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시네톡] 환상을 걷어내고 본 이누이트 마을의 일상 ― 영화 “세상 끝에 있는 마을”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287, 2021.07.26 16: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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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가브론 감독의 “세상 끝에 있는 마을(Village at the end of the world, 2012, 82분)”은 그린란드의 한 섬마을 니아코나트에 대한 이야기다. 육지에서 들어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헬기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이 마을에는 59명의 주민이 살고, 그들 대부분 ‘크루즈’라는 성씨를 가졌다. 이 이누이트 공동체는 수천 년간 사냥으로 먹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사냥으로만 돈을 벌고 살기는 힘들어졌고, 사람들은 마을에 '로열 그린란드' 기업이 세운 넙치 가공공장에서 일했는데 몇 년 전 기업에서는 이윤이 나지 않는다며 공장을 폐쇄했다. 일자리가 없어서 하나둘 사람들은 떠나고, 주민이 적은 섬마을들을 정부가 통폐합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마을의 풍경이 되는 빙하의 상태도 심상치 않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생선 가공공장 협동조합을 세우려고 하는데, 과연 그 시도는 성공할까?

     

    기후변화, 소멸하는 공동체, 위기의 전통⋯. 이러한 수사들을 빌려 얼마든지 위협적이고 종말론적이거나 장엄하고 슬퍼질 수도 있었던 영화는,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다만 줄에 매달아 말리는 생선, 순록의 마른 고기를 뜯는 아이들, 생고기를 뜯는 개들 같은 마을의 흘러가는 이모저모와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조명해줄 뿐이다. 영화의 끝에서 마을 가게 일을 보던 18살 청년 라르스는 결국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덧붙여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헬기를 타고 마을을 떠난다. 그래도 매일 마을의 똥오줌을 치는 이란구아크는 그날도 여전히 똥수레를 끌고 간다. 생각해보면 그는 그린란드 남부에서 아내를 따라 몇 년 전 이주해와 마을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러니 괜찮다고 느끼게 된다. 떠나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비장하지도 너무 장엄하지도 않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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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아코나트 마을 풍경에는 빙하들도 끼어있다(영화 제공 스틸컷)

     

    마을의 최연장자 할머니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동물보호운동가 브리짓 바르도를 이상한 여자라고 부른다. “우린 동물을 공정하게 대하는데 그 사람은 동물을 보호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물고기를 잡고 동물을 사냥하며 먹고 살아가고 그래서 마을의 해변은 이따금 핏빛으로 물든다. 사냥꾼은 바다코끼리를 사냥하고, 그 시체를 마을사람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줄다리기하듯 끌어당겨와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 한국에서는 환경 포스터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북극곰은 마을의 명사냥꾼 칼에 의해 사냥당하고, 북극곰 가죽과 고기를 끌고 귀환하는 칼을 마을 사람들은 환호로 반기고 고기를 나눈다. 이 마을에서 지속가능성은 무엇인가. 칼은 이야기한다. “이누이트 족의 삶의 방식은 자연과 싸우고, 자연에서 얻은 열매로 지속해서 사는 것”이라고. 동물을 무조건 보호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동물과 삶을 공유할 수도 없게 유리되어 있는 도시 사회의 환상이 아닌가. 우리는 동물이 자유로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한 소거한 도시에 살며 그들에게 안타깝고 연약한 존재라는 환상을 덧씌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누이트 전통 체험 관광 정도의 목적으로 크루즈선을 타고 마을을 방문한 한 서양 노인이 마을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음을 무척 맘에 들어하며 이런 곳은 현대 문물, 과학이나 건물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절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며(그 노인에게는 그 근처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름대로 힙한 옷을 갖춰입고 사람들 구경을 나온 라르스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환상과 욕망을 마을에 덧씌웠듯이 말이다.

     

    환상을 걷고 선글라스를 벗고 본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일 마을, 니아코나트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넙치 가공공장을 세울 수 있었을까. 환상보다 담백한 현실, 때로는 환상보다 처절한 현실(어찌 되었건 누가 뭐라건 그들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 사람들을 만나보고자 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다.

     

    ** 본 영화는 작은형제회 JPIC와 사단법인 푸른아시아가 매달 공동 주최하는 ‘기후변화 시네톡’ 행사에서 7월 상영되었습니다.

     

     

    작은형제회 JPIC(정의평화창조질서보전)위원회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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