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에 미국 스리마일과 소련 체르노빌에서 겪은 원전 사고의 참상이 잊힐만하자 2011년 후쿠시마에서 믿을 수 없는 대형 원전 사고를 발생했다. 이 사건들 이후 탈원전 바람이 거셌지만,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의 점진적 탈원전 시도를 거세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모인 IPCC마저 지난가을 1.5℃ 특별보고서에서 원전이 대안인 것처럼 발표했다.
원전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유가 사고의 위험 때문만일까? 흔히 원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다;
1) 초대형 사고 위험
2) 핵폐기물 처리 및 보관
3) 군사공격, 테러, 내부 사보타지로부터 물리적 방호
4) 핵무기 확산
사고 위험은 세번의 거대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핵폐기물 문제는 10여 년 전 방사성폐기물 처분 장소 문제로 우리 사회가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심각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미국의 9·11 뉴욕 테러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보였다. 9·11 사태와 같이 대형 비행기가 연료를 가득 싣고 원전에 충돌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때 이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미국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고려로 인해 원전을 지으려는 국가가 거의 없어졌고, 원전 건설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경제성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을 제외하고는 선진 산업국가에서 원전을 지으려는 국가가 거의 없다.
이 세 가지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그리고 각 원전 세대와 형태별로 각기 위험성을 알아보기 이전에, 원전의 근본적인 문제인 핵무기 확산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은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딛고 있는 행성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종(種)이 지구에 탄생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1945년을 계기로 새로운 종이 되었다. 기후변화가 점차 인류를 멸종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는 문제라면, 핵무기는 인류를 언제든지 단시간 내에 멸종으로 이끌 수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 위험성이 드러난다.
원자력발전은 1950년대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슬로건으로 탄생했다. 그럼 원전이 평화와 더 친밀할까, 아니면 전쟁과 더 친밀할까?
주지하듯이, 최초의 원자로는 미국 핵무기 개발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체르노빌 원전 형태와 유사한 흑연감속 경수냉각로에서 우라늄을 태워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핵무기는 우라늄235나 플루토늄239로 만든다. 우라늄으로는 핵무기를 만들기 쉽지만, 우라늄235를 농축하는 기술은 어렵고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미국이 1940년대 초중반 우라늄을 농축하는데 당시 미국 전력의 10% 정도를 사용했을 정도였다.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239를 추출하면 비용이 적게 들었다. 핵무기가 되려면 최소 임계질량의 핵물질이 필요한데, 플루토늄은 6kg 정도면 가능한 데 비해 우라늄은 그 10배가량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두 핵무기의 폭발력은 비슷하다. 플루토늄 핵무기를 제조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여러모로 우라늄보다는 더 매력적인 물질이다. 그래서 핵무기를 몰래 제조하려는 많은 나라가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만으로도 고순도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흑연감속로(북한의 경우)와 중수로(인도)를 운용했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원자로에 증기발생기와 터빈만 설치하면 바로 원자력발전소가 된다. 이것만으로도 핵무기와 원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쌍생아와 같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전 자체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원자로 설계와 운용에 필요했던 막대한 자금에 기대어 탄생했다. 처음부터 원전 개발만 위해 원자로를 개발했다면, 민간 기업이 그토록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은 민간 시설이고 대규모로 많은 수를 지어야 하니 핵무기 생산용 원자로보다 훨씬 안전해야 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슬로건으로 각국에서 국가의 자금으로 많은 형태의 원자로가 실험되었다. 흑연감속로, 경수로, 중수로, 가스냉각로, 초고온가스로, 소듐냉각 고속증식로, 납냉각 고속증식로, 융용염 고속증식로 등, 지금도 차세대 원전으로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원전 형태가 이때 이미 실험되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경수로가 채택되었다. 왜일까? 원전의 평화적 이용의 슬로건과는 다르게 당시 원전이 가장 필요했던 곳은 원자력잠수함(핵잠수함)이었다. 바닷속에서 수년간을 은밀하게 이동하면서 적의 심장부에 핵무기를 투사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으로서 원자력잠수함은 비할 데 없는 강력한 무기였다. 이 원전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제안하고 설계한 가압경수로와 비등경수로가 최종 채택되었다. 경수(일반 물)는 감속재이자 냉각재라서 설계와 제작이 쉬웠고,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어 연료를 한번 장전하면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었다. 최선의 원자로는 아니었지만, 당시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원전과 같은 위험하고 거대한 기술은 개념화, 설계, 시험로, 실증로, 인허가 등에 막대한 자금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의 대부분을 원자력잠수함 추진용으로 국가 자금을 받고 군대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미소 냉전의 독특한 군사적 대결 현장에서 위험한 원자로를 장착한 잠수함을 미 해군이 기꺼이 실험해 주었다. 다시 한번 원전과 전쟁의 깊은 연관을 읽을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와 GE가 잠수함 추진 원자로를 기반으로 개발한 원전이 각각 스리마일 사고를 일으킨 가압경수로와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비등경수로이다. 이 원전의 어떤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이런 사고를 일으킨 것일까? 물은 대기압에서 100℃에 끓지만 압력을 높이면 그 이상에서도 끓지 않는다. 원전은 아주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대기압 상태에서는 물이 기체(수증기)로만 존재하게 된다. 쉽게 기체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높은 압력을 가해 액체 상태로 유지하든지(가압경수로), 아주 높은 온도에서 기화하게(비등경수로) 해야 한다. 외부에서의 냉각이 조금이라는 차단되면 압력이 크게 올라가 폭발의 위험이 있고, 고압 냉각 파이프에 조그마한 균열만 있어도 압력수가 기화하면서 폭발적으로 누출되어 금방 냉각수가 소실될 위험이 있다. 세 번의 치명적 원전 사고가 다 이 물의 성질과 연관되어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생기는 치명적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막기 위해 핵연료를 지르코늄합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