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아내리는 ‘시쿠’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운명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15826, 2011.09.06 12:27:25
  • 그린란드 이누이트(Inuit) 사냥꾼들이 곤경에 처해 있다.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이 잠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누이트족은 바다 얼음을 ‘시쿠(siku)'라 부른다. 시쿠에 대한 이누이트 노인들의 과거 경험은 오늘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수십 년 전에는 개들이 끄는 썰매로 마을에서 90km 떨어진 곳까지도 갈 수 있었다. 당시 얼음 두께는 1~2m. 하지만 지금은 불과 몇 cm 정도로 줄어 썰매를 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북극은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이라 할만하다. 이곳의 기온이 전 지구 평균보다 약 2배 정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누이트 사냥꾼들은 가장 중요한 식량 공급자들이었다. 마을 구성원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물개, 바다코끼리, 물고기 등을 잡아 나누어 먹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냥을 멀리 나가지 못해 식량만 축내는 신세로 전락했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가옥들이 비스듬히 쓰러지거나 부서지는 것도 다반사다.

     

    이누이트.jpg 사진: www.artickingdom.com

     

    동물들도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비쩍 마른 북극곰들은 얼음 위의 물개를 공격할 힘이 없어 먹이를 구하려고 주민들의 집에 침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린란드의 소리도 바뀌고 있다. 시베리안 허스키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했던 마을은 정적에 휩싸여 있다. 가끔씩 들리는 것은 총소리다. 썰매를 끄는 개들을 더 이상 먹이기 힘들어진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충견들을 총을 쏘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디스코(Disko) 섬을 대표하는 마을 케케타르수아크(Qeqertarsuaq)의 주민 900여명이 기르는 개들은 이제 과거의 절반으로 줄어 300마리에 불과하다.

     

    기후변화는 낯선 소리들을 그린란드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건 바로 석유굴착기가 내는 소리다. 지난여름 스코틀랜드의 한 석유기업은 유정 탐사를 위해 배핀 만(Baffin Bay) 바다에서 시추를 시작했다. 지질학자들은 그린란드연안에는 석유와 가스자원이, 인접한 육지에는 금에서 아연까지 가치 있는 광물자원들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얼음층이 녹아내려 흙이 드러나는 지대가 많이 생길수록 천연자원 개발은 훨씬 수월해진다.

     

    약 5만 6천 명의 그린란드 주민들 가운데 89%는 이누이트족이다. 이들은 천연자원 개발이 온난화로 잃어버린 것들을 보상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석유가 채굴되면 일자리가 많이 생겨 수입도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어업과 수렵으로 살아왔던 이누이트족 주민들은 광물 채취의 부정적 측면인 환경오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단한 얼음이 덮이고 파도가 거친 그린란드 지역에서 기름이라도 유출된다면 해안지역 주민들의 삶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덴마크 정부는 디스코 섬에 소규모 과학기지를 세워 기후변화와 관련된 측정을 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를 보면,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연평균 기온이 4.5℃나 상승했다. 매년 여름 영구동토층은 1cm가량 녹고 있으며, 바다가 어는 시기는 절반가량으로 줄어든 것으로 관측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바다 깊은 곳의 수온이 -30℃~-40℃이었으나 지금은 -20℃에 불과하다. 바다의 얼음이 형성되는 시기도 과거보다 늦어져 1월이나 2월이 되어야 결빙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나마 매우 얇아 사냥꾼들이 다니기에는 매우 위험한 얼음들이다.

     

    이누이트족들의 먹거리도 줄어들고 있다. 대다수는 그린란드식 식사를 하고 싶어 하지만, 여의치 못할 경우 사 먹어야 하는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트에서 얼린 일각고래 1kg을 사려면 78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수입 쇠고기는 1kg에 42달러면 살 수 있다. 보다 값싸게 식사할 수 있는 돼지고기나 패스트푸드를 먹게 되면서 당뇨병을 앓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치주 예산도 빠듯해 파손된 도로나 가옥을 복구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겨울이 되면 집을 버리고 떠나는 주민들이 속출하기도 한다.

     

    그린란드 주민들은 5000년 동안 바다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 왔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에 적응해 온 뛰어난 적응자들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 그들조차도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기후시스템이 교란되면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삶 역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금 그린란드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승민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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