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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행동연구소조회 수: 2508, 2021.02.04 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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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은 2021년 우리나라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5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녹색성장과 2030 전 지구 목표를 위한 연대’(P4G,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정상회의에서 체면이 구기지 않을 정도로 문서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2015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의 목표(“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C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 및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C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의 첫걸음을 떼는 일이 탄소중립의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IPCC는 전 세계의 지구온난화 억제 목표 수준별 최대 이산화탄소·온실가스 배출량을 기후 평가보고서에서 발표한다. 그중 파리협정의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2050년까지의 탄소 누적 배출량이 전 지구 탄소예산(“global carbon budget”)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탄소중립 로드맵을 실현하기 위해 각국이 설정하는 향후 30년(2020~2050년)의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가별 탄소예산’이다.
정부는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총괄해 국책연구기관 중심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부문별 감축 잠재량을 분석한 후 복수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6월까지 마련한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가 작년 12월 공표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이나 작년 말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에는 아직 부문별 감축 경로는커녕 국가 탄소중립의 구체적인 경로도 없다. 그러나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수준의 45% 이상 감축한 후 2050년까지 순배출 영점화를 달성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전 세계의 경제활동과 수송이 줄어들었지만, 각국의 경기부양 정책으로 벌써 국제통화기금(IMF, 2021)은 올해 작년보다 전 세계 GDP가 5.5%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산업구조가 그대로인데 경제 규모만 성장하려면 예전과 같이 화석연료를 많이 태우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같은 생각이라면 적어도 2021년은 그냥 지나가 버린다. 이 글에서는 적어도 우리나라는 앞으로의 10년을 허송세월하지 않기 위해서 우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외국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다.
6개국, 이미 탄소중립 또는 기후중립을 법제화
이미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탄소예산을 설정하고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확정한 나라들은 어디이며 무슨 과정을 거쳐서 탄소중립 계획을 만들었을까? 우선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나라는 2020년 말 현재 스웨덴, 영국, 프랑스, 덴마크, 뉴질랜드, 헝가리의 6개국이다(https://eciu.net/netzerotracker).
이 중 스웨덴이 2045년 탄소중립을 의무로 정해서, 목표달성 시기로는 가장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탄소예산은 정하지 않고 있다. 단, 스웨덴은 4년마다 기후행동계획을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독립기구인 기후정책회의(Klimatpolitiska rådet; Swedish Climate Policy Council)의 의견을 반영한다.
영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2019년 7월 법제화했고, 독립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Committee on Climate Change, CCC)가 최소한 12년 전에 5년 단위의 탄소예산을 확정한다. 정부는 CCC의 탄소예산에 답을 해야 한다.
프랑스는 선형으로 83%를 감축(1/6로 감축)하고 나머지는 음의 배출(negative emissions)로 상쇄할 계획이다. 프랑스도 영국의 CCC를 참고(위원장이 영국 CCC의 위원일 정도임)하여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기구인 HCC(Haut Conseil pour le Climat [High Council on Climate], 기후고등회의)를 설치했다.
덴마크도 2050년까지 기후중립이 법제화됐고 독립 전문가 기구인 기후변화회의(Klimarådet; Danish Council on Climate Change)가 매년 달성 정도를 평가하며 정부는 평가결과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덴마크도 5년마다 10년 단위의 탄소예산을 설정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탄소중립보다 강력한 기후중립을 목표로 세웠고 적어도 5년 전에 5년 단위의 탄소예산을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생물기원 메탄을 제외하고 있어서 축산업의 비중이 큰 국가로서 진정한 기후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헝가리는 2050년까지 기후중립 달성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과감한 목표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시행에 대한 소식은 찾기 힘들다.
탄소중립·기후중립 법제화 국가들의 독립된 기후변화 기구
이렇게 탄소중립·기후중립을 법제화한 국가들은 헝가리를 제외하면 기후변화 정책을 평가하고 정부에 조언하는 위원회의 설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법률마다 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위원회들을 특별히 ‘독립’ 기구라고 정의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립되지 못하고 특정 정권의 뜻에 따라 위촉된 위원회의 결정은, 특히 장기 정책일수록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인 저항으로 시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 즉, 독립적이지 못한 위원회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는 다른 정권에서 버려지기 일쑤다(정당이 같아도 대통령이 다르면 주요 정책이 바뀌는 일은 흔함). 유럽연합도 법률로 독립성을 인정받는 기후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Averchenkova & Lazaro, 2020). 최근의 핀란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이 독립 위원회들은 크게 다음의 기능을 수행한다(Weaver et al., 2019).
- - 기후정책과 온실가스 배출량에 관한 현 상태 평가
- - 가장 비용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 조사
- - 도입을 고려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정책 분석
- -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정책 추천
- - 기후변화 정책에 관한 공공 토론에 참여
그렇다면 이제 막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법제화도 마무리되지 않은 우리나라가 지금 소개한 6개국 중 어느 나라를 더 참고하면 좋을까? 탄소중립이나 기후중립을 법제화한 나라들은 대개 일종의 탄소예산을 정해야 하지만, 국가 대부분이 2019~2020년에 법률을 제·개정해서 시간이 부족했는지 실제로 탄소예산과 감축경로가 나온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뿐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HCC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5년 단위 탄소예산을 담은 보고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영국의 탄소예산을 사실상 정하는 기후변화위원회(CCC)의 역할을 들여다본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가 성과를 거둔 요인
영국 CCC의 가장 최근 활동은 2020년 말에 발표한 영국의 제6차 탄소예산 보고서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CCC는 5년마다 영국의 탄소예산을 평가하고, 부문별(배출권거래제 대상 및 비적용 대상 모두) 예산 달성 목표를 제시한다. 그래서 CCC 웹사이트는 전체 탄소예산 보고서 외에 부문별(육상 수송, 건물, 제조/건설업, 전력 생산, 연료 공급, 농업/LULUCF, 항공, 해운, 폐기물, F-gases, 온실가스 포집)로 순배출 영점화 경로 보고서가 공개되어 있다. CCC를 본뜬 프랑스 HCC의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기겠지만, 지금으로서는 CCC의 탄소예산 보고서가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2008년부터 5년 단위로 제시한 탄소예산이 큰 예외 없이 탄소중립을 향한 경로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보고서의 신뢰성을 더한다.
영국의 CCC는 앞의 표에서 정리한 특성 외에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영국이 4개 구성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연합이라는 점도 있다. 영국의 집권세력은 주로 잉글랜드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다른 3개 구성국의 생각을 반영한 위원회를 구성하다 보면 아무래도 정부의 입김이 줄어들고 독립성이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 사례를 참고해서 기후변화 위원회를 설립하려는 나라는 CCC보다 제도적으로 더 강력한 독립성을 부여해야 기후정책 기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영국 CCC는 사무국에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세부 주제별 분석 연구를 담당하는 상근직원들이 있다. 특히 CCC 사무국 직원은 전원 자체 채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정부 자문위원회의 사무국 직원 상당수를 관련 중앙부처에서 파견하는 것과 비교된다.마지막으로, 영국 정부의 부처 간 협력 체계도 CCC가 신뢰할 수 있는 탄소예산을 도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영국 정부는 처음 기후변화법이 제정된 이듬해인 2009년에 중앙부처 사이에 경제모형 및 분석 연구 공유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부처 간 분석관 그룹(Inter-Departmental Analysts Group, IAG)을 운용했었다. IAG에는 CCC의 사무국도 참여하여, CCC가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정책의 현황과 전망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CCC가 제시하는 정책이 정부와 국가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화석연료에 의존해 발전해 온 우리나라에 ‘탄소중립’은 30년 뒤에 갑자기 달성할 수 없고, 지금 당장 촌각을 다투며 치밀하게 시행해야 이룰 수 있다. 법률로 탄소중립이나 기후중립을 의무화한 나라들도 실제 이행은 만만치가 않다. 프랑스만 해도 2019년에 나온 HCC의 첫 번째 연간 보고서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에서 많이 벗어난 경로를 가고 있다고 비판 받았었다(Crellin, 2019). 앞서서 기후행동을 실천하는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해서, 우리나라가 탄소중립 법제화, 독립되고 충분한 역량을 갖춘 기후변화위원회 설립, 정부 부처 간 협력의 체계화 등을 제때 제도화함으로써 매년 탄소예산을 줄여나가서 2050년 이전에 영(zero)으로 만드는 기후대응 모범국이 되길 기대한다.참고문헌
Center for Climate Change Economics and Policy (CCCEP) & Grantham Research Institute on Climate Change and the Environment.The design of an independent expert advisory mechanism under the European Climate Law: What are the options?Averchenkova, A., & Lazao, L., (2020).
https://www.theccc.org.uk/publication/sixth-carbon-budget/. Climate Change Committee (CCC). The Sixth Carbon Budget: The UK’s path to Net ZeroCCC. (2020).
. https://www.reuters.com/article/us-france-climate-carbon-idUKKCN1TQ2T1ReutersCrellin, F. (2019, June 26). France falls short of its own emission targets: climate council.
.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World Economic Outlook Update—January 2021IMF. (2021).
. Suomen Ilmastopaneeli (Finnish Climate Change Panel).Overview of National Climate Change Advisory CouncilsWeaver, S., Lötjönen, S., & Ollikainen, M. (2019).
법률
Denmark: Lov om klima. (2020).
France: LOI no 2019-1147 du 8 novembre 2019 relative à l’énergie et au climat. (2019).
Hungary: évi XLIV. törvény: a klímavédelemről. (2020).
New Zealand: Climate Change Response (Zero Carbon) Amendment Act 2019.
Sweden: Klimatlag. (2018).
United Kingdom: Climate Change Act 2008 (2050 Target Amendment). (2019).
박훈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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