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나눔] 예술적 상상력으로 기후위기를 바라보기 ― 영화 <테이크 쉘터>,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를 통해서 본 기후위기 이야기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403, 2021.11.10 14: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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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 찜찜하고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한 남자, 커티스의 표정은 영화 <테이크 쉘터>의 화면을 이상한 불안감으로 가득 채운다. 새떼들이 기이한 형태로 비행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매일 밤 꾸는 악몽에서 그랬던 것처럼 폭풍우가 아내와 어린 딸, 그를 둘러싼 일상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것만 같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와중에 불길한 생각에 푹 빠진다. 스스로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병원에 다니면서도, 긴장이 흘러나오는 내면의 소리에 깊게 잠식된다. 

     

    주변 사람들은 점점 그가 미쳐간다고 생각한다. 불어나는 불안감에 커티스는 결국 집과 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 그리고 왠지 꼭 필요할 것만 같아 마당에다 방공호를 만든다. 아내는 미쳐가는 그를 이해해 보려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는 동네 이웃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직장 동료와 크게 싸우며 광기를 폭발시킨다. 광인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서 폭풍우가 온다고 울분을 토하며 외친다. 이제 세상이 끝날 건데 너흰 그저 웃고 떠들기만 한다고.

     

    그날 저녁 기다렸다는 듯이 폭풍우가 불어닥치고, 그의 가족은 방공호에 대피한다. 밤이 지나가고 방공호의 문을 열자 비온 뒤 화창한 하늘이 보인다. 폭풍우는 그의 불안처럼 크지 않았고 마을 이웃들은 그저 떨어진 나뭇잎을 치울 뿐이다. 커티스도 이 일을 계기로 지독한 불안에서 벗어나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안정을 취하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에 따라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다. 그곳 해변에서 딸과 소꿉장난을 하다가 마침내 악몽에서 나오던 노랗고 끈적한 빗물이 떨어지는, 거대한 폭풍우를 마주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커티스가 내내 느끼던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은 인간을 송두리째 잠식한다. 예민함과 과대망상, 악몽으로 표현되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친 취급을 받지만,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암흑에서 혼자 앞을 보는 자는 외로운 법이다. 실체가 불분명한 커티스의 불안과는 다르게 우리는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다. 넘쳐나는 확정적인 증거로 기후변화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안을 대하는 태도는 커티스의 이웃들처럼 미온적이다.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지구가 비상상황에 처해 있다 선언하고, 이상기후 현상이 폭증하고 있음에도 폭풍우와 같은 기후재난이 미래의 일이라 여기고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기후 문제가 합리적인 선택을 버리고 직관적 심리적 지름길을 따르게 되는, 인지 편향에 부합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먼 미래의 불확실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므로 사람들이 좋아하기 힘들고, 눈에 잘 보이지 않아 현저성이 부족하며 불확실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조지 마셜, 2018). 따라서 극적인 재앙이 눈앞에 닥치지 않는 이상 서둘러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나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상황이 나빠지면 그때는 너무 늦게 된다. 불어오는 거대한 폭풍우를 바라보며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를 시사한다. 커티스의 지독한 불안이 현실이 되며 영화는 끝이 났지만 폭풍우에 남겨진 커티스와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에서 맨 처음 녹지 않는 눈이 내린 날은 이월과 모루가 중학교 2학년이던 6월의 초여름 날이었다. 유월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놀랍거나 신기해할 새도 없이, 눈을 맞은 아이들은 두드러기가 나거나 피를 흘렸고 순식간에 세상은 공포에 질렸다. 그날 뉴스에서는 눈은 자연적으로 녹아 없어지지 않으므로 소각하거나 매립해서 처리한다고 했다. 맨 피부로 눈을 접촉하면 안 되고, 피부 발진은 약을 바르면 낫는다고 했지만 모루는 최악을 상상했다. 눈이 계속해서 더 온다면? 그때는 어쩔 거야?

     

    가짜 눈은 쓰레기차가 치웠고 아이들은 흉터와 반점에 약을 바르며 등교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일은 어쩌다가 꾼 꿈인 듯 평범하게 일상을 보낸 지 2년이 채 되지 않던 날, 중학교 졸업식에 녹지 않는 눈은 다시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모루는 웃기지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유리 속에 갇힌 스노볼처럼 세상은 고요한 눈으로 덮였다. 온갖 폐기물, 죽은 짐승이나 시체, 살아있는 사람까지 무엇을 버려도 반짝이는 가짜 눈이 모든 걸 가려줬다. 모루와 이월이 사는 백령시는 녹지 않는 눈을 처리하기 위한 특수 폐기물 매립지역으로 선정된다. 집값은 폭락해 거리에 빈집들이 넘쳐났고, 소각장에서는 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을 태워서 없애는 백령시 소각장 센터에서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사이인 아이들이 일한다. 이월과 모루처럼 재난을 겪으며 성장이 멈춰버린 이들은 함께 버스를 타고 센터를 오가며 꼭 그들이 잃어버린 학교생활처럼 나름대로 웃음을 찾아본다. 그러나 폐허가 된 도시에서 매일 눈사태로 실종되는 직원, 폐기를 하다가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신 엄마, 눈 속에서 실종된 이모를 생각하면 재미있을 일이란 없다. 모루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눈이 그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눈이 그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곧바로 일상은 이미 사라졌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스노볼 드라이브 속 세상처럼, 기후 위기는 소행성 충돌이나 핵 전쟁처럼 싹쓸이하듯 오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적 고통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분명 심각한 상황이기는 한데 어쨌든 세상은 돌아가는, 그러면서도 문제의 근본 처방을 내리지는 못하는, 어정쩡하고 힘겨운 상태의 연속,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기후위기의 일상적 풍경일 가능성이 크다(조효제, 2020). 또한 재난이 남긴 흔적은 상실로 나타난다. 엄마와 이모, 살고 있던 도시의 터전, 학교생활 같은 평범한 일상을 잃는다. 상실로 인한 힘겨운 일상을 짊어져야 할 가장 큰 피해자는 가장 약한 이가 된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의 피해가 차별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소설 속 이월이나 모루가 그렇듯이 연약한 이들, 10대의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뺏겨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어른이 된다.

     

    작가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이야기를 창작하지만, 실은 현실의 재구성에 가깝다.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보고 느끼는 현실을 이야기로 재구성하며, 널리 읽히는 이야기는 시대상을 잘 반영한 작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Cli-Fi(Climate Fiction)’ 문학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듯이 폭풍우와 녹지 않는 눈, 각각의 기후 재난을 맞는 두 작품은 이제 디스토피아 장르가 아닌 현재 시제가 되었다. 이야기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 문제 그 자체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펼쳐 보여준다. 우리는 닥쳐온 기후 현실이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한발 앞서서 세계를 전망해 볼 수 있다(문일환, 2021).

     

    다음 재난은 어떤 형태로 다가오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불안감은 실체가 없을 때 가장 두려운 존재이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질 변화가 어떻게, 왜 생겼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분명한 실체를 마주하게 되고, 변화는 전 세계인의 삶을 관통할 것이다. 소설 속 이월과 모루는 가족도 일상도 모두 잃어버리고 폭설로 망가진 세계 속에서 이제 어떻게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남쪽에 포도를 재배하는 지역이 있다는 말로 눈길 위를 함께 달리길 결정한 이들의 모습이 희망차기보다는 어쩐지 처연하기만 하다.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진 것 같다. ‘희망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고 지금 당장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라’는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이제는 눈앞에 재난이 몰아치는 것처럼 닥치는 대로 행동해야만 너무 늦지 않게 방공호를 짓고 포도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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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조지 마셜. 2018. 『기후변화의 심리학』. 갈마바람. pp.88-90.

    조효제. 2020. 『탄소 사회의 종말』. 21세기북스. p.80.

    문일환. 2021.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동물권, 비건 특집] 클라이파이(Cli-Fi)를 아세요? http://ch.yes24.com/Article/View/45082

     

     

    김지원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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