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침반 ― 영화평] 창세기 2.0에서 묵시록 2.0으로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664, 2018.06.12 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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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제15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창세기 2.0>은 크리스티안 프라이, 막심 아르부가예브 감독이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제목만 보고는 예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카메라의 눈은 뉴시베리아 제도에서 멸종된 매머드의 엄니(tusk)를 찾아다니는 사냥꾼들을 추적하는 한편으로, 러시아, 중국, 미국, 한국에서 매머드를 비롯한 각종 생명 복제를 시도하고 있는 유전학자들을 추적한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는 수백만 마리의 매머드 유해가 묻혀 있는데, 크기가 크고 잘 보존된 매머드의 엄니는 특히 중국 시장에서 엄청나게 높은 값에 팔린다. 이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러시아 최북단의 뉴시베리아 반도로 이곳으로 몰려든다. 이곳에 온 사냥꾼들이 모두 대박을 치는 것은 아니다. 식량과 장비를 가지고 위험한 오지로 들어가 몇 개월 동안 천막을 치고 식량을 아껴가며 매머드 유해를 찾아 무작정 돌아다닌다. 상아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내면 몇 날 며칠을 땅을 파대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시장에서 낮은 급으로 평가받을 게 뻔한 보잘것없는 상아를 찾아내고 실망하는 게 다반사다.


    매머드 엄니를 찾는 ‘시베리아 보물찾기’는 또 다른 충격파를 일으킨다. 사냥꾼들이 영구동토층의 녹아내린 땅을 파다 부패하지 않은 매머드 사체를 발견하면서, 유전학계에서는 매머드 혈액과 생체조직을 이용해 매머드를 복제해내려는 야망이 부풀어 오른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유전학자 조지 처치는 “이중나선 안에 모든 비밀이 있다”, “합성 생물학은 차세대 생물학 혁명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야망은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의 유전자를 조합해 매머펀트를 창조하는 것.


    이 영화에는 죽은 반려견을 다시 만나고 싶은 고객들을 위해 10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고 복제를 해주는 사업으로 번창하고 있는 수암 바이오테크와 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황우석도 등장한다. 그리고 중국 진천에 소재한 세계 최고 유전학 기업 BGI도 나온다. 이 회사는 유전자 염기 서열 분석의 선두주자로 2017년에는 중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후에 주가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이들 야심 찬 유전학자들에게 있어 ‘생명은 곧 데이터’다. 이들의 꿈은 모든 생명을 데이터(수단)로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창조주가 되려는, 혹은 부를 눈덩이처럼 불려가려는 야망(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베리아 보물찾기’의 현장이 영구동토층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콜로라도 국립빙설정보센터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200년까지 전 세계 영구동토층의 60%가 녹는다고 한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땅속에 얼어 있던 유기물들이 한꺼번에 부패하면서 대량의 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예측된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2200년까지 세계적으로 1900억 톤의 탄소가 배출될 거라고 예측되는데, 이 양은 인류가 산업 혁명 이래 대기 중에 배출한 누적 탄소량의 절반이다.[1]


    시베리아에는 5000억 톤의 탄소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화석연료 연소를 통해 매년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량에 100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지하수의 성분이 변화하고 북극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는 조류 변화와 기상 패턴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구동토층은 지구온난화의 가장 취약한 지역이자, 기후변화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진원지다[2]. 결국 <탄소 배출량 증가 ⇒ 기온 상승 ⇒ 영구동토층 감소 추세 가속화 ⇒ 탄소 배출량 증가 추세 가속화>.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매머드 엄니 사냥꾼들은 늘 불안에 떤다. 맹렬한 추위와 한계적인 생활과 고독, 그리고 오래 떨어져 지내다 소원해진 가족 때문에 느끼는 불안감 외에도 영혼 깊은 곳에 서린 공포 때문이다. “매머드의 유해를 건드리면 불행이 온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이 금기를 늘 뒤통수에 얹고 다닌다. 자신이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낸다. 다큐멘터리 시작부터 거칠고 낮은 원주민 여성이 매머드 유해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주문을 읊조리는 목소리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감을 불어넣는다.


    사냥꾼들뿐 아니라 관객의 가슴 깊은 곳에서도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이 길이 대박을 쳐서 신천지로 가는 길일까? 아니면 죽음과 파멸이 기다리는 종말로 가는 길일까?


    20세기의 <블랙 골드(석유)> 러쉬에 이어, 지금 러시아에는 <화이트골드(매머드 엄니)> 러쉬가 몰아치고 있다. 데이터 대국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추세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곧 합성유전공학의 <바이오 골드> 러쉬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바이오 골드의 휘황한 빛에 눈이 먼 채 흥청거리는 사이에, 지구의 폐부는 온난화의 칼에 찢질 것이다.


    인간이 출현한 이후로 인간의 무모한 용기는 줄곧 지구 생태계와 충돌해 왔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엄중한 위기가 이미지로 그려진다. 매머드 엄니를 넘치게 싣고 가던 고무보트가 찢어지는 장면⋯, 알래스카 인근 심해에서 석유를 시추하다 원유가 대량으로 유출되어 깊은 심해가 오염되고 숱한 생명체들이 사멸하는 장면⋯, 화석연료를 맘껏 태운 끝에 지구온난화와 연이은 기상 이변에 수많은 사람과 생태계가 짓이겨지는 장면⋯⋯.


    지구 생태계의 자연적인 복원의 한계를 넘어서서 온난화의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지금, 서둘러서 이를 막지 못하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세계의 종말이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 <창세기 2.0>이 아니라 <묵시록 2.0>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엄중한 시기에 매머드를 복제하는 일, 혹은 죽은 반려견을 되살려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에 매달리는 것,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부인하는 것이 과학의 임무인가? 눈먼 과학의 질주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하루빨리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눈먼 과학의 질주가 위험하다는 걸 알릴 방법은 무엇일까? 일상을 위해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팔아먹는 일이 무모하다는 걸 알릴 방법은 무엇일까?


    이순희 전문위원


    [1] http://climateaction.re.kr/index.php?document_srl=12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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