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미래가 불타고 있다 / 나오미 클라인 지음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530, 2021.04.22 15: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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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미 클라인은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환경 운동의 선봉에서 실천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사회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분석하여 책으로 출간해왔고, 그의 책들은 연이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클라인은 1999년, 29살 때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세상을 지배하는 브랜드 뒤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원제 No Logo)라는 책을 냈다. 기업들이 지역 공동체에서 얻은 부를 사유화하고 공공장소, 안전한 직장까지 빼앗아가고 정치를 쥐고 흔드는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2007년에는 『쇼크 독트린: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를 출간했다. 여기서는 국가와 기업들이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먹잇감으로 삼아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재난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구체화하여 제시했다. 

     

    2009년 이후로 클라인은 기후 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천 현장에 나서면서 깊이 있는 연구를 계속했다. 2014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는 기후 운동의 바이블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담에 맞춰 예정된 대규모 시민 기후 행진을 일주일 앞두고 발간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인터뷰를 기반으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 본질을 파헤친다. 2017년에는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를 출간하여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를 분석하고 트럼프의 충격 요법 정치(쇼크 독트린)에 저항하고 이에 맞서 민중이 단합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원제 On Fire)』의 내용은 대부분 클라인이 기후 변화와 관련해서 10년 동안 써온 장문의 기사와 논평 그리고 대중 강연 원고로 구성되어 있고, 새로 쓴 서문과 후기가 실렸다. 서문에는 스웨덴의 십대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걸음을 따라 기후 파업을 벌이는 학생들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그레타 툰베리의 활동에서 희망을 읽는다. 본문에서는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의사당 연좌 농성,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하원 당선, 그린 뉴딜이라는 핵심적인 요구의 부상을 통해 시민운동이 건설하는 새로운 희망을 다룬다. 또한 BP 기름 유출 사건, 키스톤 XL 송유관과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반대 시위, 그리고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산불 등 지난 10년간 기후 변화 논의에서 기념비적인 전환이 되었던 사건들을 꼼꼼히 녹여 낸다. 이 모든 것은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논증으로 수렴된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되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캠페인이 한창 뜨겁게 진행 중이던 때였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는 2016년 미국 대선을 분석한 글이 있다. 클라인은 이 글에서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배반하고 트럼프를 승자의 자리에 앉혔던 2016년 미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서 편 가르기 습성이 얼마나 고약한 독성인가를 파헤친다. 다음은 그중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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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인은 이 책에서 지난 30년 동안 이어져 온 세계 자본주의 발전과 좌파 운동을 되짚으면서 그 어떤 주류 정치 평론가들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세계를 분석한다. 특히 기후 변화와 경제적 불평등, 소수자 혐오와 같은 우리 시대 최대의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담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은 지난 십여 년 동안 기후 정치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마디로 기후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이 이뤄낸 결실을 <그린 뉴딜>로 종합한 책이다.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2020년에 번역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과 함께 최근 그린 뉴딜 논의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기후 변화에 관한 클라인의 기본적인 시각은 2014년에 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 이어 2019년에 쓴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그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제시했던 주장을 이 책에서는 그린 뉴딜과 연결한다. 그가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바람직한 기후 대응책에 대한 주장이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을 입었다고 할까. 그린 뉴딜은 친환경 산업 투자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에 따른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경기 부양과 일자리 확대를 꾀하는 정책이다. 유럽 연합은 적극적으로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도 2019년부터 민주당을 중심으로 그린 뉴딜 정책 도입 확대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후 위기가 재앙으로 치닫는 지금, 자본주의 생산이 초래하는 희생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놓고 편 가르기 싸움이 벌어질 위험이 크다는 것. 클라인은 <쇼크독트린> 개념을 기후 위기에도 적용한다.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기후 위기 대응 방식을 따르게 놔둔다면, 정부는 대중의 공포심과 공황을 이용해서 어렵게 획득한 대중의 권리에 족쇄를 채우고 권력과 부를 몇몇 거물들의 손에 더욱 집중시켜 부패한 정책들이 발흥하고 조직적인 인권 탄압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클라인은 기후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자본주의의 희생양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기후 위기의 재앙에서 이들을 보호할 방안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그린 뉴딜의 핵심이다. 이 핵심이 빈 계획이라면 그것은 진짜 그린 뉴딜이 아니다. 

     

    클라인이 요구하는 그린 뉴딜의 핵심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향상, 청정 운송 수단에 대대적으로 투자한다. 녹색 산업으로 이직하는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보장하고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보장한다. 오염 산업이 배출하는 독성 물질 때문에 피해를 본 지역 사회에 전환 과정에서 혜택을 제공하고 지역 차원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전환 과정을 입안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무상 의료, 무상 보육, 무상 대학 교육을 보장한다. 클라인의 전작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역설하듯이, 기후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근본적인 변화를 밀고 나가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 수립 과정에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함께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그린 뉴딜을 향해 용솟음치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그린 뉴딜 정책으로 거론되는 내용 중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녹색성장 정책에서 논의되고 정부 계획으로 도입되었던 것들이다.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는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고, 녹색성장위원회를 만들었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5억 4300만 톤으로 줄이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했다. 하지만 요란스레 떠벌리던 녹색 성장의 구호는 부끄러운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다. 줄이겠다던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지속해서 늘었고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심화하였다. 결국 대표적인 기후 악당 국가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2017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7억 톤을 넘겼고 2018년에는 7억 2천만 톤이 넘었다.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7위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보다 GDP가 두 배나 많은 독일의 배출량을 곧 넘어설 거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판 뉴딜은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제·사회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명색은 뉴딜이지만 새로운 알맹이는 전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화석 연료 위주의 경제 산업 구조를 탈탄소로 전환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그린 뉴딜의 핵심이 빠져 있어서다. 게다가 민간 쪽에서는 어이없게도 한국판 뉴딜 정책 수립 과정에서 경제가 망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각종 규제를 없애고 민간 중심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쇼크독트린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수립 중인 경제 개편 정책은 진짜 그린 뉴딜이 되어야 한다. 십 년 전의 녹색 성장과는 달라야 한다. 

     

    코로나 위기로 거리가 비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대면 활동을 피하며 지내는 모습 속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앞으로 심각한 기후 위기가 닥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두려움이 커진다. 우리는 흔히 기후 위기로 인한 강력한 바람과 홍수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학교와 가게가 문을 닫고 식품이 동나고 일터도 사라지는 상황을 상상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레타 툰베리가 2019년 7월 프랑스 의회 연단에서 한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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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타 툰베리 말대로 진짜 큰 위험은 대다수 국민이 진실을 보지 못하고 기업들과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려 다니는 <걸어 다니는 돈>, <걸어 다니는 투표용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그 위험을 막을 길이 없지 않은가. 

     

    우리는 무대응의 껍데기를 깨고 나와 행동해야 한다. 툰베리를 비롯한 각국의 청소년들이 하고 있듯이, 당장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도록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미래 세대 모두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우리가 미래 세대의 기대를 저버리는 길을 선택한다면 미래 세대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순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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