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탄소제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가?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8185, 2020.03.02 14:31:27
  • 30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더욱이 30년 뒤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50대가 보는 30년 뒤의 미래와 20대가 보는 2050년은 같지 않을 것이다. 10대에게 30년 뒤의 미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2050년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큰 관심사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올해 말까지 2050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수립하여 국제사회에 제출해야 한다. 작년 3월부터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협의체인 2050 저탄소 사회 비전포럼(이하 비전포럼)이 구성되어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논의를 해왔다. 이달 초 비전포럼에서 발표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 검토안은 30년 뒤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처음으로 탄소중립에 대해서 얘기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논평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30년 뒤의 미래 계획으로는 미흡하다는 비판이 많다. 
     
    (1) 복수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발전 전략
     
    비전포럼의 발전전략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 하나는 단일목표가 아니라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7억9백만톤CO₂eq)을 기준으로 75% 감축률을 제시한 제1안부터 40%를 제시한 제5안까지의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5개 중 어느 시나리오가 우리의 목표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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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폭넓은 논의를 수렴해서 복수의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전략적인 목표는 하나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응당 1안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비전포럼은 5가지 시나리오만을 제시하고 어떤 시나리오를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5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탄소중립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을 받는 1안조차도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속적으로 배출량을 늘려온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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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포럼은 5가지 시나리오는 제시하면서 모두 2017년의 배출량을 기준으로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05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한 다른 나라들이 대부분 1990년이나 2005년을 기준년도로 정하고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배출량을 지속해서 늘려온 우리나라는 가장 최근 연도를 기준년도로 설정하면 감축율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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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전에서 말로만 제시하고, 시나리오에는 없는 탄소 중립
     
    비전포럼에서는 청년분과와 국민토론회 등에서 넷제로 목표를 제시하라는 요구를 반영하여, 탄소중립 달성방안에 대해 별도로 제시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비전포럼 최대 감축안인 1안의 배출량에서 추가로 1억 7,890만톤을 감축할 필요가 있다. 1안에서 제시한 2050년의 부문별 배출량을 보면 산업부문이 8,970만 톤으로 전체의 50.1%를 차지하고 있다. 또, 2050년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60%, 수송부문에서 내연기관차 비중 7%를 설정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이 세 분야와 농축어업 부문을 중심으로 한 추가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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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안보다 진전된 탄소중립으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나라들이 제시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100%, 내연기관 교통수단 조기 퇴출과 같은 방안을 검토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비전포럼의 발전전략은 1안의 배출량 목표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2050년까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기술혁신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산업시설 굴뚝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저장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나 대기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여 저장·활용하는 DAC(Direct Air Capture), 핵융합 기술 등을 감축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비용은 매우 크거나 현재 상황으로 추정이 곤란한 수준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 방안이라기보다는 2050년 탄소중립이 어렵다는 변명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발전 전략은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보다는 제1안과 탄소중립방안 혹은 배출제로 방안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3) 좌초산업의 위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 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가 탄소제로사회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상당 부문이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 금용 싱크탱크인 카본트래커 이니셔티브는 파리기후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2040년까지 모든 석탄화력을 폐쇄할 경우 한국의 좌초자산이 1,060억달러로 가장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린뉴딜을 주창하고 있는 제러미 리프킨은 화석연료 산업에서 발생할 수조 달러의 좌초 자산이 2028년 탄소 버블을 터트리고 화석연료 문명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석탄화력발전보다 경제성이 더 커지면서 화력발전의 퇴출시기가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화석연료기반 산업이 붕괴하면서 생기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그린 인프라와 녹색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적인 전환 노력과 함께 늘어날 좌초자산은 비단 석탄화력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은 석탄, 시멘트, 철강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2050 발전전략에서 발전부문과 산업부문, 수송부문의 배출량 목표를 더 줄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부문들이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 상위 1%업체는 10곳 이내인데 전체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10%에 해당하는 업체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비중이 전체의 87.2%에 이른다. 이들 업체의 대부분은 에너지와 철강, 시멘트 등의 업종에 속한다. 발전·에너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의 4개 업종이 전체 배출량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업체들의 감축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2050 발전전략 검토안은 이러한 기업들이 포함된 좌초산업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검토나 분석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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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정부가 넷제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좌초산업의 붕괴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재생에너지 100%와 내연기관 퇴출 등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좌초산업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좌초자산에서 쏟아져 나오게 될 대량의 실직자들과 산업의 급격한 쇠락을 상쇄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있어야 한다. 최근 정당들이 앞 다투어 주장하고 있는 그린뉴딜 정책도 좌초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면 현실적인 추진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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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냄비 속의 개구리를 어떻게 나오게 할 것인가?
     
    코로나 19가 사회 전체에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코로나 19가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신종감염병의 빈번한 창궐은 기후위기의 중요한 단면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되어 왔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지구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앞으로도 신종감염병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홍수나 가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빈발할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화석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신념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고, 기후위기에 대해 나설 수밖에 없게 할 것이다. 문제는 과연 파국에 이르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늦지 않은 시점에 행동할 수 있는가이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국제협상에서 우리나라는 감축 의무량을 가능한 한 적게 부과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역에서 최혜국 대우를 받는 것처럼 온실가스 협상에서도 감축 할당량을 덜 받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입장에 서 있는 듯하다. 한쪽에서는 녹색성장을 지향하며 녹색산업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전략에 집착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핸들을 틀어 방향을 바꾸어야 할 시기에 여전히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대외적인 공언과 다르게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증가해 왔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분명한 감소추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녹색성장을 주창했던 시기 내내 증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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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포럼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앞으로 감소추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법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그린뉴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 정의당과 녹색당이 그린뉴딜을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고, 여당인 민주당도 그린뉴딜을 주요 정책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린뉴딜의 성공여부는 온실가스 배출 추세의 극적인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투자와 산업 구조조정을 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즉 시기와 속도와 규모가 모두 중요하다. 좌초산업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일자리 감소를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확인된 기술과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서 좌초자산에 의해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훨씬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린뉴딜 정책의 핵심이다. 
    변곡점을 지나 한번 대세가 되면 탄소중립사회로의 이행은 어렵지 않게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경제성장의 가속페달을 밟아온 우리나라는 방향전환을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녹색성장이 내세운 이념이 많은 공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계속 높이고 좌초산업을 키우는 엉뚱한 길로 귀결된 원인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의 저탄소 발전전략이나 그린뉴딜은 또 한번의 그린워시(greenwashing)가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100%, 내연기관의 퇴출, 넷 제로와 같은 정책을 아주 먼 미래의 일이나 현실인식이 부족한 젊은이들의 급진적 주장으로 인식하는 한 우리나라의 녹색전환은 어렵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사회적 자본을 총동원해야 한다. 막대한 재원을 동원하고 정책을 대전환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는 기후위기를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이룰 수 있다. 기후위기에 시급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없이는 넷제로 계획이 만들어지고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규모 재난이나 재해, 혹은 급격한 경제적 충격이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전환을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극적인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우리나라는 마치 이솝우화의 냄비 속의 개구리와 같아 보인다. 어떻게 개구리를 냄비 밖으로 나오게 할 것인가?
     

    참고문헌

     

    1.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 (2020).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검토안.

     

    2.     Carbon Tracker Initiative. (2019). BROWN IS THE NEW GREEN, Will South Korea’s commitment to coal power undermine its low carbon strategy?

     

    3.     Jeremy Rifkin. (2019). The Green New Deal: Why the Fossil Fuel Civilization Will Collapse by 2028, and the Bold Economic Plan to Save Life on Earth.

     

     

    최동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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