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그린딜의 방향과 특징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9132, 2020.03.02 14:12:32
  •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작년 12월 유럽연합의회와 유럽연합이사회에 유럽 그린딜에 관한 통신문을 전달함으로써, 향후 EU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걸어갈 방향과 그 실행을 위한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 하원의 그린뉴딜 결의안이 구체적인 실행안 없는 선언이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이 된 것에 반해, 유럽 그린딜은 집행위원회가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을 짜고 이에 대한 승인을 의회와 이사회에 요청했고 승인의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전세계적 변화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그린뉴딜 결의안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기후위기라는 전례 없는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60년대 이래 성장해온 생태주의적 사회정치적 세력들이 순수한 생태주의적 접근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집단이 더 많이 참여하고 대공황 시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넘는 동원체체를 구축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방안이다. 기후위기는 일차적으로 자원소모와 과소비라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서 연유했지만 특히 최근 자본의 세계화가 이를 더 부추겼다. 자본의 세계화는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한편, 극심한 빈부격차를 유발하여 그간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오던 대다수 선진국 시민을 주변 계층으로 몰락시켰다. 비교적 단일한 계층으로 이루어졌던 노동계급을 다수의 소수파 주변 계층, 즉 최전선 취약계층으로 분해했다. 미국의 그린뉴딜 결의안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총동원체제이면서 이런 최전선 취약계층에게 새로운 삶의 기반과 사회복지를 복원해 주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의 그린뉴딜은 자본의 세계화로 가장 이익을 본 패권국 미국의 상층부에 대한 취약계층 국민의 반발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재집권하거나 이번에 정권이 바뀌어도 민주당이 연속 집권에 실패하면 미 연방 차원에서 이런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 그린딜의 목표
     
    유럽 그린딜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방법에 있어서 미국 그린뉴딜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해서는 필자가 이전에 썼던 글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다만 유럽이 처한 현실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라는 조직의 정치적 위상에 따라 강조점과 관점이 다르다.
    미국과 달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복지 토대는 자본의 세계화로 상당히 침식되었을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았다. 유럽 그린딜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럽 그린딜은 통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그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유럽 그린딜은 EU를 현대적이고 자원-효율적이며 경쟁적인 경제를 가지고도 2050년에 온실가스 순배출이 제로가 되고 경제 성장과 자원 사용의 연관성이 분리되는 경제를 지닌 공정하고 번창한 사회로 변환하는 것을 겨냥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탄소국경세를 통한 탄소 누출 방지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큰 목표 아래, 그 목표를 이루면서도 공정하고 번창한 사회를 이루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원사용이 늘지 않고 심지어 줄어들면서도 사회는 더욱 발전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미국 주도의 자본의 세계화는 유럽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금융과 새로운 산업으로 무장하고 세계패권을 이용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산업이 쇠퇴하고 복지를 위한 기반을 침식당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의해 급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의 값싼 상품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유럽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떨어지고 지속적인 저성장에 시달렸다. 기후변화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이런 자원낭비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상품의 규제가 필요하다. 유럽이 비록 열심히 에너지 체계를 전환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더라도 외부로부터 값싸고 자원낭비적이며 온실가스 다배출 공정에서 생산된 상품이 들어와서 대량소비되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무의미해진다. 이를 위해 유럽 그린딜은 다음과 같이 그런 상품들이 EU 차원의 노력을 무력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설정하고 있다.
     
    많은 국제적 당사자들이 EU와 같이 야심찬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 한, 탄소 누출의 위험이 상존한다. (중략) 집행위원회는 탄소 누출의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선택된 분야에 대해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을 제안할 것이다. 이것은 수입품의 가격이 그 내재 탄소량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보장할 것이다.”
     
    EU 역외 상품의 탄소발자국이 EU보다 크다면 이 차이만큼 탄소국경세를 과세함으로써 탄소 누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중국이나 한국이 석탄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로 값싸게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길이 좁아지거나 막힐 수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는 철강과 시멘트 및 플라스틱 제품을 들 수 있겠다. 이럴 경우 유럽은 자체적으로 탄소 저배출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외부 탄소 다배출 상품의 수입을 억제하고 유럽 역내 교역을 강화할 수 있어, 지금까지 전세계적 경제의 흐름이었던 생산의 세계화에 제약을 가하게 되어 유럽 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EU 수준에 걸맞는 탄소 저배출 산업의 발전과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 없이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유럽연합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 
     
    순환경제를 통한 자원 소모 방지
     
    유럽 그린딜에 생태주의적 관점이 가장 크게 반영된 부분이 순환경제에 대한 강조다. 인류가 지하에 묻혀 있는 한정된 자원을 끊임없이 채취하여 상품을 만들어 소비하고 버리는 한, 언젠가는 그런 자원이 고갈될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온실가스를 일정 한도 아래로 감축하기 힘들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럽 그린딜은 상품을 오래 쓰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하여 지구가 제공하는 자원의 한계 내에서 소비하는 순환경제를 도모한다.
     
    Fig1-01.png
     
    그간의 폐기물 정책은 상품을 사용한 후 폐기물을 처리하여 일부를 재가공용으로 재활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럴 경우 폐기물의 완전 재활용이 어려워 새로운 원자재가 지속해서 투입되어야 하고 재활용 과정에서 추가 에너지 소모가 불가피하다. 순환경제는 재활용보다 지속가능 소비와 재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속가능 소비 – 상품의 장기간 및 반복 사용
     
    순환경제는 우선 상품을 내구성이 뛰어나고 수리가 쉽도록 만들어 장기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 이를 위해 생산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녹색주장(green claim)에 대한 생산자 입증 책임을 강화한다. 자신의 상품이 녹색이라고 주장하여 소비자의 환심을 사는 녹색분칠(green washing)을 방지하는 정책을 세울 것이다.
     
    재사용성, 내구성 및 수리가능성을 지닌 상품을 사업자들이 제공하고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것을 촉진하는 조치 또한 순환경제 행동계획에 포함될 것이다. ‘수리 받을 권리’의 필요성을 분석하고 특히 전자산업에서 소자 내장으로 인한 수명 단축을 막을 것이다. (중략) ‘녹색 주장(green claim)’을 하는 회사들은 환경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는 표준 방법론에 입각하여 이를 입증해야 한다. 집행위원회는 거짓 녹색 주장과 대결하기 위해 규제적 및 비규제적 노력의 수준을 높일 것이다.”
     
    생산의 국제화는 값싼 상품을 얼마 안 쓰고 버리는 소비를 부추겼다. 휴대폰과 같은 많은 전자 상품이 수명이 짧은 소자를 수리하기 힘들도록 내장하여 몇 년마다 통째로 교체하도록 유도했다. 순환경제 계획은 우선 이런 자원 소모적 생산을 막는데 중점을 둔다. 특히 이런 방식의 생산으로 초고속 성장을 해온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과의 교역이 이런 계획으로 상당히 줄어들 것이고 이들 국가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산업도 그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지속가능 생산 – 이차원료와 부산물 시장의 활성화
     
    지속가능 생산을 위한 재사용의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종 생산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사용을 염두에 두고 생산하는 방식이다. 상품 수명이 다 했을 때, 그 상품을 해체하여 가능한 한 많은 부품과 원료를 새로운 상품의 생산에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공장의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다른 공장의 원료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지속가능 제품 정책은 또한 쓰레기를 상당량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쓰레기 발생을 피할 수 없다면 그 경제적 가치가 복구되어야 하고, 환경 및 기후변화에 대한 악영향은 회피하고 최소화해야 한다. (중략) EU 기업들은 이차원료 및 부산물을 위해 견고하고 통합된 단일시장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이는 플라스틱 순환 동맹(Circular Plastic Alliance)의 경우와 같이 가치사슬 간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다. 집행위원회는 재활용품 함유(예를 들어 포장, 차량, 건축 자재 및 배터리를 위한) 의무화와 함께 이차원료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법률적 요구사항을 검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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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물 시장은 자원순환동맹에 가입한 기업끼리 부산물 생산 정보 공유를 통해 각 기업의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다른 기업의 원료가 되게 함으로써 자원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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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 제품을 다 사용하고 난 후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재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재사용이 불가능한 부분은 물리적 변형 과정을 거쳐 재활용하고, 그래도 남는 부분은 화학적 변형을 거쳐 새로운 원료로 만들거나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제품을 달리 설계하고,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유럽 그린딜의 미비점
     
    이렇게 목표가 야심차지만 유럽 그린딜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유럽 그린딜은 메탄, 아산화질소와 같이 농업분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에 대한 감축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 특히, 농업분야 온실가스 감축에서 가장 중요한 소, 양 등 목축 과정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농업구조 전환과 식단개선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크지만 수명은 훨씬 짧다. 메탄 배출량 저감이 실제적으로 온실가스 총량을 줄이는 데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아쉬운 점이다.
     
    개발도상국과 한국에 대한 유럽 그린딜의 영향
     
    유럽의 그린딜은 기후위기를 막는 에너지 및 산업 전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산업을 통해 EU의 경제적 번영을 목표로 하는 한편,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장애가 되는 국가의 상품이나 온실가스 다배출 상품의 EU 역내 진입을 막아 유럽연합 산업의 보호를 꾀하기도 한다. 또한 생태주의에 입각하여 자원순환경제의 확립을 통해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자원채취에 기반한 원료에서 생물 기반 지속가능 원료로의 전환을 도모한다. 
    유럽 그린딜의 특징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지 못하는 국가와 상품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상품 내구성 증가와 순환경제 강화를 통한 상품 소비량의 감소와 그에 따른 국제 교역량 감소를 불가피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생산의 국제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개발도상국과 그들에게 중간재를 공급하는 신흥공업국, 무역을 통해 경제활력을 유지하는 교역국가들에게 큰 도전을 안길 것이다. 한국이 이런 측면에서 큰 영향과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본다면, 유럽 그린딜 시행에 대비해 기후위기 극복과 에너지 및 산업 전환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재삼. (2019). 그린뉴딜이 아니라 대도약이 필요하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http://climateaction.re.kr/index.php?mid=news01&document_srl=177190

    2.     European Commission. (2019, December). European Green Deal.

    3.     https://www.government.nl/topics/circular-economy/from-a-linear-to-a-circular-economy

    4.     김도원. (2019). 자원순환사회로 가는 , 강의 자료. 광진정보도서관.

     

    김재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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