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기후변화 과학에 둔감한가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11269, 2020.03.27 14:58:44
  • 우리는 지금이 기후위기 상황이라는 보도를 많이 듣지만, 여전히 지구온난화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 위험성을 외면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필자도 처음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연적 변화의 한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전 세계 과학자들의 연구는 이런 막연한 사고를 깨뜨려 주었다. IPCC에서 1992년부터 약 7년을 주기로 지금까지 다섯 번 발표한 평가보고서와, 지난 2년 동안은 2021~2022년에 나올 제6차 평가보고서 이전에 발표된 3개의 특별보고서(『지구온난화 1.5°C』, 『기후변화와 토지』, 『해양 및 빙권』)가 최신 과학 성과를 집성했다. 이들 보고서는 전 세계 과학자의 공통된 결론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점점 더 높아지는 확률을 제시하면서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이 일으킨 비자연적인 현상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 심지어는 일부 국가 지도자들까지 기후변화 과학에 동의하지 않고, 과학에 동의하지 않다 보니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기후변화 대응 방안에도 진지하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물론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기후변화 과학에 동의하지 못하는 데는 이해관계, 불평등, 사회구조 등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Schmitt et al., 2020), 그런 근본적인 이유는 클리마 편집위에서 다음 기회에 다루려고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심리적인 이유에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기후변화 과학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몇 가지 인지 편향의 효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는 어떤 사안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사람은 자신이 지식이 부족한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는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하기 쉬워서, 기후변화가 자연적인 주기에 따른 현상이라는 등의 비과학적인 설명에 현혹될 수 있다는 가설이다(Nunley & Sherman-Morris, 2020). 필자도 의학지식이 별로 없는데도 인터넷에서 찾은 코로나-19 예방법을 SNS 대화방에 소개했다가 의사 친구에게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고 핀잔을 들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도 있을 수 있다. 기후변화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이나 기존 지식에 맞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래서 그 사람의 잘못된 지식은 점점 더 굳어진다는 이론이다. 가용 휴리스틱(可用- ; availability heuristic)도 비슷하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미 주어진 정보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지금까지 겪어온 기후나 날씨가 앞으로도 비슷하게 유지되리라 생각하기 쉽고,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 최신 연구 성과에는 신뢰를 두기 어려워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Howlett & Rawat, 2019).

    이러한 인간의 인지 편향이 바로잡힌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천동설이다. 천동설(天動說, geocentrism)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우주(天)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動)는 주장으로, 중세까지 지배적이었던 세계관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地動說, heliocentrism;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이론)로 대체되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경험이 무작위 실험의 한 관측치일 뿐이라고 인정(“One should reason as if one’s present observer-moment were a random sample from the set of all observer-moments in its reference class.”; Bostrom, 2002; p. 162)한다면 우리 경험만으로 우주를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는 인지 한계에 빠져 최신 과학의 연구 성과를 거부하기 쉽다.

    천동설 외에도, 인간의 인지 한계로 인한 잘못된 인식과 제도가 자연과학과 철학, 사회과학이 발전하면서 하나씩 수정된 사례는 적지 않다. 서구의 노예제나 조선 시대의 신분제는 이제 폐지되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이며, 아무도 그 제도가 옳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인종주의는 배격과 비난의 대상이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했던 어처구니없는 나치주의는 수백만 명을 살해하고 지금까지도 전 인류의 공분을 사고 있다. 남녀의 차이를 우열로 나누어 차별하는 태도도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후과학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확인하는 지구온난화는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에게는 갈릴레이 시대의 지동설처럼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2100년의 전 지구 평균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C, 혹은 1.5°C 넘게 상승하면 큰 재앙이 닥친다고 하지만,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겠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2015~2019년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5년이었다(WMO, 2020)고 하지만, 당장은 작년 여름이 재작년보다 덜 더웠다는 이야기가 더 와닿는다. 인지 편향을 넘어서서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을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는 일들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성정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앞으로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기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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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기후변화는 지금 위기 상황이 맞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현재의 우리는 뭔가 해야 한다. 가만히 있다가 나의 후손이나 섬나라 사람들, 바닷가 저지대 주민들, 폭염에 시달리고 자연화재에 희생당할 야생 동식물에 저주를 안길 수는 없다. 인간과 자연을 공동 몰락으로 빠뜨리는 인지 편향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중요한 질문에 이 짧은 글에서 제대로 답할 수는 없겠지만, 두 가지 시도를 제안해 본다.

    첫째, 인간 중심 가치체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인지 한계에 갇히다 보면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anthropocentric thinking)에 빠지기도 쉽다.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는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크게 좌우한다. 이 인식을 따라 인간은 자신이 지구에서 가장 고등한 생물이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식물과 토지, 바다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를 벗어나려면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명령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특정 정치 세력과 결탁한 특정 종교(Hayhoe, 2019)가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를 조장한다고도 하지만, 종교의 가르침에는 환경을 보살피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를 이기기 힘들어 보인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제도권에 안착한 대부분의 주요 종교가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한다(Taylor et al., 2016).

    같은 연구는 그나마 일부 토착 종교에서 자연과 조화된 삶을 추구하고, 실제로 그 교도들도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토착 종교를 따르는 원주민들은 자연을 어머니 지구(Pacha Mama, Mother Earth)로 부르며(Chapron et al., 2019)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living in harmony with nature; living-well in balance and harmony with Mother Earth)을 바람직한 삶으로 실천해 왔다(Pascual et al., 2017). 주요 종교도 그 토속종교들의 가르침을 원주민의 미개한 사상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필요가 없다. 사실, 앞서 비판한 주요 종교도 애초 가르침은 친환경적이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와 함께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는 기독교도 옛 지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기독교의 양대 교파인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공통으로 존경받는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1/1182~1226)는 자연을 ‘우리의 자매, 어머니 지구’(sora nostra matre Terra)라고 불렀었다.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고 친족으로 대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토착 종교와 그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교 이외에 기후변화에 대응을 어렵게 하는 인지 편향적 사고는 ‘진보를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해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이다(“consumerism is a structural imperative of the modern capitalist economy”; “selfish capitalism […] is absolutely vital to human progress”; McCarraher, 2019; pp. 14, 368). 즉,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습성은 본능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본성을 거스르는 기후정책은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시행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Adler, 2019).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을 가정하는 경제학 이론에 따르는 자본주의 사회는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주장(Klein, 2019)과도 통한다.

    ‘집단행동을 비방하고 완전한 시장의 자유를 숭배하는 신념체계(= 자본주의)’와 ‘전례 없는 규모의 집단행동과 (위기를 유발하고 심화하는) 시장의 힘에 대한 통제를 요구하는 문제(= 기후위기 대응)’가 양립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결단코 존재하지 않는다. (“There is simply no way to square a belief system that vilifies collective action and venerates total market freedom with a problem that demands collective action on an unprecedented scale and a dramatic reining in of the market forces that created and are deepening the crisis.”) (Klein, 2019; p. 70)

    윗글의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그린뉴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심성과 달랐고, 인간이 완전히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상기하려고 한다. 인간의 옛 심성이 지금의 사회가 요구하는 심성과 달랐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지금도 생물학적으로 계속 변하고 있다.

    물론 어떤 이는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세포의 사멸과 생성으로 당연히 다른데, 그 사실만으로 인간의 본성이 변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30만 년 전의 인류 조상과 현재의 인류는 세포 수나 조성의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를 수 있다. 어떤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조상(Guimarães & Silva, 2020)이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약한 구성원을 돌본 증거들을 찾았다. 그들이 나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혹은 적어도 종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상처 입은 동료를 장기간 도운 흔적들이 있다(Spikins et al., 2019). 그런 본성이나 태도가 지금의 인류에게 남아있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소외되거나 병약한 이웃이나 이역만리의 생면부지 외국인을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보고 듣는다. 즉, 기후변화대응도 나의 경제적 이익이나 편리한 생활을 희생해야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힘과 뜻을 모으면 꼭 불가능하지도 않음을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유엔에서 파리협정이 체결될 때 산파 역할을 한 당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도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 최신 연구 성과를 근거로 들면서, 우리가 낙관적인 태도로, 능동적으로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녀는 우리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느냐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우리의 선택을 결정할 것이며,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단언한다(“Who we understand ourselves to be determines the choice we will make. That choice determines what will become of us.”; Figueres & Rivett-Carnac, 2020; p. xv.). 피게레스의 주장을 ‘우리가 선조의 이타적인 본성을 살린다면 자본주의가 요구해 왔던 심성을 이기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이해해도 억측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가치체계, 특히 주요 종교의 사고방식을 넘어서거나,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타적인 본성을 불러일으켜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집단행동으로 연결하기가 절대 쉽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도 그런 종교의 사고방식과 반대되는 가치체계가 유지되는 공동체들이 있고, 역사적으로는 주요 종교도 자연과 어울려 살고자 했던, 말하자면 변질하기 전의 기록이 남아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해 왔던 이기적인 인간의 심성 또한 제도나 정책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만큼 굳어버리진 않았다. 이타적인 생각을 발휘하자는 주장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생물학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만큼 그 증거가 인간 진화의 유물 일부로 남아있다. 전례 없는 규모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러한 긍정적인 사례들을 사회의 전 부문이 함께 더 깊이 연구해서 불가능해 보이던 대응 방법들을 시행해 나가야 한다.

    참고문헌

    Adler, J. H. (2019). Forget Paris. It Was Never a Serious Way to Handle Climate Change. Reason. https://reason.com/2019/11/06/forget-paris-it-was-never-a-serious-way-to-handle-climate-change/
    Bostrom, N. (2002). Anthropic Bias: Observation Selection Effects in Science and Philosophy. Routledge.
    Chapron, G., Epstein, Y., & López-Bao, J. V. (2019). A rights revolution for nature. Science, 363(6434), 1392–1393.
    Figueres, C., & Rivett-Carnac, T. (2020). The Future We Choose: Surviving the Climate Crisis. Alfred A. Knopf.
    Guimarães, S., & Silva, H. P. (2020). What have the revelations about Neanderthal DNA revealed about Homo sapiens? Anthropological Review, 83(1), 93107.
    Hayhoe, K. (2019, October 31). I’m a Climate Scientist Who Believes in God. Hear Me Out.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2019/10/31/opinion/sunday/climate-change-evangelical-christian.html
    Howlett, M., & Rawat, S. (2019). Behavioral Science and Climate Policy. Oxford Research Encyclopedia of Climate Science.
    Klein, N. (2019). On Fire: The (Burning) Case for a Green New Deal. Simon & Schuster.
    McCarraher, E. (2019). The Enchantments of Mammon: How Capitalism Became the Religion of Modernity.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Nunley, C., & Sherman-Morris, K. (2020). What People Know About the Weather. 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 (In Press). https://doi.org/10.1175/bams-d-19-0081.1
    Pascual, U., Balvanera, P., Díaz, S., Pataki, G., Roth, E., Stenseke, M., . . . Yagi, N. (2017). Valuing nature’s contributions to people: the IPBES approach. Current Opinion in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26–27, 7–16.
    Schmitt, M. T., Neufeld, S. D., Mackay, C. M. L., & Dys-Steenbergen, O. (2020). The Perils of Explaining Climate Inaction in Terms of Psychological Barriers. Journal of Social Issues, 76(1), 123–135.
    Spikins, P., Needham, A., Wright, B., Dytham, C., Gatta, M., & Hitchens, G. (2019). Living to fight another day: The ecological and evolutionary significance of Neanderthal healthcare. Quaternary Science Reviews, 217, 98–118.
    Taylor, B., Van Wieren, G., & Zaleha, B. D. (2016). Lynn White Jr. and the greening-of-religion hypothesis. Conservation Biology, 30(5), 1000–1009.
    WMO. (2020). WMO Statement on the State of the Global Climate in 2019.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박훈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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