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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행동연구소조회 수: 1115, 2018.08.02 08: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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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냉장고, 선풍기, 전기 주전자, 가스버너, 전기밥솥, 그리고 사람…
이 모든 것이 한 평 남짓한 공간 속에 같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열을 낸다. 폭염 경보가 내려도 텔레비전은 봐야 하고, 밥은 먹어야 하니 휴대용 가스버너를 켜야 하고 전기 주전자로 물은 끓여야 한다. 전기밥솥도 사용해야 한다. 덥다고 냉장고를 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기 위해서는 선풍기를 켜야 한다. 더운 바람이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두고 살 수는 없으니 닫아야 한다. 반지하 작은 창문은 냄새 때문에 제대로 열 수도 없다. 닫힌 공간이다. 자신의 몸이 내뿜는 열기마저도 방 온도를 높인다.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고 지낸다.
서울역 건너편 동자동 쪽방촌 이야기다. 추위에 대처할 방법은 있다. 옷이라도 더 입고, 전기장판이라도 사용하면 되지만 더위는 어쩔 수가 없다. 쪽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더위이다. 그중에서도 요즘 같은 폭염은 죽을 맛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유일한 대안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공원에서 잠을 청하고, 길거리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며칠 전 폭염 경보가 내렸다. 40대 젊은 장애인 부부가 사는 집에는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손바닥만한 미니선풍기 뿐이었다. 더위에 지쳐 덥다고 말하는 것도 잊었다. 50살의 1급 시각장애인의 방에 있는 선풍기는 때마침 고장이 났다. 더워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지친 얼굴로 한탄을 한다.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고통은 더 크다. 60대 정씨는 팬티 바람으로 옥상을 오르내린다. 방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자동 쪽방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쪽방촌이다. 대략 1,500명의 사람이 산다. 쪽방 크기는 대부분 한 평에서 한 평 반 정도이다. 쪽방 건물은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1960년대 지어진 건물이 많다. 워낙 낡아서 수리를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물이 새고, 부서지고, 곰팡이가 핀다. 단열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쪽방은 밀집된 시설이다. 4층 정도의 낡은 건물에 층마다 복도를 중간에 두고 6~10개 정도의 방이 마주 보고 있다. 방문을 열면 좁은 복도이고 그 건너에 또 다른 쪽방이 있다. 방문을 열어두고 살 수 없는 이유이다. 세면장과 화장실은 층마다 있는 공용시설이다. 별도의 주방이 없기 때문에 방에서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휴대용 가스버너가 유일한 대안이다. 전기 주전자도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더운 날씨에 방안에서 버너를 피워 밥을 해야 하는 고통이 계속된다. 자연스럽게 끼니가 귀찮게 된다. 부실한 먹거리에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쪽방 주민들의 건강은 매우 심각하다. 당뇨병, 고혈압은 기본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치아가 성한 사람이 드물다. 치아가 빠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마땅히 없다. 소방호스로 공원과 거리에 물을 뿌리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물은 흔적도 없다. 물병을 나누어 주지만 별로 도움이 되질 못한다. 폭염을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기도록 권하기도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할 수가 없다. 선풍기조차 없는 쪽방 주민들에게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더운 날씨 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폭염은 생존의 문제이다. 잠시 참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병으로 이어지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더운 날씨 탓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국가가 나서서 기본생활 수준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사실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개선도 필요하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틀로 보면 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보장만 해 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배고프다고 하면 라면과 빵을 주고, 춥다고 하면 옷 주고, 돈 없다고 하면 하루 만 원 정도만 준다. 그 정도로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쪽방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사람이다.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라면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쪽방촌에 오지 않는다. 쪽방촌 주민들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이웃, 나의 가족으로 볼 수 있어야 해결이 된다. 폭염에 쪽방촌이 취약하다고 떠들썩한 언론보다는 그들 곁에서 함께 땀 흘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저녁이 되어 열기가 식어야 공원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그나마 방보다는 공원이 나은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밖에 없는 쪽방촌이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좁은 방으로 돌아가지만, 또다시 걱정이다. 낮에는 빨리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새벽에는 밝아오는 날이 두렵기만 한 것이 요즘 쪽방촌이다.
김 원(사진작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회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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