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포도주가 위기에 처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기온과 토양 조건의 변화 때문이다. 이는 보르도 와인 애호가들은 향후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도 보르도 와인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20년쯤 지나면 프랑스는 영국에 와인 종주국의 자리를 내놔야할지도 모른다. 상상해보라. 프랑스 론 지방과 스페인 북쪽에서 잘 자라는 레드 와인 그르나슈(Grenache)가 영국의 대표적인 포도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변화는 호주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태즈매니아 지역은 25~40년 전만해도 포도가 자라기엔 너무 기온이 너무 낮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호주 와인의 대표적인 생산지로 변모 중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포도가 덜 시고 당도가 매우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알코올 도수가 높고 과일 맛이 진한 와인만 생산된다. 문제는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이렇게 강하고 맛이 진한 와인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프랑스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그들만의 색깔을 입히는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다. 진하고 단 와인들은 프랑스인들에게 익숙한 입맛과 문화에 배치된다.

프랑스 와인 생산업자들은 생산량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지난 십여 년간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대책은 세워져 있는 것일까? 물론이다. 여기에는 프랑스 와인의 엄격한 분류체계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 분류체계에 따라 지역별로 특정 포도 품종의 재배를 지정할 수도 있다.

지구 역사를 통틀어 보면 기후변화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2년 와인 생산에 영향을 준 요인은 많았다. 지난해는 와인 생산에 ‘나쁜 해’였다. 오른 기온, 많은 비, 늦은 봄과 여름, 기상 이변.....이들은 포도에게 모두 스트레스가 된다. 날씨의 변화가 프랑스 포도 재배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두 세배 이상이다.

프랑스는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 간 좋은 해도 있었고 나쁜 해도 있었다. 프랑스의 포도 재배업자들은 늘 그 변수를 고려해 왔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의 기후변화는 과거 그들이 적응할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도전이라는 사실이다.

올해 프랑스의 와인 생산량은 지난 40여 년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프랑스 전역에 휘몰아친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생산량이 20%가량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이미 프랑스의 와인 바나 식당 테이블에서 고스란히 감지된다. 그리고 그 파장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승민 객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