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투바'를 기억하세요, 진짜 '착한 초콜릿'을 찾으신다면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18209, 2013.02.26 00:23:26
  • 지난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우정의 증표로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슈퍼마켓이나 마트, 편의점 등에서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생 초콜릿을 사다가 녹여 선물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초콜릿 회사의 상술에 물든 기념일들이라 해도 '귀엽게' 봐주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구입해 선물하는 초콜릿이 아동 노동 착취나 환경 파괴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귀엽게' 지나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허쉬(Hershey), 네슬레(Nestle), 마스(Mars)는 세계 초콜릿 생산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3대 초콜릿 회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 카카오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아동 노예노동, 유전자변형식품(GMO) 사용, 열대우림 파괴 등을 서슴지 않고 있다. 2011년 미국 툴레인대학 연구진들의 발표에 따르면, 2007~2008년 사이에만 약 81만 명 이상의 코트디부아르 어린이들과 약 99만 명의 가나 어린이들이 코코아 관련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감금된 채 마치 노예처럼 강제노역에 내몰리고 있다.

     

    비정부기구(NGO)들과 정치인들, 심지어 허쉬 사의 주주들까지도 이렇듯 추악한 비즈니스의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초콜릿 산업의 부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2001년에는 미국에서 코코아 산업의 아동 노동착취에 관한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져, 초콜릿 포장에 '무(無) 아동 노동(child labor free)'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 제정이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초콜릿 기업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스스로 법 제정을 포기하고 말았다.

     

    초콜릿 회사들은 코코아 농가를 부추겨 서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을 없애고 대규모 코코아 공장을 짓고 있다. 동시에 초콜릿을 만드는 데 필요한 팜유 대농장을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까지 파괴하고 있다. 두 개의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열대우림 파괴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카카오 농가와 미국의 초콜릿 제조사 사이의 거리는 멀다. 뿐만 아니라 대농장(플랜테이션), 중간 상인, 수출당국 관계자 등 여러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게 된다.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초콜릿 공급 및 유통망을 끈질기게 추적해 거대 초콜릿 제조사들의 무책임함을 드러낸 것은 <초콜릿의 어두운 얼굴>(The Dark Side of Chocolate, 2010)이라는 다큐멘터리다. 회사들은 진실을 요구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의 요청과 섭외를 거절하고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쫓아내기까지 한다. 전 세계 마트며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초콜릿은 대부분 유전자변형식품으로 생산된 것이다. 허쉬 사와 마스 사는 지금까지 유전자변형식품 개발에 100만 달러 이상을 쏟아 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구매하는 대부분의 초콜릿들이 전 지구적인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비싸고, 고급으로 보이고, 예쁜 상자에 담겨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윤리적으로 올바른' 착한 초콜릿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포장지에 ‘공정무역’ 또는 ‘유기농’이라는 말이 쓰인 초콜릿들이다. 이들은 일반 초콜릿보다는 좀 더 나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공정무역이나 유기농이라는 말이 환경, 노동, 사회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고려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초콜릿들은 분명 환경 친화적인 제품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기농 초콜릿들이 원료 생산지의 노동과 사회적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다. 유기농 인증과 함께 수익의 일부를 생산지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부하는 등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하는 회사야말로 진정한 '윤리적으로 올바른 초콜릿'을 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품으로는 뉴먼스 오운 유기농(Newman’s Own Organics) 사에서 생산하는 초콜릿이 대표적이다.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일단 카카오 농가에 적정한 가격을 지불했다는 점에서 공정무역 초콜릿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정무역 초콜릿이 다른 초콜릿보다 가격이 비싼 것도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무역 인증을 받기 위해 카카오 농가들은 수천달러를 지불해야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노동자, 환경, 지역공동체를 위해 투자할 재원이 부족해진다. 유통 과정에서 중간 상인들이 사라진 대신 국제인증단체들이 끼어들어 또 다시 '어두운 얼굴'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초콜릿이 ‘직거래’를 통해 생산되었느냐다. 따라서 공정무역, 유기농 등 화려한 인증표지보다는 최소한의 유통 과정만을 거쳐 생산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빈투바(bean-to-bar)’라는 라벨이 붙어 있고, 제조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다. ‘빈투바’는 한 사람이 카카오 빈부터 초콜릿 바까지 만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단델리온 초콜릿(Dandelion Chocolate)이라는 쇼콜라티에(초콜릿 가공 판매업자)는 실제로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해 카카오 농가와 직접 계약해 초콜릿을 만든다. 미국 위스콘신의 게일 암브로시우스 역시 코스타리카로 직접 여행을 떠나 자신의 카카오 빈 공급자를 찾았다.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판매자는 직접 최고 품질의 카카오 빈을 고를 수 있고, 생산자는 적정한 가격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를 거두게 된다. 프랑스의 발로나(Balona), 이탈리아의 아메디(Amedei) 사 등은 이미 초콜릿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빈투바 업체들이다.

     

     

    askinosie_tanzania_2011.jpg

    www.drexeliuschocolates.com

     

    에스키노시 초콜릿(Askinosie Chocolate)은 한술 더 떠 탄자니아의 카카오 농가에 자신의 재정 기록을 전부 공개했다고 한다. 아마 이 이상 공정한 계약은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회사의 창립자인 숀 에스키노시(Shawn Askinosie)는 미국의 학생단체와 함께 탄자니아의 카카오 농가 마을에 우물과 물탱크, 풍차를 짓기도 했다. 최근 오프라 잡지는 그를 ‘지구를 구한 15명의 사람들’에 속하는 인물로 선정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렇다 할 빈투바 업체가 없지만, 몇몇 쇼콜라티에들이 소량으로 해외 현지에서 빈을 가져다 시판하고 있다. 빈투바 초콜릿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사동의 에이미초코, 청담동의 쇼콜라에오브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생소한 초콜릿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초콜릿들이 훨씬 친숙할 수 있다. 하지만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정성스런 선물을 하려고 초콜릿을 직접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보다 윤리적인 초콜릿을 찾는 데 필요한 약간의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진정 지구를 보다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착한' 초콜릿만큼 특별한 선물도 없을 것이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신한슬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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