. 현재로선 노심용융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사능이 뿜어내는 죽음의 그림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절대 안전할 것이라 큰소리쳤던 한반도에도 그 공포는 짙게 드리워졌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류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25년 전 그 사고를 통해 ‘핵은 죽음’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서방의 많은 국가들은 이를 사회주의 국가의 관리실패로 치부하며 ‘체르노빌과 다른’ 원자력발전소 확대정책을 펼쳤다. 특히 한국, 일본,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나란히 원전 확대정책을 펼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중일 중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한 국가는 단연 일본이다. 핵폭탄의 피해를 입은 유일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전력생산을 위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채택했다. 현재 총 54기 47.5 GW 용량의 원전에서 국가 전력수요의 약 30%(2009년 현재 29%)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은 원전 21기를 가동 중이며 그 용량은 18.7GW에 달한다. 3국 가운데 가장 늦게 원자력발전을 도입한 국가는 중국이다. 1994년 최초의 원전 가동이 시작된 이래 현재 13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 중이며, 이곳에서 중국 전체 전력의 약 2%를 생산한다. 2010년 말 현재 25기(27.73 GW)가 건설 중이며, 32기(34.86 GW)의 건설이 확정되었다.

     

    이들 세 국가의 공통점은 원자력발전을 국가의 중요 정책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UAE에 200억 달러 규모의 한국형 원전 수출 성사 직후인 2010년 1월, 2030년까지 총 80기의 원전을 수출해 세계 3대 원전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지식경제부는 원자력에너지 관련 비즈니스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이후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시장이 될 것이며 이 산업을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발전분야는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산업에 속한다. 그 뒤를 이어 교통, 항공, 그리고 2015년까지 건설될 40,000 km 고속철도가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Cool Earth 50 에너지 혁신기술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원자력의 확대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꾀하는 것이다. 

     

    중국원전.jpg지난 2011년 1월 정책을 연구하고 조언하는 정부기구인 중국 국무원 연구실 (the State Council Research Office, SCRO)은 중국의 원전정책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들은 2020년까지 원전 용량을 70GW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방정부나 기업들의 의욕이 지나쳐 불필요한 발전소 건설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현재 중국에서 건설 중인 2세대 원자로의 지나친 보급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시각이 담겼다. 전 세계에 가동 중인 2세대 원자로가 모두 폐쇄된 이후에도 중국은 현재 건설 중인 2세대 원자로를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가동해야 한다.

     

    중국의 또 다른 고민은 발전소 안전관리 인력에 관한 것이다. 발전소에서 근무할 엔지니어들은 4-8년간 기술적으로 훈련받을 수는 있겠지만, 실재 운전과정에서의 ‘안전 문화(safety culture)’를 익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이들의 급여는 다른 산업분야의 전문인력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또한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의 수도 상대적으로 적다. 국무원 연구실은 ‘많은 국가에서 발전소 1기당 30-40명의 관리요원이 종사하는데 반해, 중국의 국가핵안전국(National Nuclear Safety Administration)은 단지 1,000명의 스탭만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국가핵안전국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원자력정책과 연구개발(R&D)은 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새로운 원자로 설계에 맞춰져 있다. 반면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와 관리는 새로이 설립된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에 전적으로 일임하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이라는 걸림돌이 있어 재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긴 하지만, 안정적인 핵연료 공급을 핑계로 다양한 형태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을 우선시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에서 보듯이 원자로 폭발 뿐 만 아니라 발전소 내에 임시 보관된 핵폐기물도 언제든지 ‘방사능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원전은 전력을 생산하는 많은 종류의 시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만약 위험한 원전을 대신해 에너지 해외의존도를 줄이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을 선택한다면, 문제는 매우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독일은 그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1년 1월 대학 교수와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일 환경자문회의(Sachverständigenrat für Umweltfragen)는 2050년까지 독일에서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연방환경부장관에게 제출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면 원자력발전 없이도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가능한 일이 한중일에서 불가능하란 법은 없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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