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침반 -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 푸에르토리코, 허리케인 마리아에게서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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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606, 2018.08.02 08:06:12
  •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 푸에르토리코, 허리케인 마리아에게서 얻은 교훈

    푸에르토리코, 전력망이 마비되고 대량 이주가 시작되다


    DKlJzVnXoAEu2Pt.jpg 그림:      푸에르토리코 야간 위성사진: 허리케인 마리아 이전()과 이후(아래) 비교(NOAA / CC0)

    2017 9,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허리케인 마리아로 인해 64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허리케인 기습 후 3개월 사이에 4,600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대부분이 정전과 도로 폐쇄 등으로 고립된 채 식품 및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집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푸에르토리코의 국민총생산은 1,030억 달러인데, 마리아로 인한 푸에르토리코의 재산 피해는 900억 달러( 97조 원)이다.

    이런 피해를 천재지변에서 비롯한 피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푸에르토리코는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특히 화력 발전 의존도가 높다. 에너지 수요의 4분의 3이 전량 수입되는 석유 제품으로 충당된다. 2017 6 30일 기준으로 푸에르토리코 전력 가운데 47퍼센트는 석유, 34퍼센트는 천연가스, 17퍼센트는 석탄, 그리고 나머지 2퍼센트가 재생가능 자원에서 생산된다. 게다가 화력 발전소는 대부분 남쪽에 있고, 인구 밀도가 높고 전력 사용량이 많은 도시는 북쪽에 있기 때문에,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기 위해 송전선 약 4,000km, 배전선 약 32,000km가 구축되어 있다. 선박을 통해 에너지 화석 연료를 수입해오고 전력을 생산하여 배분하는 과정에서 큰 비용이 든다. 이곳의 전기 요금은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런 에너지 수급 시스템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무엇보다도 초강력 허리케인의 피해를 더욱 가중한다. 마리아의 초강력 강풍에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송전탑이 무너지고 송전선이 얽히고 홍수로 주거 상업 지역이 물에 잠기면서 전력망이 완전히 마비되어 거의 모든 지역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마리아 기습 후인 2017 4분기의 전력 생산량은 2016년 같은 시기에 비해 무려 60퍼센트나 감소했다. 그런데 송전 시설은 발전 시설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송전 시스템 복구의 어려움 때문에 수개월이 지나도록 많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전기 없이 위태로운 생활을 해야 했다. 2018 6월까지도 이곳 인구의 12퍼센트가 전기 없이 살고 있다.

    대규모 정전은 수많은 난민을 탄생시켰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모든 생활의 바탕을 이룬다. 전력과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이 마비되어 기본적인 생활에 위협이 닥치면서 대규모 인구가 푸에르토리코 섬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영토 면적은 경기도 면적보다 약간 크고 인구는 2017 6월을 기준으로 335만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자치령으로 이곳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일자리를 찾아 미국 본토로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로 전력 없이는 건강을 지키기 어려운 유아나 노인, 병자 등 가족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대거 미국 본토로 이주했다. 2017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6개월 사이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약 40 명이 미국으로 이동했는데, 그중 가장 가까운 플로리다주로 무려 19만 명이 이동했다. 40만 명이면 전체 인구의 10퍼센트가 넘는다. 푸에르토리코 주 정부는 향후 5년 사이에 인구가 무려 20퍼센트나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발표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싹트는 분산형 재생 에너지 공급망

    요즘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마리아가 선생님이다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허리케인 마리아 덕분에 시스템의 취약점을 확인하고 재생에너지와 분산형 시스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다.

    푸에르토리코가 처한 참담한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공동체는 재해에 취약하다. 대규모 전력망은 재해에 취약하다. 공공 부문에 대한 투자 부실로 방치된 기간시설은 재해에 취약하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재해에 취약하다. 자주적인 의사 결정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공동체는 재해에 취약하다. 사적인 이익이 공공의 이익을 짓밟기 때문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 차원에서 주거용, 영업용 시설의 태양광 패널 설치를 지원할 방안을 여러모로 모색하고 있다. 신축 건물뿐 아니라 기존 건물의 경우에도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를 권장하고 있고, 음식쓰레기나 농축산업 폐기물을 이용한 지역별 바이오가스나 전기 생산 시설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 금융 정책을 통한 재정적 지원이나 경제적 인센티브 등 제도적 지원 방안도 구축되고 있다.

    재생 에너지라고 해서 폭풍이나 홍수 피해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허리케인 마리아 기습 당시, 푸에르토리코의 작은 산간 도시 아드훈타스 역시 전력 공급과 수돗물 공급이 완전히 끊겼고 도로 붕괴로 인해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곳에는 태양광 전력으로 조명을 밝히고 인근 주민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친 공간이 있었다. 바로까사 푸에블로라는 이름의 공동체 생태 센터다. 20년 전에 설립된 이곳은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둔 덕분에 독자적으로 생산된 전력을 이용해 이 마을의 비상 전력 공급원이자 임시 병원으로 변신했고, 산소공급기에 의지해야 하는 환자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조명을 밝히고 이웃을 돕는 까사 푸에블로의 활동을 확인하면서부터 재생가능 자원을 이용하는 전력 생산 방식과 분산형 에너지 망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재생가능한 자원을 쓴다고 해도 대규모 태양광 혹은 풍력 발전소 몇 곳에만 의존하게 되면 대규모 석탄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장거리 송전선이 설치되어야 하고, 그만큼 폭풍 등의 재해에 취약하다. 이런 교훈을 얻은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소비자가 거주하는 지역 인근에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작은 규모의 전력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또한 분산형 시스템 역시 재해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의 유지 보수를 담당할 현지 인력 구축에도 힘을 쓰고 있다.

    푸에르토리코를 타산지석으로,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기후변화가 몰고 오는 재앙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닥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세심한 대비를 해야 한다. 푸에르토리코는 섬들로 구성된 영토에서 화석연료를 한 주먹도 캐내지 못하면서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해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외국산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푸에르토리코의 경험은 훌륭한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풍이나 지진, 홍수 등 예상치 않은 재해로 대규모의 장기간 정전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전력이 끊기는 상황은 밤마다 닥치는 암흑천지를 견뎌야 하는 상황으로만 해석한다면 큰 오산이다. 전력이 끊기면 기계를 돌릴 전력이 없으니 공장도 문을 닫고 냉장 시설을 돌릴 수 없으니 상점도 문을 닫고 위생 설비를 가동할 수 없으니 병원도 문을 닫는다. 정수처리 설비와 음용수 정수 설비가 작동을 멈추면서 수돗물 공급도 중단된다. 식품 공급망도 마비된다. 물이 오염되고 식품이 오염된다. 화장실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는 난처한 상황이 닥친다. 가정도 병원도 학교도 오염원이 된다. 안전성을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은 생명을 위협한다. 이렇게 되면 지옥 같은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난민의 처지가 결코 남의 이야기일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단순한 땜질 처방에만 의존하다가는 고질적인 참사가 되풀이되는 걸 막을 수 없다. 재난이 닥칠 때마다 인재(人災) 시비가 번번이 되풀이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인재 때문에 자연재해가 몇 곱절 심각한 재해로 둔갑하게 될 위험을 막을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앞서 말한 재생가능 자원을 이용하는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앞으로 닥칠 기상 이변에 대비하기 위해 홍수, 지진, 해일, 강풍 대비용 기간 시설을 개량하고 소방관, 의료진 등 공공 구조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필수적인 프로젝트와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은 우리 앞에 닥친 절박한 과제다.

    또 하나의 절박한 과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 국민적인 합의를 이루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개인 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할수록 화석연료를 더 많이 태우고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구온난화가 기후 재해의 파괴력을 더욱더 높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닥치겠어?”라고 외면하는 태도를 우리 내면에서 몰아내야 한다.

    우리는 사회 각 영역에서 사적인 이익이 공적 이익을 짓밟을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에 국민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의 정책 순응도가 높지 않으면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따라서 기후 변화에 대응한 교육을 강화하여 개인이나 사업체 등 모든 주체가 구체적 행동에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컨대, 세련된 고급 자동차 광고보다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는 등 공익 광고를 더 많이 늘리고, 미래에 기후변화 문제의 당사자가 될 청소년 세대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지원해야 한다.

    이순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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