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 르네상스 ‘반핵 르네상스’로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6373, 2011.03.29 14:40:29
  • ㆍ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찬핵’ 논리 변화 불가피 ‘반핵’주장 힘 얻어

    원자력과 핵에너지는 동의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말로 쓰인다. 핵에너지는 핵무기와 같이 매우 파괴적인 속성을 강조한 반면, 원자력은 그런 가공스러운 힘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3월 17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에서 ‘핵 없는 세상’ 퍼포먼스를 벌였다. | 이성수 함께사는길 기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우리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줬던 원자력이라는 지킬 박사의 얼굴이 핵에너지라는 하이드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물론 그 끔찍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의 말처럼 “쓰나미라면 눈에 보이기나 하지!” 방사선은 색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과 도쿄전력이 제공하는 정보, 에다노 유키오 일본 관방장관의 발표 등이 없으면 일반인은 하이드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물론 그 존재조차도 알기가 어렵다.

    지킬과 하이드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말’이다. 원자력, 원전,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은 원자력 또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찬성하는 쪽, 즉 ‘찬핵’ 진영의 용어다(적극적인 지지는 아니더라도 묵인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가진 ‘비핵’ 진영도 여기에 포함된다). ‘반핵’ 진영은 그 대신 핵에너지, 핵발전소, 핵폐기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지난 3월 16일 반핵 진영의 연대기구가 하나 생겼다.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피해자 지원 및 핵발전정책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다. ‘원전’과 ‘핵발전’이라는 동의어이자 반의어가 함께 들어간 단체명이 작금의 원자력정책과 반핵운동의 복잡·미묘한 경과를 보여주는 듯하다.

    국내 원자력 산업은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1990년대 들어 암흑기에 들어갔다. 이는 반핵운동의 전성기와 맥을 같이한다. 이 시기 반핵운동은 안면도·굴업도 방폐장 건설을 좌절시키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신규 원전 계획 시도도 무산시킬 정도였다.

    이처럼 활발하던 반핵운동이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5년 부안 방폐장 주민투표 이후다. 지원금을 미끼로 지방자치단체끼리 경쟁시키고 주민을 갈라놓은 정부의 정책이 주효하면서다. 반핵 진영의 대표적인 활동가 중 한 명인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부안사태 이후 정부와 주민 간의 대립이 외견상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간의 갈등구조로 바뀌면서 반핵운동이 크게 위축되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원전 vs 핵에너지·핵발전소
    에너지 사용 급증과 성장 논리가 득세하면서 여론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도 반핵운동 침체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연이은 전력 피크와 유가 급등 등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의식이 원자력을 필요악으로 만든 측면이 있다”며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대세를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에 더욱 불을 댕긴 것은 원자력이 기후변화 극복의 강력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면서다.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경제성이 높으며, 기술 발전으로 안전성이 강화됐다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반핵 진영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진 것이다. 반핵 진영의 활동가들은 기후변화 등으로 전공(?)을 바꾸거나 재충전, 또는 호흡 조절에 들어갔다. 핵에너지·핵발전소·핵폐기장 등의 용어도 사라지고 원자력·원전·방폐장 등 ‘순화’된 용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 |디지털글로브

    후쿠시마 사고는 이런 상황을 한꺼번에 역전시켰다. 원자력 안전신화가 깨지면서 찬핵 진영의 논리가 군색해지고 반핵 진영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한 집회와 회의, 세미나, 퍼포먼스가 연일 열리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원자력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비핵’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단체나 활동가가 반핵 진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핵 연대기구인 공동행동에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등 40여개 환경·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 기구는 3월 22일 ‘핵 위협 없는 세상을 위한 시민사회 선언대회’와 함께 공식 출범했다. 이들은 3월 28일부터 4월 26일까지를 공동행동기간으로 설정하고 집중적인 반핵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3월 28일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4월 26일은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성장논리 득세하면서 반핵운동 위축
    이들 시민사회단체 가운데 찬핵 입장을 가졌던 곳은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반핵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출신의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환경단체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 핵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참여연대·여성민우회·민변·YMCA 등 비환경단체의 공동행동 참여는 이례적이다. 공동행동의 연대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헌석 대표는 “특히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는 민주노총의 참여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고 말했다.

    평화운동단체인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의 ‘고해성사’도 눈길을 끈다. 그는 ‘평화적 핵 이용 동의했던 거, 후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핵에 대해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평화운동가로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비핵지대, 그리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원하고 있고, 또 이를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해왔다. 그러나 ‘핵의 평화적 이용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여겨왔고, 북핵 문제 해법으로도 북한에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후쿠시마 참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

    반핵 진영의 주장은 대략 세 가지로 모아진다. 국내 원전에 대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안전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다. 그 다음은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중단이다. 세 번째는 수명을 연장해 운영하고 있는 고리 1호기의 가동 중단과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 계획 철회다.

    원전 안전조사·확대정책 중단 요구
    공동행동의 구성은 지역에서 진행되는 반핵 활동에도 강한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행동에는 ‘삼척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위원회’ ‘영덕 핵발전소 반대 500인 결사’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 사람들’ 등도 참여하고 있다.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지역에서도 핵발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재인식하게 됐다”며 “지역 반핵운동이 앞으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적 환경운동가’를 자처해온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원전이 친환경적이라느니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느니 등의 논리는 이번 후쿠시마 사고로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며 “앞으로 (이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과거 반핵운동도 너무한 측면이 있지만 현 정부의 지나친 원전 드라이브도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반핵활동가인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에너지기후국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우리가 모든 원전을 일시에 중단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30년 전 원전을 통한 공급 중심 전력 정책이 지금의 상황을 불렀듯이 지금부터 탈원전 정책으로 30년 후를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저물고 탈원자력, 반핵 르네상스의 동이 트고 있다.

     

    (2011.3.29 주간경향 918호 신동호 선임기자)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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