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가스 감축 절박…‘배출권거래제’ 미룰 때 아니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3306, 2011.03.14 09:51:59
  • [싱크탱크 맞대면] 배출권거래제 도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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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2009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에서 8위로 상승한 한국에서 배출권거래제 반대는 한가한 얘기다. 그런 주장이 대기업들에 면죄부를 부여해 기후정의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나갈 수 있을지 극히 불투명해졌다. 배출권 거래제 시행은 애초보다 2년 미뤄졌다. 탄소세 등 보완적인 정책수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미약하다.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가 할당량을 기업과 협의해 정하고 벌칙규정도 있으나 마나 한 탓이다.

    최근 정부가 수정해 내놓은 배출권 거래제 입법예고 내용을 보면 산업계의 반발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도입 시기, 무상할당 비율, 과징금 등 핵심 조항들이 모조리 기업의 입맛에 맞게 바뀌었다. 작년 말부터 전경련 등 재계는 “거래제가 시행되면 국제경쟁력이 약화돼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도 있다”며 도입 저지에 총력전을 펴왔다.

     

    온실가스 규제를 피하려는 기업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있다.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 시장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는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를 줄이기는커녕 금융투기를 조장하고 오염 기업의 초과수익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배출권 거래제를 대신해 탄소세를 도입하거나 명령통제식 직접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들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제현상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시장은 허점투성이인 게임의 장이다. 기후변화 경제학의 교과서인 ‘스턴 보고서’조차 기후변화를 역사상 가장 큰 ‘시장의 실패’로 규정한 바 있다. 따라서 시장의 실패를 시장주의 메커니즘으로 교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안이다. 시장메커니즘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가속화하고 있는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있는가? 불행하게도 없다. 대안의 부재는 세계의 주요 진보정당들이 배출권 거래제를 현실적인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 받아들이게끔 한 요인이기도 하다.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핵심 정책수단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모든 온실가스 배출원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견제와 감시가 없으면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들어 배출권 거래제 대신 탄소세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기 어렵다.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는 모두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시장주의 접근방식이다. 탄소세에는 가격 확실성이 높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즉시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예측이 어려운 감축 불확실성은 대표적인 단점으로 지적된다.

     

    배출권 거래제의 가장 큰 단점은 배출권 가격의 변동성이 커 투기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할당에 실패할 경우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 요인에 속한다. 하지만 국가가 배출총량을 정한 후 개별 기업들에 배출권을 제한적으로 할당하기 때문에 감축 확실성이 높다는 점은 이 제도의 큰 장점이다. 또 소득 역진성 우려가 없고 기업들에 추가 감축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도 장점으로 거론된다.

     

    온실가스를 단기간에 감축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을 고려하면, 감축목표 달성에 용이한 배출권 거래제의 장점이 탄소세보다 더 적다고 볼 수는 없다.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가에서는 자동차 연비 규제 등 직접규제, 배출권 거래제, 탄소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에너지효율 향상과 같은 다양한 정책수단이 전방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공정하게 관리하면서 대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래제 방식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탄소세 도입에 관한 논의다. 특히 에너지 수요를 부풀리는 ‘장부상 감축’이나 과도한 무상할당과 외부 크레디트 등의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최근 유럽연합(EU)은 배출권 거래제 제1기(2005~2007년)에 나타났던 과잉할당과 초과이득 등의 문제점을 빠른 속도로 개선해가고 있다. 배출권 할당방식을 유럽연합 차원의 단일할당으로 전환해 과잉할당 가능성을 차단하고, 유상할당 비율을 높여 2027년에는 완전경매에 도달한다는 계획이다. 배출권 할당을 100% 유상으로 하게 되면 초과이득 등의 문제점은 거의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에서 8위로 한단계 상승한 대한민국에서 배출권 거래제 반대는 한가한 얘기다. 그런 주장이 의도와 무관하게 대기업들에 면죄부를 부여해 결과적으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정책, 의사소통, 대안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2009년 설립된 민간 연구소이다.

    (2011.03.13, 한겨레칼럼)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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