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회용컵(텀블러) vs 일회용컵(종이, 플라스틱) 탄소발자국 비교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267, 2023.08.08 10: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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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회사에서 종이컵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더는 종이컵을 사지 못하게 하고부터다. 차로 약 1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게 아침 출근길 커피 한 잔은 필수다. 꽤 오래 종이컵을 썼고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텀블러를 샀다. 그리고 한동안 퇴근길에 꼬박꼬박 텀블러를 들고 오는 남편을 보며 나름 흐뭇했는데 그 흐뭇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컵이 새서(불량), 잃어버려서, 사무실에 놓고 쓰느라 그 이후 산 텀블러만 해도 두어 개. 그러나 마지막 텀블러도 자취를 감추고 이렇게 우리 집 찬장에는 남편이 주기적으로 가져오는 종이컵이 자리 잡고 있다. 텀블러 챙기는 건 자꾸 잊어버린다면서 종이컵은 떨어질 때가 되면 알아서 채워진다. 

    그러던 중 이사하느라 짐을 챙기다 보니 찬장 한구석에서 텀블러만 한 무더기가 나왔다. 한동안 세미나 등 각종 행사에서 주는 기념품에 마트 사은품까지. 게다가 있는 걸 잊고 새로 샀던 텀블러까지 하면 족히 열 개는 되었을 듯하다. 몇 년 전부터인가 텀블러와 에코백은 기념품이나 사은품 인기 품목이었다. 둘 다 한두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반영구적으로 오래 쓰기 위한 이른바 친환경 제품들이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이유로 집마다 텀블러와 에코백이 몇 개씩은 되는 모양이다. 요즘은 몇 개나 된다고 가지고 가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봤으니. 거기에 색색이 예쁜 것들은 어찌나 많은지, 심지어 몇몇 커피전문점 브랜드에서는 철마다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고 그걸 수집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한정판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나오자마자 동이 나서 구하기도 힘들단다.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돈 벌어서 텀블러만 샀나. 일회용품 줄이자고 쓰는 건데 텀블러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있는 건가. 심지어 이럴 바엔 차라리 종이컵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한눈에 보기에도 텀블러 하나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 않아 보이고, 분리가 힘든 복합 소재인 경우는 재활용도 힘들다). 실제 2005년 영국 환경성에서 수행한 천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 전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연구에서는 천기저귀를 세탁할 때 들어가는 물, 에너지, 세제 때문에 일회용 기저귀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결과도 있었으니.

    과연 텀블러를 몇 번이나 써야 종이컵을 쓰는 것보다 나을까?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종이컵과 텀블러의 소재와 소재별 중량만 파악하면 제품 전과정의 환경 영향은 아니더라도 원료 투입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 에너지 비사용 내구재의 경우 제품의 전과정인 제조 전 단계(원료 투입)-제조 단계(생산)-수송-사용-폐기 단계 중 제조 전 단계의 환경영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선 자주 사용하는 텀블러 하나,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사면 주는 종이컵 세트(종이컵, 홀더, 뚜껑으로 하고 빨대 등은 제외)를 소재별로 구분하여 무게를 잰다. 종이컵 세트는 종이컵(종이), 홀더(종이), 뚜껑(폴리스티렌)으로 나뉘고 텀블러는 본체(스테인리스스틸), 뚜껑(폴리프로필렌), 차 망(폴리프로필렌), 뚜껑 패킹(실리콘고무) 바닥완충재(실리콘고무)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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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소재별 탄소배출계수를 적용해 계산해보니 텀블러는 645g CO2-eq/ea, 종이컵 세트는 23g CO2-eq/ea의 온실가스 배출량 결과가 나왔다.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종이컵 세트의 28배에 해당되니 텀블러를 하나 구입할 경우 적어도 28회 이상은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연구소 사람들에게 하니 기저귀 사례도 그렇고 이왕 하는 거 텀블러의 사용 단계도 고려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표준 사용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내 기준으로 텀블러를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의 양을 측정하고, 이왕 한 김에 폐기 단계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산정해보기로 했다(세제는 온실가스 배출계수 문제 등으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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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와 수송 단계를 빼고 원료 투입, 사용, 폐기 단계를 고려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결과 텀블러는 671.1g CO2-eq/ea, 종이컵 세트는 24.7g CO2-eq/ea로 약 27배, 즉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려면 27회 이상 써야 한다는 뜻이다. 당초 생각한 것보다 텀블러와 종이컵의 온실가스 배출량 차이가 크지 않아 살짝 당황했지만(잘못하면 계절 따라 심지어 월별로 텀블러를 바꿔도 된다는 말이 될까 봐), 텀블러와 에코백 같은 다회용 제품은 오래 쓸수록 좋은 것 아닌가. 실제 사용 기간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해보니 텀블러와 종이컵(대) 세트의 1개월 사용 시 온실가스 배출량은 비슷하지만, 6개월 후에는 종이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텀블러의 5.7배, 1년 후 10배, 2년 후에는 15.9배로 그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그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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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 아니라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제까지 텀블러와 비교한 대상은 종이컵 하나가 아니라 홀더와 뚜껑이 포함된 것들로 홀더와 뚜껑의 온실가스 배출량(11g CO2-eq)이 종이컵만의 배출량(12.3 CO2-eq)과 맞먹는다(표 4). 가끔 텀블러를 잊고 카페에 가서 테이크아웃을 해야 할 경우 죄책감에 고민하다 홀더나 뚜껑은 빼 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빨대, 캐리어도 쓰지 않는다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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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또 하나는 종이컵 크기다. 가만 보니 찬장에 있던 종이컵은 그동안 집이나 사무실에서 쓰던 이른바 믹스커피용보다 훨씬 크다. 요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사무실에서도 커피전문점에서 쓰는 대형 종이컵을 놓고 쓴단다. 허. 작은 종이컵과 비교해보니 무게가 4배나, 온실가스 배출량도 당연히 4배 많다(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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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몇십 년간 지속해 온 생산·소비 방식과 우리의 생활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습관 하나 바꾸기도 쉽지 않다. 텀블러와 종이컵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 주위엔 너무 편리하게 잘 만든 이른바 신박한 일회용품들이 가득하고 커피전문점 진열장에 놓인 벚꽃무늬 화사한 올봄 한정판 텀블러에 비해 내 손에 들린 텀블러는 칙칙하고 오래돼 보인다. 매일 아침 허둥지둥 나오다 보니 텀블러 챙기는 걸 자주 잊어버리기도 한다. 종이컵을 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무실에서 그리고 점심 식사 후 동료들과 다 같이 커피 마시러 가서 나 혼자만 텀블러를 내미는 것도 왠지 어색하다. 하지만 조금 작은 종이컵을 쓰고, 굳이 없어도 되는 빨대나 홀더, 뚜껑은 쓰지 않고, 공짜니까 그냥 가져오기보다 정말 마음에 드는 텀블러 하나를 오래 두고 쓰는 건 어떨까? 

    종이컵 꺼낼 때마다 도끼눈을 뜨고 급기야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남편은 며칠 전부터 다시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다. 한 가지 슬픈 건 그게 새 텀블러라는 것. 하지만 이번 텀블러는 디자인이 맘에 든다며 흡족해하는 걸 보니 이번엔 꽤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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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희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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