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평등 없이는 지속가능한 지구도 없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조회 수: 9721, 2020.03.27 14:25:51
  • 세계경제포럼이 작년에 발표한 한국의 성별 격차 지수는 0.672점(1이면 완전 평등)으로 153개국 중 108위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활동 참여·기회’에서의 성별 격차는 127위, ‘여성 고위 임원·관리직 비율’은 142위로 종합 지수보다 훨씬 낮았다. ‘임금 평등’은 119위였다. 우리나라 남성의 연 추정소득은 5만2100달러(약 6058만 원)인데 여성의 연 추정소득은 2만4800달러(약 2879만 원)였다. ‘교육적 성취’는 101위였고, 여성 의원 비율과 여성 장관 비율 등을 포함한 ‘정치 권한’은 79위였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여성은 여전히 경제·정치적 권한 면에서 남성보다 훨씬 낮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남녀평등 교육이 실시되고 남녀고용평등법이 실시되는데도 이처럼 성별 격차가 여전히 심한 이유가 뭘까? 여성에 대한 불공정 대우(차별)를 제도화하는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구조가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불공정 대우 혹은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튿날인 1월 2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여성들의 행진”이 열려 시민 50만 명이 운집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 격하 발언을 비난하는 뜻의 분홍색 모자를 쓰고 있었고,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 보호, 환경 보호 등 다양한 구호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오바마 정부가 만들어 놓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철회하는 길에 돌입했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여성을 불공정하게 대하는 태도와 기후 위기를 무시하는 태도가 결합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후 위기와 여성


    위기가 닥쳤을 때 불리한 환경에 있던 사람의 처지는 훨씬 더 취약해진다. 기후 위기는 여성이 처한 취약한 환경과 불평등한 현실을 더욱 가중해 여성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안긴다.
     
    기후위기로 인해 심각한 재앙을 맞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많은 여성이 심한 곤경을 겪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기후 변화 때문에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 난민의 80%가 여성이다. 2010년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홍수로 난민이 된 사람들 가운데 70% 이상이 여성과 아이들이었고, 2004년 인도양 쓰나미로 인도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여성 사망자가 남성 사망자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이유가 뭘까? 여성들이 위험을 피해 달아날 신체적 능력과 기술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지만,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위상 또한 원인이다. 여성은 어린 자녀와 노인 등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주로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가족을 보호하려는 책임감 때문에 제때 위험을 피해 대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후 위기는 성(性)에 근거한 폭력을 증가시킨다. 가뭄과 폭염, 홍수 등 재난이 발생하면 물과 음식, 거주지, 농지 등의 자원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진다. 자원 부족은 기존에 있던 인종 갈등, 종교 갈등 등을 더욱더 심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각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떠안긴다. 바로 힘없고 가난한 여성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자연 재해가 심해질 때마다 생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직 나이 어린 딸을 결혼시키거나 성매매에 빠뜨리는 사례가 늘어난다. 또한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가정들은 자녀 교육비용을 줄이려는 유인이 커지는데 대부분 딸들이 교육 기회에서 배제된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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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여성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희소한 물이나 식량 또는 일자리를 구하다가 성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으로부터 성매매를 해서라도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강요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가난한 나라에서는 위기가 닥쳤을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가혹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위기 상황에서 여성들이 더 가혹한 피해를 당하는 일은 비단 가난한 나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감염병 위기에 고통받는 여성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우리 사회 역시 집단감염이 잇달아 발생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위기를 맞았다. 지금 우리는 의료와 행정, 그리고 전 국민의 합심과 신속한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위기의 심각성 탓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역시 가장 가혹한 곤경에 몰리는 건 사회적 약자들이다. 
     
    최근에 콜센터와 요양원이 집단 감염의 진원지로 부상했다. 그런데 이곳들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많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다 감염된 직원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감염 위험을 피하고자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재택근무를 하라는 정부의 권고가 있지만, 이들은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근무했다. 많은 학교와 회사, 식당, 상점 등이 휴업을 하고 있지만, 학교 급식요원이나 종업원 등으로 일하는 많은 여성은 장기간 수입이 끊겨 막막한 상황에 몰려 있다. 이처럼 저소득층 여성노동자는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 일자리에 종사하며, 임금이 워낙 적어서 하루 일을 빠지는 것만으로도 수입이 줄어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2019년 우리나라 남성고용률은 71.2%, 여성고용률은 5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낮다. OECD 가입국 평균 성별 고용률 격차가 10%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두 배다. 30~40대 여성노동자의 고용률은 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인데, 이 연령대 여성은 임신과 육아의 부담이 크다. 2019년 기준 여성 비정규직은 전체 비정규직의 55%에 달한다. 남성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비율이 70 대 30인 반면 여성은 55 대 45이다. 성별 임금 격차는 2018년 기준 32.4%인데, 안타깝게도 2000년 이후로 OECD 가입국 중 1위라는 부끄러운 지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염병 위기와 기후위기를 비롯한 강력한 재난이 발생하면 가난한 나라들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여성들이 가장 먼저, 가장 심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성 착취 범죄와 성별 격차


    앞에서 가난한 나라에서는 위기의 시기에 성폭력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사례를 소개했지만, 성폭력 문제는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다양한 부문에서 미투 선언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통제 속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 암암리에 만연해 있다. 최근 사회적인 격분을 불러일으킨 <동영상을 이용한 성 착취 범죄> 사건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N번방 범죄나 몰카 영상 유포 범죄의 범인들은 성 착취 영상을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도구로 이용했다. 성 착취 범죄는 성별 격차를 이용하는 가장 잔인한 행동이지만, 이런 잔혹한 범죄 말고도 다양한 상황에서 성별 격차가 이용되고 있다. 
     
    기후 위기가 닥치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성별 격차를 이용해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동기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최근 밝혀진 성 착취 범죄를 뛰어넘는 잔인무도하고 비열한 행동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미래가 다가올지도 모른다. 

    요컨대,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한의 격차, 즉 힘의 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불공정한 사회가 그대로 지속하면, 위기를 맞았을 때 그 사회는 힘 있는 사람만 지켜주고 힘없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다. 여성의 삶이, 그리고 약한 사람들의 삶이 잔혹하게 짓밟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세계여성의 날; 성 평등과 기후 행동


    매년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2020년 세계여성의 날 테마는 <세대 간 평등: 여성 권리 실현은 기후 변화 영향 대응과 야심 찬 기후 행동의 필요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로 정해졌다. 2007년 출범한 유엔 산하 세계젠더기후연맹(Global Gender & Climate Alliance, GGCA) 역시 각국이 기후변화 정책 결정 과정과 프로그램에 남녀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반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외교협회(CFR)가 발표한 ‘여성 파워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정부·의회 진출 수치를 따지는 정치적 평등성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17점, 조사대상 193개국 중 124위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곧 있을 총선에서도 여성 의원 비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 위기의 효과적인 극복을 위해서는, 기후 행동과 저탄소 경제 구축 프로그램 등에서 여성의 역량을 확장하는 방안과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기후 행동과 저탄소 부문의 일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훈련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육아와 가정 돌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는 수단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정책들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여성 역량 강화 계획을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해야 한다.

    인종 혐오,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등, 상대적 우위를 빌미로 위기의 충격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태도가 만연한 사회는 결코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피부색이 하얗건 까맣건, 사람은 모두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대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몫을 담당할 수 있다.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다. 성 평등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중요한 해결책이다.

    이순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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