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더반 기후변화 총회 무엇을 남겼나?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20917, 2011.12.12 03:16:10
  • “파국은 면했지만 지구 살리기에는 실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17)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11일 새벽 194개국 대표단은 교토의정서 연장과 2020년까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체제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28일 시작해 9일 오후 폐막 예정이었던 회의 기간을 하루 반나절이나 연장하며 막판 협상을 벌인 결과다. 녹색기후기금이나 산림보호를 위한 정책수단(REDD++) 등은 일찌감치 합의에 도달한 상태였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얼마 전까지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하던 분위기에 비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이번 협상은 지구 살리기와 윤리적 측면에서는 실패한 협상이다. 새 기후체제의 출범을 8년가량 늦추면서 당장 기후변화로 죽어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방치하는 결과를 용인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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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반 기후변화 총회 각료급회의 개막행사에서 연설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파국 막은 교토의정서 체제 연장

     

    이번 회의를 앞두고 세계 주요 언론들의 주요 관심사는 “더반은 교토의정서의 무덤이 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교토의정서 시한 연장에 실패할 경우 2013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의 ‘법적 진공상태’가 불가피해지면서 유엔이 주도해왔던 기후변화체제가 아예 붕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38개 선진국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여해왔던 교토의정서의 시한 연장에 합의한 것은 더반 회의가 거둔 가장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교토의정서 연장기간은 최소 5년이다. 5년 연장(2013∼2017)할 것인지 8년 연장(2013∼2020)할 것인지는 내년 말 카타르에서 열리는 제18차 당사국총회에서 결정된다. 교토의정서 제2차 공약기간에는 유럽연합 27개 회원국과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의 참여가 확실시되고 있다. 교토의정서 제2차 공약기간에 불참을 공언해 왔던 러시아, 일본, 캐나다가 태도를 바꿔 잔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들 세 국가들은 미국, 중국, 인도 등이 구속력 있는 감축체제에 참여하지 않는 한 교토의정서 제2차 공약기간의 감축의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다. 미국과 함께 이 세 나라마저 빠진 상태에서 연장되는 교토의정서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만을 감축 대상으로 다루게 된다. 이번 결정이 ‘반쪽 합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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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반 기후변화 협상장 내에서 교토의정서 연장을 외치는 청소년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2020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체제에 관한 협상은 내년부터 시작돼 늦어도 2015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행동 증진을 위한 더반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간표에는 합의했지만 갈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새 기후체제가 출범하면 주요 배출국들은 단일한 법적 체제 아래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는 게 문제다.

     

    ‘누가’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인식 차이는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다.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의 역사적인 책임’을 강조한다. 부유한 국가들이 200년 이상 내뿜어 왔던 탄소배출의 책임을 개발도상국에 전가해 경제발전을 가로막으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반면 선진국들은 21세기에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1990년대 초의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고 논박한다.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공 등 신흥개도국들과 OECD 개도국인 한국, 멕시코를 포함해 개도국들이 내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이미 세계 총배출량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것이 선진국들의 논거다.

     

    또 다른 쟁점은 2020년경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기후체제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다. 10일 오후부터 11일 새벽까지 인다바(indaba; 중요한 회합을 일컫는 남아공 줄루 언어)가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던 것은 합의문에 들어갈 몇 마디 단어 때문이었다. 유럽연합은 새 기후체제의 법적 구속력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법적 체제(legal instrument)를 가진 의정서’라는 구절을 넣고자 했지만 ‘법적 결과물(legal outcome)로서의 의정서’를 고집하는 인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야 했다. 결국 브라질 협상대표의 중재안이 받아들여져 새 기후체제는 ‘법적 효력을 가진 합의 결과물(agreed outcome with legal force)’이라는 지위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 표현이 어느 정도의 법적 구속력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해석이 갈린다. 따라서 이 문제는 향후 새 기후체제를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다시금 논란거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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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반 기후변화 총회 행사장 내에서 녹색기후기금 지불을 요구하는 환경재단의 퍼포먼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협상에는 성공했지만 ‘지구 살리기’에는 실패해

     

    더반 기후변화 총회는 향후 기후변화협상의 로드맵 마련에는 성공했음이 분명하다. 일각에서 ‘교토의정서 체제를 뛰어넘는 성과‘로 평가하는 이유는 단일한 법적 체제 아래에서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실질적인 감축행동의 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시간표가 너무 느슨하게 짜였다.

     

    지난 20년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무려 50%나 증가했다. 과학자들은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견줘 2℃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에 도달한 후 줄어들어야 한다고 경고해 왔다. 지난 6일 더반 각료급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행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바닷물로 변한 얼음층과 북아프리카와 북미의 말라가는 호수들을 보았으며 홍수와 사막화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난민 수천 명을 만났다”며 “너무 늦기 전에 깊은 낭떠러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2℃ 상승을 막지 못하면 1억2천만 명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굶주려 죽어갈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온 상태다. 하지만 더반 기후변화 총회에서 세계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것은 이렇듯 절박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이 보인 ‘태만’은 금융위기에는 며칠 만에 모여 해법을 내놓던 자신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상은 미국이나 중국의 지도자들이 아니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은 최빈국과 태평양 도서국가 주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다. 더반에서 우리는 주요 배출국들의 미래를 위해 깔아놓은 고속도로에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가난한 국가들이 ‘로드킬’ 당하는 것을 방치한 것은 아니었을까?(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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