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팩 출고량과 재활용 실적(2008~2020) (출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 그래픽: 배연정)
종이팩 사용량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 재활용의무율과 재활용률은 계속, 그것도 2013년을 기준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13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종이팩 재활용률은 떨어지다 못해 2022년엔 재활용의무율(26.8%)에 훨씬 못 미치는 14%에 그쳤습니다. 귀찮고 힘들어도 분리배출만큼은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로 종이팩을 씻고 자르고 펼치고 말렸다가 주민센터, 생협 등에 전달해온 분들에게는 허무하기만 한 수치일텐데요. 종이팩 전체에서 멸균팩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종이팩 재활용률이 낮은 여러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멸균팩 사용량이 많아지면 회수율도 높아지거나 일반팩과 비슷한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2020년 기준 전체 종이팩 중에서 멸균팩 회수율은 20%. 사용비중은 늘어나지만 회수량은 얼마 안 되는 멸균팩이 전체 종이팩 재활용률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죠.
멸균팩이 계속 늘어난다면 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 환경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마다 고시하는 제품·포장재별 재활용의무율 중 올해부터 종이팩은 일반팩과 멸균팩으로 구분해 각각의 의무율을 지정했어요(이전엔 종이팩 단일품목). 멸균팩 회수와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유도책으로 분담금 단가도 일반팩의 두 배 이상(일반팩 260원/kg, 멸균팩 559원/kg)으로 책정했고요.
2023년 제품포장재별 재활용의무율 및 분담금 단가 (출처: 환경부)
하지만 의무율 분리는 해결책 중 하나일 뿐.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한둘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1년 기준으로 전국 도처에서 사용된 종이팩이 사용처마다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폐기·재활용되는지 현황 파악이 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이도 쉽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배연정 실장님은 현재 수행연구에서 이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부터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연구의 중간 결과를 토대로 상당량의 종이팩을 회수할 수 있는 공략 지점과 회수가 재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제시해주셨습니다.
우선공략 1. 공동주택 종이팩 전용수거함 설치부터!
아무래도 종이팩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버려지는 곳은 가정(주택지역)일텐데요. 가정에서 쓰인 종이팩 중 재활용되는 것들은 거주지에 종이팩 전용수거함이 설치되어 있거나, 우리가 스스로 수거함을 찾아가는 경우(주민센터, 일부 생협 등)에만 해당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종이팩 전용수거함은 여간해선 찾기 쉽지 않고 주민센터라고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니라 종이팩 유랑민이 되는 경우가 많죠.
대부분의 가정 발생 종이팩은 종이류와 섞여 버려서 폐지로 취급되고 일부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지는데요. 종량제 봉투에 담기는 순간 종이팩 제2의 인생 재활용과는 영영 이별. 폐지로 취급해서 골판지로 재활용하는 것도 멸균팩에만 해당된다고 해요. 일반팩은 펄프의 밀도가 높아 골판지 생산을 위한 해리 과정에서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어 결국 소각된다고 하니 부드러운 고급화장지로 재탄생할 수 있는 고품질의 원료가 낭비되는 것이죠. 요약하면 가정 배출 종이팩의 가장 큰 문제는 종이류와 함께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죠. 종이팩 전용수거함이 설치되는 것. 대신 일반팩과 멸균팩으로까지 구분할 필요는 없고 종이팩 한 종류로 배출회수하고, 선별 업체에서 선별하여 각 재활용생산업체로 보내면 깔끔! 이는 쓰레기 박사 홍수열 소장님도 최근 서울시 종이팩 포럼과 그 외 여러 자리에서 우선 개선사항으로 거듭 강조하신 내용이고요.
배연정 실장님은 효과를 가늠해보기 위해 폐기물 종류별 전용수거함을 운영하는 공동주택(아파트)를 대상으로 시나리오를 작성, 계산한 결과도 알려주셨는데요. 현재 전용수거함을 운영 중인 1000세대 공동주택 단지 일부를 조사한 결과조사 결과 대략 1년에 720kg 정도의 종이팩 배출. 이를 1세대로 환산하면 0.72kg/1년이 되는 거죠. 그리고 대단지라 할 수 있는 전국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 총 세대 수를 알아보니 400만 세대. 이를 전제로 하면 연간 약 3000톤의 종이팩을 추가 회수할 수 있다는 건데요. 2022년 기준 종이팩 연간 출고량(사용량)이 75,500톤인데 3,000톤이면 4% 가량 됩니다. ’에이 겨우 4%?‘라고 할 수도 있지만 최근 재활용률이 14%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4%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죠.
우선공략 2. 카페 등 B2B 거점 회수도 늘려야
가정 다음으로 종이팩이 많이 나오는 곳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카페! 한국카페총연합회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내 까페 수는 약 10만 여개. 이 10만 개의 카페 대부분 우유 넣은 음료를 판매할테니 여기에서 나오는 종이팩 양도 엄청납니다. 그래서 이미 수년 전부터 까페라떼클럽(현재는 유어스텝으로 수행단에 참여 중 ^^)과 같은 시민그룹이나 단체, 협동조합에서 카페 배출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워낙 배출되는 양이 많아 이들의 노력만으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 아직 절반 이상은 종이류로 혼입배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우리가 아니다! 시민그룹과 협동조합의 종이팩 거점 회수 모델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고, 가능성을 엿본 재활용업계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으로 사회적협동조합 자원과순환과 재활용업체 대흥리사이클링의 사례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자원과순환은 2005년부터 전국 3,500여 개 식음료 매장과 커피박과 알루미늄 캔, 일회용컵, 종이팩, 핸드타월까지 포함해 수거재활용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종합 재활용 플랫폼을 구축한 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종이팩 수거모델의 한계로 지적된 회수량 부족과 그로 인한 물류비 손실을 카페에서 배출되는 거의 모든 폐기물을 One Stop 방식으로 수거하여 해결했고요(하지만 여전히 종이팩만 따지면 손실이고 이를 다른 품목에서 보완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수거모델을 구축해 프랜차이즈 매장 중 스타벅스, 맥도날드와도 제휴를 맺고 있어요. 배연정 실장님은 최근 동대문구의 근로취약계층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 종이팩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 사업 컨셉을 도입한다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제안했어요.
자원과순환의 종합 재활용 플랫폼 (출처: 자원과순환)
요즘 종이팩 자원순환 관련 검색을 하면 대흥리사이클링 관련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올해 ’밀크웨이 프로젝트‘라는 말랑말랑한 이름의 종이팩 자원순환 비즈니스를 시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원래 대흥리사이클링은 부산 포함 영남권의 종이류(60%), 알루미늄캔, 철, 커피 캡슐 등 수거처리해 온 32년 된 중소기업인데요. 이 중 일반팩은 전체 매출의 0.03% 밖에 안 될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지만 환경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밀크웨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해요.
전용 수거차량(그것도 전기차!) ’밀크카‘와 수거 예약 카카오톡 채널 ’밀크웨이‘, 브랜드 마케팅을 고려한 디자인 개발 및 상표등록까지 중견 자원순환업체의 탄탄한 기반에 신생 스타트업 같은 트렌디함이 더해져 현재 밀크웨이 프로젝트는 순항 중입니다. 카페, 행정복지센터, 어린이집, 우유 대리점까지 함께 하고자 하는 곳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최근엔 CJ대한통운과 영남지역 어린이집연합회, 멸균팩 생산기업인 SIG콤비블록코리아와의 업무협약까지 맺었다고 해요. CJ대한통운은 약 4,000여 곳의 어린이집에서 배출하는 종이팩을 CJ대한통운에서 회수, 대흥리사이클링에서 이를 선별-최종 가공까지 담당하는 거죠(최근 일반팩과 멸균팩을 자동선별하는 광학선별설비까지 갖췄다는!).
대흥리사이클링의 밀크웨이 프로젝트 (출처: 대흥리사이클링)
우선공략 3. 결국은 종이팩 관련 제도 개선
그런데 지점 1,2를 공략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라고요. 먼저 ’우선공략 1. 종이팩 전용수거함 설치‘는 지자체 소관이므로 지자체별 조례 제·개정 등 행정의 뒷받침이 필요한데요. 그래서 지자체에 이를 요구하면 돌아오는 답 중 하나가 일부 지역에 시범설치를 했으나 정작 가져갈 재활용업체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재활용업체는 재활용품 판매비용만으로는 부족한 수익 구조를 정부 지원금으로 보충하는데 종이팩은 다른 폐기물에 비해 소위 돈이 안 돼 업체들이 소극적이란 것이죠. 무색 PET와 일반팩 수익 구조를 예를 들면, 무색 PET의 재활용 소재는 신재의 70% 정도지만 일반팩은 고작 9%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이걸 지원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지원금의 출처는 바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근거해 생산기업들이 내는 분담금이에요) 현재 분담금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죠.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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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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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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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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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원/kg
500ml 생수병 1ea 기준(18g): 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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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원/kg
200 ml 우유팩 1ea 기준(10g) : 29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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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소재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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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원/kg(신재 대비 68%)
500ml 생수병 1ea 기준(18g): 13.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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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원/kg(신재 대비 9%)
200 ml 우유팩 1ea 기준(10g) : 2.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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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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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원/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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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원/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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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무색)과 일반팩의 수익 구조 비교(출처: 배연정)
그리고 이 문제는 ‘우선공략 2. 카페 등 B2B 거점 회수 확대’에도 연결되는데요. 앞서 언급했듯이 자원과순환은 종이팩에서 보는 손해를 커피박으로 메꾸고 있고이고 대흥리사이클링도 현재로선 계속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요. 인건비에 물류비 고정비용이 큰데 수거량 뿐 아니라 지원금도 2배로 늘어나야 현상 유지를 할 있다고요. 결국 분담금을 올리는 것이 배출수거량 증가를 위한 인프라 구축(공동주택 전용수거함, B2B 수거 확대)의 전제조건이라는 최종 처방과 함께 발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초록열매 종이팩 컬렉티브 정책포럼>은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갈 예정입니다. 포럼의 문은 종이팩 자원순환 문제에 관심 있는 모든 분에게 열려 있습니다. 포럼에 참석하여 우리와 함께 종이팩 문제 해결의 대안을 만들어 주세요. 오는 12월에 개최되는 공개포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작성 및 문의: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윤희 연구위원(yhlee3235@naver.com)
* 12월 공개포럼 안내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