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급변을 대면하는 윤리적 자세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933, 2023.05.19 14:13:45
  • 최근 국내 재생에너지 목표가 낮아지고 탄소감축 정책이 또다시 후퇴하였다. 세계적으로도 배출 감축 등의 완화적 행동으로는 더 이상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전망에 이르러 심층 적응 등 새로운 행동을 요구하는 그룹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절망, 우울, 불안 등 좋지 않은 감정과 심리상태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건강한 심리로 기후변화를 대면하고 적극적 행동으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모색해 본다.

     

    1.1  희망과 절망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 제1위국이자 현재 배출량 제2위국인 미국에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기후변화 자체가 부정되고 기후변화 방지 정책이 후퇴하였다. 하지만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가 구성된 후에 국제 기후협약(파리협정)에 복귀했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지난해 제정하여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산업 보조금과 소비자 지원금을 통해 에너지전환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화석연료가 기후변화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를 해치는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재생에너지 확충, 운송의 전기화, 건축물의 열효율 증대와 탈탄소화가 촉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변화에 관한 뉴스를 취합하여 보여주는 다음 [그림1]과 같은 모음에서는 전 세계가 에너지전환과 탈탄소화를 위해 맹렬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흐름이 기후행동가에게 기후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의 빛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데이터를 보면 이와 반대의 경향을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탄소 감축을 다음 정부로 대부분 미루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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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국가 중에 우리가 기후정책이 후퇴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인 셈이다. [그림2]의 30년간 온실가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추이를 보면 많은 사람의 활동이 정지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배출량이 많이 감소하지 않았고 팬데믹이 끝나가자 배출량이 다시 증가하는 등 그간의 기후변화 완화 행동이 별로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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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 현상 중에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변화가 일정 이상으로 진행되면 변화 그 자체에 의해 변화가 촉진되어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인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를 넘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15개의 티핑 요소(tipping element) 중에 7개는 이미 활성화되어 지금 즉시 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는 한 기후변화 폭주(climate change runaway)로 가고 있다 고 주장한다.[2] 가령 북극해 빙하가 녹는 사태, 시베리아 영구동토가 해빙되는 것, 그린란드 육상빙하가 녹아 손실되어 가는 것 등이다. 이 모두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으로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다. 북극 빙하가 녹으면 더 많은 열을 해양이 흡수하여 그것이 다시 더 많은 빙하를 녹이게 된다. 시베리아 영구동토가 녹아 그 안에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던 메테인(메탄)과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 지구 온도가 올라가고 그 올라간 온도가 다시 영구동토를 더욱 녹여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식이다.

     

    1.2  희망과 절망을 넘어

     

    대중이 어떤 사안에 대해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압도된다면 바람직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희망에 압도되면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진다.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행으로 여기고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서 생길 이익에만 관심을 둔다. 미국의 IRA 시행을 보고 우리도 기후정책을 더 급진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IRA가 우리 경제에 줄 이득과 손실만 타산하거나 그것이 우리 혹은 미국의 주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더 관심을 둔다.

     

    절망은 대중에게 희망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절망을 주는 공포는 그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포기하게 할 우려가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기술의 확률적 불확실성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개인적 삶을 개척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는 그런 공포와 절망을 외면하고 지금 당장의 삶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포기할지 모른다.[3]

     

    희망도 절망도 대중을 행동으로 이끌지 못하는 기후변화 이슈는 기후행동가가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잃게 만든다. 희망도 절망도 아니라면 무엇으로 대중에게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행동가 자신이 절망에 빠진다는 것이다. 공유재의 비극과 같이 모든 사람의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기후변화 문제는 대중 개개인을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기 힘든 이슈인 데 비해, 실제 과학적 데이터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실적은 미미하고 기후변화는 티핑포인트를 넘어 폭주로 가는 것으로 보일 때 기후행동가가 느끼는 절망은 우울, 불안, 자살충동 등 심리적 정신적 문제까지 야기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심리치료[4]가 기후행동가에게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그가 건강한 정신으로 기후행동에 나서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기후변화 상태를 완화(mitigation) 혹은 적응(adaptation)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단계로 설정하고 희망과 절망과 같은 감정(emotion, passion)을 넘어 새로운 태도로써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1.3  기후급변의 시대 

     

    IPCC 제3실무그룹 보고서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3]과 같이 산업화 이전 대비1.5°C 기온 상승까지 남은 탄소예산이 2년(목표달성확률 66%) ~ 6.5년(50%)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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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온난화가 1.5°C를 넘어서면 티핑포인트 발생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인류가 현재 탄소감축을 급격하게 단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제 인류는 티핑포인트로 향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기후변화로만 기술할 수 없고 기후급변의 시대로 불러야 할 것이다. 기후 비상상태의 구체적인 표시가 티핑포인트를 향한 기후급변일 것이다. 기후급변은 이미 발생했고 인류가 비상한 조처를 하지 않는 한 티핑포인트를 넘을 것이다. 이것이 기후행동가가 대면해야 할 사실의 문제(de facto)이다. 완화 조치로 기후급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든가, 적응 기술로 기후변화를 극복할 수 있다든가 하는 순진한 희망의 감정을 대중에게 불어넣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절망만 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 소모가 아니라 윤리적 태도이다. 어떤 윤리적 태도를 기후행동가가 취할 때 절망적 감정과 과학적 사실에 압도되지 않고 기후급변을 대면할 수 있을까? 우선 사실을 대면할 용기가 있어야 그 사실을 변화시켜 새로운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 윤리는 사실을 외면하고 옳은 것을 주장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실을 대면할 용기를 가지게 하면서 사실을 변화시킬 행동을 유발하는 자유의 세계이다. 사실에 매몰될 때 사실은 거기에 인과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만들 뿐이지만 윤리는 그 사실을 변화시킬 용기를 부여한다. 이런 기후급변의 시대에 기후행동가에게 어떤 윤리가 필요할까?

     

    1.4  기후급변을 바라보는 윤리

     

    기후급변을 바라보는 첫 번째 윤리는 기후급변 자체를 대면하는 용기이다. 이미 기후급변은 일어났고 비상한 조치 없이는 티핑포인트를 넘어 대다수 생물이 멸종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지구에 인류가 살 수 있는 땅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점, 그런 지점에 도달할 경우 지역 간, 계급 간, 국가 간 갈등이 격화되어 인류 또한 멸종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지점으로 가고 있다고 절망이나 포기 없이 대면해야 한다. 사실 인정과 대면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해결의 확률이 있으면 그 길을 탐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식이 암에 걸렸을 경우 아무리 중하더라도 포기하는 부모는 없다. 제4기 암이라도 사망 확률이 0%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식의 죽음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급변의 시대는 수백 년 후에 올 인류에게 닥친 문제가 아니라 노년층에게는 자기 자식 세대가, 중년층은 자신과 자식 세대 모두, 청년층은 바로 자신의 세대가 겪을 현실이다. 이미 지구는 암에 걸렸고 그 암이 지구에 사는 생명을 죽이고 있다.

     

    지금이 암 제1기라면 우리가 기후행동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곧 제2기, 제3기로 진전되고 급기야는 되돌리기 어려운 제4기, 티핑포인트가 올 것이다. 암이 제1기라고 모두 살고 제4기라고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다. 지구급변의 시대가 제1기라고 모두 해결되고 제4기라고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빨리 철저히 치료할수록, 그렇게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기후문제를 해결할 확률이 높아진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확정적인 해답이 아니라 어떤 범위의 불확실성 내에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다. 탄소예산도 1.5℃ 이내 목표를 성공시킬 확률을 50%에 두느냐, 66%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추산한다. 암의 사망률이 암종과 암 단계에 따라 확률로 표현되는 것과 같다. 기후급변이 어떤 단계라도 완전히 절망할 수도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다. 빨리 급격하게 행동할수록 인류가 겪을 고통과 혼란이 줄어들고 이 땅에서 살아남아 존속할 확률이 높아진다. 설령 티핑포인트의 임계점을 넘었더라도 인류는 포기하고 행동을 그만둘 수 없다. 그때도 해결할 확률은 남아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올바른 윤리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미래의 기술에 인류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탄소 포집 및 저장(CCS)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인데, 지구 성층권에 미세입자를 올려보내 태양광의 일부를 차단하자면서 지구공학(Geo-Engineering)을 사용하자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미래 후손이 개발할 수도 있는 기술에 기대어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지금 세우는 것은 부담을 후손에 떠넘기는 행위이다. 그 자체로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없다. 그 기술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고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현세대의 온실가스 감축은 현세대가 가지고 있는 증명된 기술로 수행해야 한다. 현재의 기술로 가능한 감축을 밝히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부분은 숙제로서 기술개발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5].

     

    미래에 올 기술은 후손의 몫이다. 현세대가 가능한 한 최대한 배출량을 감축하고 적응을 준비하고 실행할 때 미래 세대가 개발할 기술을 사용할 기회가 열린다. 미래 기술에 의존해 지금 감축하지 않고 있다가 상황이 더욱 악화하면 설령 후손이 좋은 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그 기술로 막지 못할 수 있다. 현재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로도 에너지는 모두 재생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6]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제철 제강도 개발되었고 그런 시멘트도 개발되고 있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대체육을 소비하며 숲과 나무를 늘릴 수 있다. 지금 배출되는 온실가스 대부분을 현재의 기술로 감축할 수 있다. 문제는 인류의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결단이지 기술이 아니다. 

     

    넷째는 기후급변의 문제는 인류의 생존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물종이 인류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 관점하에서만 인류 또한 생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한 상태에서도 인간은 특수한 식량 식물과 동물만 재배하고 양식하면 살 수 있다든가, 삶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타 생물종은 멸종하게 내버려 두고 인류는 살기 힘든 더운 지역을 버리고 더 따뜻해질 북쪽으로 옮기면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미래를 우리가 확실하게 예측할 방법은 없다. 인류만 살아남는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대처할 경우 이후 현실은 예측보다 훨씬 나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가장 안전하고도 윤리적인 방법은 다른 생물이 현재 살고 있는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지구를 유지 보존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기후행동가의 윤리를 넘어 대중을 어떻게 윤리로 추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공포가 대중의 기후행동을 유발하지 않고 이익 혹은 손해에 대한 추정도 적극적 행동을 유도해내지 못한다면 무엇이 그들을 행동으로 이끌어 기후급변을 막을 새로운 세계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과학적, 철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대중에게 아무리 선전해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새로운 절망을 한다면 그 자체로 비윤리적이다. 자신의 급박한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문제, 가령 인권, 민주주의, 평화와 공존과 같은 문제는 지금까지 대중이 떨쳐 일어났기 때문에 해결되었고 해결되고 있다. 왜 우리는 타인의 인권에 민감한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구 내의 다른 생물과의 공존에는 민감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수만 리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 아이의 굶주림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해수면이 올라와 집과 농토를 잃고 굶주리는 사람에게는 둔감한가? 어쩌면 아프리카 기아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가들이 다른 대륙 사람에게 공감 혹은 동정심과 같은 인간의 좋은 심성에 호소했지만 기후행동가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공포를 심는 데에 급급했지 그것으로 사람들이 받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과 도덕적 감각을 불러일으켜 사람의 양심을 깨우는 활동을 소홀히 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메마른 과학적 사실로 사람들을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1.5  결어와 새로운 모색

     

    철학의 분과 중에 최후까지 과학으로 대치될 수 없는 부분이 윤리학일 것이다. 윤리는 고도의 지능을 지닌 공동체 동물인 인간이 본능과 이익의 세계를 넘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창조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굶주리는 곳에서 본능에 따르자면 모든 사람이 남은 식량을 쟁탈하려고 서로 죽이고 죽어 공동체가 파괴되겠지만 누군가 윤리적 결단으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죽음으로써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양보하며 골고루 나누어 먹으면서 새로운 식량원을 찾아 나서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면 그 공동체는 한 단계 높은 사회로 변할 것이다. 이처럼 윤리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진정한 자유의 행위이다.

     

    만약 윤리적 행동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면 대중이 기후행동에도 쉽게 나섰을 것이다. 인류와 공동체의 윤리적 보편적 문제, 인권, 민주주의, 평화와 공존 같은 문제도 오래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기후문제는 인류가 마지막에 맞닥뜨린 보편적 문제이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과의 공존을 꿈꾸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여러 행동의 메커니즘 속에서 윤리적 행동이 어떻게 언제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긴요하다. 거기에 맞추어 기후행동가가 어떻게 대중과 함께 행동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1]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2023년 4월,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포함)

    [2] Jim Bendel, 2021년, Deep Adaptation: A Map for Navigating Climate Tragedy

    [3] Michael E Mann, 2021년, The New Climate War

    [4] Adrian Tait, 2021년, Deep Adaptation: Climate Psychology and Its Relevance to Deep Adaptation

    [5] Thom Brooks, 2021년, Climate Change Ethics for an Endangered World

    [6] Mark Z Jacobson, 2023년, No Miracle Needed

     

     

    김재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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