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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행동연구소조회 수: 779, 2018.07.11 09: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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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이나 태풍, 몬순 등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은 해수 온도 상승의 결과라는 것이 많은 연구자의 입장이다. 최근 각지에서 일어나는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꼽히는 폭염과 강풍, 고온건조한 날씨 역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한 국제 사회의 합의와 노력은 큰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로 각지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미국의 일부 갑부들의 특이한 움직임이 눈길을 끌고 있다.
초호화판 재앙 대비책2017년 1월 30일, 미국의 언론 매체 <뉴요커>에는 “최고 갑부의 종말의 날 대비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1]. 이 기사를 쓴 에번 오스노스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부유층 가운데 적극적인 생존주의자들을 면담하거나 대피용 공간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했다. 생존주의자(Survivalist), 혹은 ‘프레퍼족(preppers)’이란 문명의 붕괴에 대비해 개개인이 당장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지진, 홍수 등 재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재난에 대비해서 각 가정이 물, 음식, 응급 약품, 방한용품, 그리고 자녀들을 위한 필수용품 등 피난 가방, 일명 서바이벌 키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고간다. 실제로 상품화된 피난 가방을 구매하거나 직접 물건을 모아 피난 가방을 꾸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움직임도 생존주의의 일종이긴 하지만, <뉴욕커> 기사에서 다루는 것은 초호화판 생존 대비책이다.
미국 캔자스 주의 황량한 외곽 지역에는 ‘서바이벌 콘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최첨단 지하 벙커가 있다. 과거 미사일 격납고로 사용됐던 곳을 개조해 지하 15층의 고급 아파트로 만든 것이다. 사업자는 이 시설이 핵무기 공격에도 까딱없다고 자랑한다. 옥수수 속을 닮은 원통 모양을 한 이 벙커의 수용 인원은 총 75명. 5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식량과 연료가 준비되어 있고, 수영장, 인공 암벽, 인조 잔디 공원, 컴퓨터실, 체육관, 영화관, 도서관, 의료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장기 저장 식품은 물론 민물고기를 양식하는 수조와 실내 채소 재배기도 있다. 한 층 전체를 사용하는 경우 매입가는 300만 달러(약 34억 원), 절반만 사용하는 경우에는 150만 달러(약 17억 원)이다. 이곳의 아파트는 모두 팔렸고, 인근에 두 번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어떤 부자는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있는 외딴 섬의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발전기, 태양광 패널, 수천 개의 탄약통 등을 구비해 놓았다.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헬리콥터에 항상 연료를 가득 채워놓고 공기 정화장치가 설치된 지하 벙커를 마련해두었다는 사람도 있다. 부자들 사이에서는 총기류와 오토바이, 금화를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비책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준비물 목록 중에 탄약통과 총기류가 눈에 띈다. 지진, 전염병, 원자력발전소 사고나 핵폭탄에 의한 방사능 위험에 대비해 대피할 곳을 마련한다면서 무기는 왜 준비하는 걸까? 식량과 안전한 대피 공간 등 재난 발생 시에 희귀해지는 자원을 구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폭력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자체 무장을 갖추려는 것이다.
부유한 프레퍼족들은 이처럼 “보통 사람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돌리며 자기 혼자만의 살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의 선진국들에서 그들이 이룬 부는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해 가며 쌓은 부다. 지구 생태계와 79억 세계 인구에 온난화의 충격을 떠넘겨가며 쌓은 부다.
그림: 허리케인 하비 때 고립된 채 물에 잠겨 앉아 있는 요양원 노인들(Image: Twitter/Timothy McIntosh).
기후변화의 희생양이 되는 보통 사람들
2017년 9월 허리케인 하비에 강타당한 텍사스주에서는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에 고립된 요양원 노인들의 사진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이 노인들은 구조대에 구조 요청을 하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방치되어 있다가 이 사진을 신속히 퍼뜨린 SNS 사용자들 덕분에 3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7년 8월 말에서 9월까지 미국 대륙 안팎에서는 위력이 강한 허리케인 4등급 하비와 5등급 어마, 역시 5등급 마리아가 연달아 밀어닥쳐 큰 피해를 냈다. 하비와 어마가 습격한 텍사스주 휴스턴과 플로리다주는 사전 대피 경보 덕분에 인명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마리아가 휩쓸고 간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인명 피해 64명이라는 공식 추계가 나왔지만, 최근 발표된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허리케인 기습 후 3개월 사이에 4,600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대부분이 정전과 도로 폐쇄 등으로 고립된 채 식품 및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집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비, 어마 두 허리케인으로 인한 미국의 재산 피해는 2,900억 달러(약 327조 원)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마리아로 인한 푸에르토리코의 재산 피해는 900억 달러(약 97조 원)이다. 참고로 2015년 푸에르토리코의 국민총생산은 1,030억 달러라고 한다. 이처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은 점점 강해지는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인프라가 아예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낡은 시설을 그대로 방치하는 등 공공재원의 적절한 투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수준의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공공 정책의 실패다. 제방과 도로, 전력, 하수 등 인프라를 무너뜨린 것은 허리케인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작은 정부> <규제 완화> 방침에 따른 공공 부문 방기 정책, 즉 인재(人災)다.
보통 사람들의 온난화 대응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얼까? 거액의 보상금이 나오는 재해 보험에 드는 걸까? 피난 가방에 필수품을 넉넉히 넣는 걸까? 우리는 적절한 공공 시스템의 부재 혹은 부실이라는 인재(人災)를 최소화하길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재난이 닥칠 때 각자 숨어들 은신처가 아니라, 재난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강력한 재해에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인프라 구축, 안전한 대피 경로와 대피소 마련 등 효율적인 예방 시스템과 신속하고 체계적인 구조 및 복구 시스템이다. ‘공익을 짓밟고 사익을 챙기는 탐욕’이 공공 안전의 인프라를 무너뜨리는 걸 허용한다면, 또한 지구온난화 추세를 더욱 가속하는 걸 허용한다면, 우리 사회는 기후 재앙으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재력’이 최고 갑부들의 대비책의 원천이라면, 보통 사람들의 대비책의 원천은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의지와 충분한 공공 재원”이다. 우리는 각자 집안에 들어앉아 자기만의 피난 가방을 마련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모든 단위의 공동체들이 탄소 배출을 억제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만 기후 변화의 장기적인 위험을 제한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역시 기후 변화에 대한 의식 무장과 협력을 위한 적절한 행동 지침을 공유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인재(人災)는 눈덩어리처럼 커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우리 후손들을 덮칠 것이다.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지역 사회에서, 당장 기후 행동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순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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