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00만명 동시에 뛰면 우주선 쏜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5077, 2011.10.07 12:29:52
  • 세계 첫 자체 발전 댄스클럽인 네덜란드의 ‘와트(WATT)’.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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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5일, 대규모 정전사태가 전국을 휩쓸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컴퓨터와 에어컨이 꺼졌다. 현금을 찾을 수도 없었고, 금전 출납기가 고장 난 가게에서 물건을 살 수도 없었다.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활동이 정지됐다. 사태는 이런 대규모 정전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교훈도 남겼다. 하지만 발전소를 지어 공급을 늘리는 것은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안이 거대한 전력망에서 독립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제도권 발전소’ 밖에서 전기를 만들고, 가능하면 전기를 쓰지 않는 ‘오프 그리드(Off Grid·탈(脱)전력망)’ 혁명이 그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대학의 제임스 그레이엄은 2007년 여름 군중의 발걸음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장소에 푹신푹신한 바닥재를 깔아 놓고 그 속에 사람이 밟는 힘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압전기(壓電氣·piezoelectricity) 발생장치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하루 유동인구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대도시 지하철역이나 운동장 같은 곳이 좋은 후보지로 거론됐다. 실제로 이탈리아 토리노역에서 실험도 했다. 그 결과 8400만 걸음의 에너지가 모이면 우주왕복선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걸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로 만드는 신발과 탑승자의 힘을 활용하는 자동차가 개발되고 있다.

    올 8월에는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이 걷는 동안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 ‘역(逆)일렉트로웨팅(reverse electrowetting)’이란 기술을 과학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여러 층의 얇은 막 사이에 수천 개의 미세한 전도성(傳導性) 물방울을 배열한 뒤 이를 흔들거나 압력을 가하면 전류가 흐른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신발 깔창에 부착한 뒤 질주하면 1㎾의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20~30분만 뛰면 휴대전화나 MP3플레이어를 충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람의 근육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전거 페달을 밟아 운동도 하고,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축전지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는 방식이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팀에 따르면 20분 동안 페달을 밟으면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하고, 7시간 페달을 밟으면 반나절 동안 60W 전구를 켤 수 있는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사람 몸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2007년 독일 프라운호퍼 집적회로연구소(FIC) 연구진은 신체 표면 온도와 주변 온도 차이로부터 전기에너지를 얻는 반도체 소자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자동차업체 ‘휴먼카(HumanCar)’에서는 휘발유와 전기뿐만 아니라 사람이 팔로 노를 젓는 힘까지 이용할 수 있는 4인용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했다. 4명이 함께 젓는다면 연료 없이도 시속 100㎞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 출퇴근용으로 손색이 없다.

     일본 후지무라 야스유키(藤村靖之·67) 같은 경우는 아예 전기 없는 생활, 즉 ‘비전력(非電力)’을 추구한다. 후지무라가 개발한 비전력 냉장고는 마당에 설치해 밤새 복사(輻射)에너지 형태로 열이 대기로 빠져나가는 원리를 이용했다.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으로 냉장고 저장실을 만들고, 나머지 공간은 물로 채운다. 저장실에 들어 있는 음식의 온기는 물이 빼앗아 가고, 물이 흡수한 온기는 복사에너지 형태로 빠져나간다. 대신 낮 동안의 따뜻한 열기가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단열재로 덮는다. 그는 전기 없이 사용하는 세탁기와 청소기도 개발했다. 후지무라는 이런 내용을 담아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북센스)라는 책도 펴냈다.

     후지무라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비전력화는 전기제품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다시 돌아보는 문화활동”이라며 “전기는 쾌적하고 편리하지만 그 대가로 잃어버리는 게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충남 천안시는 올해 초 오이 등을 재배하는 시설하우스 농가에 ‘축열 물주머니’를 보급했다. 지름 20~30㎝의 비닐호스 여러 개를 비닐하우스 안에 길게 펴놓고 물을 채우는 방식이다. 낮에 햇볕을 받으면 주머니에 든 물 온도가 올라가고, 밤에 비닐하우스 내 온도가 떨어지면 열을 방출한다. 바깥 기온이 섭씨 5도일 때를 기준으로 물주머니를 사용하면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하우스 바닥 온도가 2~3도 높아져 생육을 10일 정도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은 “2000년대 초 유럽에서도 독일을 중심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시민들이 독자적인 에너지 생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아직 초기여서 생산 전력량이 미미하지만 시민들이 에너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 사회를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인 의미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2011.10.05, 중앙일보,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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